좋아하는 시시콜콜 #4 지뢰찾기
누군가 인생 게임을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지뢰찾기를 바라보게 할 거다. 지뢰찾기. 영어로는 마인크래프트. 보통 영어로 하면 더 있어 보이던데 이건 그렇지도 않다. 지뢰찾기라니 이 얼마나 직관적이면서도 구수한 이름인가. 두툼한 펜티엄 컴퓨터 시절부터 즐겨온 우리의 향수 같은 이 게임은 당시 컴퓨터 게임의 대표 격이어서, 윈도우 버튼을 눌러 보조 프로그램을 찾아가면 프리셀과 카드놀이를 제치고 당당히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대한 세계관으로 중무장한 대서사시 같은 스토리와 실사에 가까운 비주얼을 동반한 게임들이 난무해도, 나처럼 게임의 게 자도 모르는 사람은 2D 게임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내 주위엔 접촉 불량을 막기 위해 후후 불어 게임기에 끼우던 게임팩 시절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이 있고, 아직도 땅따먹기와 보글보글, 페르시아의 왕자나 돌아온 너구리 같은 게임을 회상한다. ( 모바일로 넘어와 봐야 붕어빵 타이쿤이 게임의 끝이었던 사람들... ) 어찌 보면 지뢰찾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디지털계의 아날로거들 중에서도 끝판왕이라 할 수 있겠다.
바로 그 끝판왕인 나는 고백한다. 편집실 귀퉁이에서 지뢰찾기를 즐긴 적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사실 피디들은 자기만의 쉬는 방법을 한두 개쯤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창작의 끝을 봐야 하는 직업군이 다들 그렇듯, 몇십 시간 동안 하염없이 이어지는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보면 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숨구멍이 필요하거든. 나에겐 그것이 지뢰찾기였다는 말이다.
과연 지뢰찾기는 위대한 게임이었다. 게임을 즐기는 "쉬는 시간"에도 여러 가지 교훈을 주다니. 지금부터 나는, 지뢰찾기로부터 얻은 엄청난 교훈들을 기꺼이 공유하려 한다.
과감하라
첫 번째 교훈은 과감하라는 것. 지뢰를 밟고 죽는 것이 몇 번 반복되고 나면 신중하게 첫 클릭을 하려 애쓰게 된다. 하지만 단언컨대, 절대로 그럴 필요는 없다. 오천 번쯤 새 판을 시도해 보았지만, 첫 클릭에 지뢰가 터진 경우는 없었기 때문. 운이 좋았던 것인지, 마인스위퍼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후자라면) 첫 시도 때 좌절하지 않도록 해 주려는 지뢰찾기의 자애로움이 아닐까 한다. 세상은 지뢰찾기만큼 자애롭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첫 시도는 과감히 해야 다음도 찾아오는 법이니까.
안 되면 돌아가라
좀처럼 풀리지 않는 귀퉁이를 붙잡고 이모저모 추측을 해 봤자 소용없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니까. 좌상단에서 풀리지 않으면 우상단으로, 우상단이 잘 안 되면 우하단으로 가면 된다. 결국 지뢰찾기의 모든 길은 통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 ) 그 판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안 풀리던 좌상단은 풀리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한 판 풀고 나면 편집을 다시 할 때에도 포기할 건 포기하고 넘어가는 대신, 집중해야 할 부분에 집중하게 되는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생긴다.
운이 없으면 기록도 세울 수 없다 (때로는 도박을)
신기하게도 개인 기록은 운이 따를 때에만 세울 수 있었다. (내가 세운 기록을 내가 깬 경험이 스무 번쯤 되니까 믿어도 된다.) 신중하게 하나하나 빠르게 풀면 될 것 같지만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상급의 경우, 둘 중 하나가 지뢰인데 더 이상 힌트가 없는 순간, 하나를 찍었을 때 가까스로 살아나는 고비를 최소 대여섯 번은 넘겨야 신기록을 세울 수가 있다. 솔직히 좀 인생 같긴 하다. 최고가 된 사람들은 다들 운이 좋았다고 하지 않나. 그게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마 좀 희망적인 건, 끝까지 개인 기록을 세우고자 몇십 번씩 집중해서 게임을 다시 시작하면 이 운 좋은 판이 언젠가 나오긴 나오더라는 것. 운도 계속 부딪치고 깨지는 자에게만 오는 법인 것 같다.
집중력은 필수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은 필수다. 절대 충분조건일 수가 없으니 피해 갈 생각은 하지 말도록 하자. 계속 죽기만 해서 너무 지칠 무렵,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심드렁하게 마우스를 놀려대 보았지만 그러면 게임은 절대 풀리지 않았다. 다시 집중해서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하자 마법처럼 풀리는 게임... 요 조그만 컴퓨터 게임 녀석이 내가 집중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아는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 아무튼 집중 없는 클리어는 지뢰찾기에 없다.
정리하고 보니 지뢰찾기는 인생과 무척 닮았다. 일 할 때 적용할 만한 교훈 투성이 아닌가. 진짜 절대 결코 이 글을 쓰기 위해 끼워 맞춘 것이 아니다. 한밤중의 편집실이나 동트는 새벽의 편집실에 앉아 진득하게 지뢰찾기를 하며 깨달은 주옥같은 인생 교훈들.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갈 수 있으니 지나치게 중독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는 있지만,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단기간에 얻고픈 사람들에겐 진심으로 권해보고 싶다.
지뢰찾기는 진정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