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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23. 2024

마호가니색이 잘 어울리는 나라

부다페스트, 헝가리 1일차

오늘은 부다페스트로 이동하는 날. 위즈에어라는 저가항공을 타면 10만 원 정도로 왕복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예전엔 라이언에어랑 이지젯 많이 탔었는데. 저가항공이지만 좌석이 비엣젯항공만큼 쫍지는 않다. 나는 B좌석이었는데 가운데 껴서 가다가 도저히 숨 막혀서 다른 자리로 이동한 적이 있어서 제발 왼쪽엔 누가 오지 마라, 하고 계속 되뇌며 들어오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다행히 사람이 없어서 창가자리에 앉아 가운데 자리까지 다리를 좀 넓게 쓰면서 왔다.


한 시간이나 연착될 줄 알았더라면 아침에 그렇게 긴장하면서 오진 않았을 텐데. 16킬로 캐리어와 부다페스트에 가져갈 작은 짐을 가지고 공항까지 이동하는데 뭐가 씌었는지 트램을 타야 하는데 지하철을 타러 갔다. 지하철을 찍고 들어와서 노선을 보고서야 잘못 왔음을 깨달았다. 당연히 환불은 안되고, 돌아갈 차비에 맞춰 남겨놓은 돈은 부족했다. 50리라를 더 충전해서 얼른 트램을 타러 갔다. 2시간 반 전으로 계산했기에 늦어지기 싫었다. 이 큰 캐리어는 이스탄불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맡기는 데를 찾고 허둥지둥 대면 또 금방 시간이 갈 것 같다.


코인 락커를 찾았는데 24시간 밖에 안된다. 24시간이 지나면 열리는 건가? 인포메이션 센터는 또 왜 이리 안 보이는 거야. 인포센터에 가니 7번 밑으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면 짐 보관소가 있다고 한다. 4일 맡기는데 960리라이다. 4만 원대. 코인락커는 중간 사이즈에 넣을 수 있어서 120리라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비싸다. 그치만 어쩔 수 없지. 화장실을 들렸다가 약국에 갔다. 공항까지 오는 하바이스트 공항버스에서 계속 기침을 해서 눈치 보였기 때문이다. 기침을 참기도 하고 물을 마시기도 하고 해도 한번 쏟아지면 진짜 영화에서 바이러스 걸린 줄 알고 다들 피하는 그 장면이 떠오른다. 너무 심하게 기침하니까 한 명 두 명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제발 아무도 신경 쓰지 말아라.

“기침이 너무 심한데 테라플루랑 같이 먹어도 되는 약 있나요? 강력한 약으로 좀 주세요. “ 약국에 가니 이런 약을 주었다. 강력한 게 맞나요? 하고 말했더니 테라플루랑 같이 먹으면 아주 좋은 약이라고 말한다. “얼마예요?” “360” 만오천 원이 넘는다. “제 생각보다 좀 비싸네요.”라고 말하며 약사가 권하니 먹어야지, 하고 카드를 꺼내는데 “10달러예요. 뭐가 비싸요? 터키는 약값이 엄청 싼 거예요. 사우디나 이런 데서 온 사람들은 엄청 싸다 해요.”라고 남자는 말했다. “한국에선 감기 걸리면 치료비와 약값이 엄청 싸요. 뭐 4-5달러 내외.”라고 말했더니 북한이냐 남한이냐 묻더니 한국에서 와서 비싸게 느끼는 거라고 했다. 말투가 어디 물가 싼 동남아에서 온 것처럼 말한다. 우리가 서민도 이용할 수 있도록 의료 보장과 체계가 잘 되어 있어서거든. 우리가 너네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거든, 하고 속으로 말하고 나왔다. 약도 뭐 강력하지도 않다. 번역기로 찍어서 보니 뭐 강황 이런 거 든 거 씹어먹는 건데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스프레이는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어서 좋다. 여행할 때 계속 아프니까 약 값만 엄청 든다. 그래도 나라마다 추천해 주는 새로운 약을 먹어보는 게 뭔가 재밌다.

만이천원짜리 식사

짐검사 코너를 지나는데 줄이 너무 길다. 짐 검사하는데 앞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 느려 답답했다. 오늘 하루 지치고 예민한 나는 옷 좀 빨리빨리 좀 벗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딩까지 20분 정도밖에 안 남았다. 배가 고파 푸드코트라고 써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인천공항처럼 레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걷기가 지친다. 파파이스, 피자집, 이름 모를 햄버거집, 파파이스가 있는데 추억의 파파이스! 감자튀김 맛있는데! 하고 가니 햄버거 세트가 2만 5천 원이다. 으악 이게 1인분 맞아? 북유럽 물가다. 고개를 돌려 피자집 메뉴를 보는데 여기가 그나마 싸다. 피자 한 조각 220리라에 물 추가하니 60리라. 으악 시내에서는 물을 식당에서도 10리라였는데 2700원이라니. 6배라니! 깡패 같은 놈들, 하다가 그래. 물을 여기로 들여오고 하는 노동력이… 아니다 이해하려 하지 말자, 이해해 봤자 뭐 하겠어. 화장실을 가는데 일회용 변기커버 하나도 착착 안 풀어지고 뜯는데 하루종일 걸려서 짜증 나는데 손 씻으러 나와서 손 씻고 닦는 휴지도 잘 안 뽑힌다. 뭐 이렇게 잘 되는 게 없냐, 하고. 또 탑승구는 E구역인데 어쩜 이렇게 고객 비지향적으로 구조를 만들었는지 아주 공항 전체를 걸었다. 걷는 게 불편한 사람들은 도저히 못 걷겠다 싶었다. 오늘하루 짜증이 많은 나.


그래도 9시 반쯤 아까 버스에서 수강신청 들어가 봤는데 포기했던 과목이 증원이 되어 수강신청에 성공했다. 여기 시간으로 10시까진데 운 좋게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선착순 수강신청인데 새벽 2시 반에 일어나기가 싫어서 그냥 포기했었다.


연착된 만큼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한 부다페스트 공항. 이스탄불과 달리 사람들 외양이 달라졌다. 예전에 부다페스트 갔을 때는 버스를 타고 갔는데 공항을 통해 가는 건 처음이다. EU와 비 EU 줄이 나누어져 있는데 비 EU는 나를 포함하여 사람이 거의 없어서 초스피드 입국이다. 게다가 저가항공이라 짐을 부치지 않아서 금방 나왔다. 무거운 거를 너무 싫어하는 나는 짐을 진짜 단출하게 쌌다. 옷 한 벌, 잠옷 한 벌, 팬티 두 장, 극 최소화한 화장품(주로 메이크업이고 색조는 현지에서 사서 쓰려한다), 스카프 하나. 이게 다다. 그래서 엄청 가볍다. 이심 이거 되게 간편하네.


터키에서 헝가리로 넘어오니 바로 헝가리 통신사로 바뀌면서 4G가 잡힌다. 가려는 호텔까지 경로를 보니 100E버스를 타고 가서 지하철을 타면 된다! 100E버스는 모두가 타는 버스인지 표지판이 잘 되어 있다. 표지판만 따라가니 표 사는 머신이 있다. 아 표가 두 개 뜨는 데 뭘 사야 하는 거야, 아 E invoice인가 이건 또 뭐야, 클릭을 했더니 이상한 창이 뜬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아저씨가 도와준다. 뒤로 가기를 눌러 반대 꺼를 누르고, 아하! 감사합니다, 하고 카드를 넣었는데 또 아무 반응이 없다. 아저씨는 핀 코드 입력하라고 가리키면서 젤 오른쪽 작은 카드기기 화면을 가리킨다. 아;; 모르는 게 많네. 다음엔 수월하게 하겠다. 이스탄불에서도 처음 이스탄불카르트를 살 때 잘 몰라서 이것저것 눌러보았다.

이 색이 너무 마음에 든다

100E버스를 타고 마지막 정류장에서 내렸다. 아무래도 짐도 있으니 버스보다 지하철을 타는 게 낫다고 판단했는데 생각해 보니 난 캐리어가 없다. 뭐 일단 내려서 뭐라도 먹고 싶다. 크림 파스타가 땡겨서 구글맵에 pasta, 하고 쳤다. 예전에 저장해 둔 생면 파스타 집이 뜬다. 비가 아주 가느다란 방울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안에 캐시미어 니트를 입어서 그리 춥지는 않다. 주변 건물들을 둘러본다. 이스탄불과 달리 황토색, 마호가니, 그레이가 조화롭게 섞인 우중충한 아름다움, 그래서 빈티지하고 클래식한 아름다움이 느껴져 좋다. 이스탄불하고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창문 장식, 건물 색깔 하나하나 구경하면서 걸으니 정말 새롭고 좋다. 평일 3시 풍경이 이게 맞아? 새삼 주어진 시간이 소중하고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들어왔는데 고풍스럽고 따뜻하고 포근하다. 저가라 기대 안 했는데 객실의 문들이 중후하고 방 옆에 그림이 걸려 있으며, 원룸이 아니라 들어오자마자 옷장이 있고, 그 공간이 꽤 넓으며,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 더 있다. 화장실도 넓고 깨끗하고 분위기 있다. 카펫도 마음에 들고 경사진 창문 같은 것이 유럽 느낌이 들어서 좋다. 가구들도 앤틱하고 분위기 있다.

드럭스토어 제품으로 채워진 스킨케어

오늘 오자마자 dm, rossman에 가서 이것저것 샀더니 13만 원을 썼다. 한국 블로그에 많이 나오는 루마니아 크림하고 뭐 세럼 바디로션 아이크림 화장 지우는 티슈 등. 써보고 괜찮으면 더 사가야겠다. 더 사고 싶은데 기내 수화물이라 1리터를 넘으면 안 된다. 엄격하게 안 잡던데 예전에 저가 항공 탈 때 잡힌 적이 있어서 웬만하면 지키려 한다. 버리면 아깝다.


헝가리 와서 달라진 점!

- 모스크와 기도 방송 소리가 사라졌다

- 물가가 조금 비싸졌다. 파스타 2만 5천 원

- 건물의 색의 계열이 다르고, 더 진하고 웅장하다

- 사람들이 좀 차가워 보인다

- 호텔에서 무슨 city tax인가를 낸다 5천 원 내외.

- 체크인하는데 집 주소를 반드시 적으라 한다

- 갈매기들이 사라졌다. 시시 때때로 등장하는 고양이, 길에 누워있는 대형견들이 안 보인다.

- 화장실 수돗물을 마시면 된다. 호텔에 생수가 없길래 그냥 탭 워터 마시나요? 하고 로비에 물어보니 부다페스트 물은 굉장히 깨끗하다고 한다. 마셔보니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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