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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24. 2024

외국 가면 사 오는 세 가지

새벽부터 비가 투둘투둘 내린다. 호텔인데 제일 높은 층이어서 에어비앤비에 묵은 듯 경사진 천장에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데 좋다. 방에 있으니 너무 따뜻하고 안락해서 잠옷 바람으로 누워 있는 게 좋고 나가기가 싫다. 기침으로 새벽에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어서 6시 이후로 깨어있는데, 그래도 10시 반 정도면 나가서 돌아다니려고 한다. 기침이 안 멎어서 유튜브로 기침 멈추는 법을 치니 한의사들이 혈자리를 알려준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본다.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기침이 심하지 않았으면. 옥타곤 지하철역까지 걸어 나와 근처에서 연어 베이글과 루이보스바닐라 티를 주문했다. 베이글을 따뜻하게 해 드리냐고 물어봐서 아무 생각 없이 네, 했는데 누르는 기계로 구워주는 거라 베이글 식감이 사라져서 아쉽다.

특히 유럽으로 오면 스타킹을 꼭 사러 돌아다닌다. 한국하고 일본에서는 내 키에 맞는 스타킹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L이라 쓰여있고 158-170 이렇게 170까지 신을 수 있게 해 놓아도 성공한 적이 없다. 늘 가랑이보다 한 참 밑에서 겉돌아 길가다가도 계속 끌어올려야 한다. 예전 보다 허벅지 아랫배 주위에 살도 쪄서 국내 스타킹은 너무 쪼이고 답답하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인가 색깔 스타킹, 무늬 있는 스타킹이 예뻐 보이면서 외국은 좀 더 다양하니 항상 구글 지도에 검색을 해놓고 일부러 찾아다닌다. 일본에서도 겨우 사이즈가 유사한 카키색 스타킹을 찾았는데 가격이 만오천 원 정도로 비쌌다. 도쿄에는 다양한 스타킹이 많은데 키들이 작아서인지 다 작은 것만 팔았다. 터키에서도 두 개 정도 샀는데, 땡땡이 무늬, 꽈배기 무늬 3000원대에 라지 사이즈를 샀다. 엑스라지면 좀 더 편할 텐데 매장에 재고가 없다. 뭐 185까지 입을 수 있다니.


부다페스트에 도착해서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쏟아지는데 호텔 가는 길을 찾던 중 구글맵에 저장해 둔 스타킹 집을 발견했다. 세련된 할머니 같은 분이 하는 곳인데 매장 가득 형형색색 다양한 무늬의 다리 마네킹들로 가득하다. 가격을 보니 3000 포린트가 넘는다. 만 오천 원 내외인데 가끔 조금 싼 것도 있지만 이 가격에 딱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다음날 Oysho랑 Calzedonia라는 곳에서 세일하는 스타킹들을 많이 샀다. 예전에 여의도에서 일할 때 가끔 점심 먹고 ifc몰에서 오이쇼 구경 많이 했는데 없어졌다. 속옷 수영복을 주로 팔던 기억이 있는데 운동복 전문 매장인 것 같다. 바람막이도 괜찮아 보이고 레깅스도 체형별로 구분되어 있다. 이제 백수라 비싼 필라테스도 안 하니 세일을 해도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칼제도니아 카키색 스타킹 질이 너무 좋다
터키 펜티에서 산 땡땡이 스타킹 마음에 든다

부다페스트 쇼핑거리를 걷다 발견한 칼제도니아인지 고풍스러운 파리 어쩌구 카페 건물에 있던 속옷집은 진짜 색색가지 스타킹이 많았다. 빨강도 톤마다 종류가 많고 갈색도 연한 갈색, 황토색, 회끼 있는 갈색 등 신선한 스타킹 색깔이 많다. 나는 집에 있는 것과 색이 다른 버건디랑 카키색을 사려했는데 카키색만 L사이즈가 있다. 가격도 만원 안 쪽.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기본 스타킹이 2천 원대에 세일 중이다. 색도 살색, 브론즈, 비둘기, 남색, 검정 다양한데 XL도 무려 short와 long으로 구분되어 있다. 쟁여놓으면 학교 다닐때두 회사 다닐때두 유용하겠다 싶어 샀다.

헝가리에 있는 독일 드럭스토어 dm

외국 가면 사러 돌아나니는 두 번째 아이템은 바로 아이라이너이다. 버건디색, 카키색, 펄든 남색 등 한국에선 백화점, 올리브영 어디에서도 내가 원하는 색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한국 아이라이너는 검정, 갈색 정도로 색이 단조롭다. 약간 붉은 끼가 돌아도 갈색 계열이다. 이스탄불에서는 골든 로즈라는 독일 브랜드의 두툼한 펜슬 아이라이너를 샀는데, 깎아서 쓰는 거 싫어하는데도 색이 이뻐서 샀다. 골드펄이 섞인 오묘한 연한 갈색인데 색이 입체적이고 바를 때 부드럽다. 깎는 것도 얼마 안 해서 같이 샀다. 일본에서 사 온 버건디 색을 다 써서 더 살까 하다가 유럽에 가면 더 다양하겠지, 하고 부다페스트에 왔다.

첫날은 거의 로스만, 디엠 쇼핑만 했는데 15만 원이 나왔다.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큰돈이다. 근데 엄청 많이 샀다. 치약도 사고 헝가리 오면 다 산다는 악마의 발톱 크림인가 한국인들이 좋다 하길래 하나 샀고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다 보니. 이것 말고 더 있다. 디엠에서 버건디 색 자동으로 돌려쓰는 아이라이너를 샀는데 테스트를 안 해보고 샀는데 발림성도 좋고 색도 예쁘다. 749 포린트인가 디엠 자체 상품이었는데 3천 원이 안 한다.  화장품이 너무 싸면 나라의 검증을 제대로 못 거쳤을 것 같고 유해 화학 물질이 들어있을 것 같은 의심을 늘 하긴 하는데 그래도 독일이니까 믿고. 독일인 친구가 자기도 디엠에서 자주 사는데 자체 상품 질이 좋아 자주 산다고 했다.

터키에서 사온 머그컵과 쟁반

외국 가면 꼭 사 오는 세 번째는 차다. 작년 하반기에는 회사에 다니면서 틈틈이 베트남에서 사 온 아티초크차, 몽골에서 사 온 차가버섯 차를 즐겼다. 이스탄불에 갔을 때는 딱히 특색 있는 티가 없어 보여서 말았는데 친구 집에 방문했을 때 목감기 증상이 심하니 친구 어머니가 따뜻한 물에 타준 차가 좋아서 좀 샀다. 색은 카모마일 차 비슷한데 향이 거의 안 느껴지고(난 카모마일 향을 싫어한다) 꿀에 타 마시니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친구 어머니가 심은 나무에서 나온 꽃과 이파리인데 영어로는 Linden차인데 한국어로는 잘 검색이 안된다. 이스탄불에 돌아와 마트에 가니 여기저기서 다 파는 여기서는 흔한 티다. 진통 소염 효과가 있어 감기에 좋고 소화 불량에도 좋다고 하니 나에겐 꼭 필요한 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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