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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Nov 18. 2022

할머니로부터의 기억과 연결 이야기

시선으로부터


한 달 동안 읽으며 수없이 많은 문장을 적었다. 평소에도 리터럴리 아름다운 문장들은 물론, 의미가 깊은 문장을 발견하면 옮겨적고 또 그에 대한 생각을 메모하는 편인데, 이 책은 그 양이 제법 많았다는 뜻이다. 나중에 다시 읽으면 책을 두 번 읽는 느낌일 만큼.




시선은 할머니의 이름이었다. 사람 이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아무튼 그의 딸들과 손주들은 하와이로 떠나는 특별한 제사를 구상한다. 일반적이라면 제사를 빙자한 가족 여행이 될텐데, 이들은 가족 여행을 빙자한 제사에 충실하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심시선 여사를 기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시점이 제법 귀여워서, 마지막에 누가 가져온 제사 물품이 가장 좋은지 나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딱 이런 느낌이었던 엔딩. 하와이안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


모두 모여 심시선 여사의 추억을 나누는 순간. 가족들이 거의 처음 모이는 소설의 끝자락. 이러니저러니해도 이 부분은 기억에 가장 깊이 남을 것이다. 세대에서 세대로 연결되는 전달과 끝맺음에 대한, 이어지는 시선의 이야기도.


나는 나대로 젊은이들에게 할 몫을 한 것이면 좋겠다.
낙과 같은 나의 실패와 방황을 양분 삼아 다음 세대가 덜 헤맨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이 책은 보물찾기로 쌓아 올려진 기억의 서사다. 기억하지 않고 나아가는 공동체는 본 적이 없다는 문장을 소설 중간에 은근슬쩍 끼워 두었지만, 사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과 연결에 대한 이야기였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심시선 씨의 가족들이, 후손들이, 그리고 그 후손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두가, 오늘치의 아름다움을 저마다 발견하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이 시대가 한 뼘씩이라도 아름다워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왜 하와이였을까. 끝나지 않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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