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상상>
“왜 중요한 얘기는 안 해. 그래서 너는 행복해?”
“객관적으로 보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이제 벌이도 꽤 되고 내 집도 샀고, 애인하고 결혼두 할거구. 내 아기도 곧 낳을 테고.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면 이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니 마음이 어떤데? 니 생각을 말해봐. 감정이 행복하냐구.”
“음.. 뭐. 행복한 거겠지. (정적) 아까는.. 오랜만에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화내서 미안해. 근데 무슨 일로 갑자기 찾아온 거야?”
“니 소설 읽었어. 그래서 니 생각이 났어. 이 책으로 너랑 내가 연결된 느낌이 들었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구멍이 있는데, 거기는 항상 뻥 뚫려있었거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너도 그럴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 여기 이 부분, 내 얘기지? 내 생각하면서 쓴 거라고 단번에 알아봤어.”
“아닌데.”
“그럼 무슨 생각하고 쓴 거야? 엄청 야하던데.”
“그냥 쓴 거야. 꼭 필요하다고 생각돼서.”
“뭐, 독자로서 나는 좋았어. 그 부분이. 묘하게 끌려서 계속 읽게 돼. 너무 좋아. 내가 느껴져. 뭐 내 얘기가 아니라면 말고! 나만 알 수 있는 부분이니까.”
“여자 친구한테 받은 영감이야.”
“거짓말.”
“질투하는 거야?”
“아니, 전혀. 그런 점에서는 아무 마음이 안 들어. 너를 완전히 잊었으니까. 그냥. 공감이 많이 갔다구. 너는 내 첫사랑이었고, 너랑은 계속 연결된 느낌이 들어. 그냥 언젠가 그 얘기를 너한테 꼭 하고 싶었어. 우울한 마음도 치유가 되는 것 같았어.”
“그런 건 상담사한테 받아.”
“그래.. 넌 소설가잖아. 그냥 말할 데도 없고, 넌 들어줄 수 있을 거 같아서.”
“나랑 헤어지고 다른 남자들하고는 만났어?”
“한 대여섯 명?”
“진지한 관계를 맺었어?”
“아니. 진지한 관계는 못 맺었어. 노력해도 잘 안됐어. 너 때문은 아니고. 그냥 내 문제야.”
“어이쿠. 그렇구나. 아, 그리고.. 아까는 거짓말 맞아.”
“응, 알아. 그건 나밖에 모를 거야. 얘기 안 할게. 그리고 니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설렘도 느꼈어. 글에서 설레고 수줍은 마음, 눈빛, 그런 게 가득 느껴졌어. 그래서 엄청 화가 나고 짜증이 났어. 너는 나에게만 설레야 하는데.”
“난 너의 소유물이 아니야. 넌 나를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니가 그런 말을 하다니 웃기네.”
“너를 빼앗긴 느낌이 들어서 싫어.”
“그냥 가라.”
“근데 왜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고, 그렇게 안고 싶다는 표정으로 봐?”
“사랑하나 보지.” 하면서 남자는 여자에게 이끌려 안으려 한다.
“안지 마. 지금 나를 안아주면 그 여자랑 나랑 둘 다 놓쳐. 그런데도 안고 싶어?”
“미안. 충동적이었어,” 라며 다가가는 걸음을 멈춘다.
“그래. 난 너에게 확실함을 주는 사람이 아니니까 넌 나를 선택하지 않겠지. 너를 사랑한다고 느꼈지만, 그 마음도 충동적이었던 것 같아. 여길 오는 게 아니었어. 역시 우리는 그래. 이만 갈게. 잘 살아! 다신 볼 일 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