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난닝(1)
제2터미널에서 샤먼항공을 타고 샤먼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자주 가지만 제2터미널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처음이다. 샤먼까지 2시간 45분, 그리고 2시간 반 뒤에 환승하여 2시간 정도 더 날아 난닝에 도착하는 경유 코스다. 그나마 환승 시간이 짧아 당일에 도착할 수 있는 코스여서 저녁에 도착하는 게 걸리지만 예약했다. 직항도 없었지만 2시간 남짓 타고 환승하는 게 오히려 네 시간 반 내내 앉아있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도 전에 싸구려 소재의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여자 승무원들이 물과 견과류를 나누어준다. 옷이 싸구려 소재인지 어쩐 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래 보인다. 2시간 남짓인데 두 번 다 기내식이 나왔다.
환승을 해야 하는데 환승으로 가는 길은 다른 나라로 가는 환승길이다. Transfer 화살표 밑에 여러 나라 예시가 쓰여있고 그중에 Nanning은 안 쓰여있다. 흠 처음엔 공항직원처럼 보이는 사람들한테 난닝으로 간다고 영어로 묻는데, 그래도 난닝을 알아듣고 방향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쪽으로 가봤는데 나가는 출구랄지 그런 곳이 없고 수화물만 뱅글뱅글 돌고 있다. 아무래도 환승시간이 빠듯해서 초조한 마음에 공항 직원들에게 몇 번 더 질문을 해보는데 영어가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 다행히 한국에서 사 온 Esim이 잘 작동해서 번역기에 난닝으로 가는데 어디로 나가야 하냐, 하고 물었다. 그때만 해도 난 완전히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야 하는 걸 생각지 못했다.
한 승무원이 번역기를 틀어 어디로 나가서 몇 층으로 가라, 하고 써서 보여주고, 내가 어리둥절하자 직접 길을 안내해 주었다. 결국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서 들어가야 했고, 중국은 사람이 많으니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안 됐다. 영어는 못하지만 친절한 여자 승무원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 길에 그는 자기 고향이 난닝이라는 번역글을 보여주었다. 내가 반가워하며 떠듬떠듬 대학교 1학년 교양 시간에 배운 기초 중국어를 떠올리며, Wo de zhongguo pengyou zai nanning(내 중국 친구도 난닝에 있어)라고 반가워하며 말했다. 문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는 듣겠지 뭐.
결국 여기 샤먼에서 입국 심사를 받는 것이었다. 나는 왜 난닝에서 받는 걸로 생각했지. 단순 환승이니 최종 목적지에서 입국 심사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여긴 국내선이니까 다시 생각해 보니 샤먼에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입국 심사줄은 다행히 거의 서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없다시피 해서 바로 받을 수 있었다. 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입국 심사를 하는데 입국심사를 하는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내 비자를 확인하고도 여러 질문을 했다.
- 어디로 가냐? 난닝으로 간다. 난닝은 왜 가냐? 친구랑 여행하러 간다. 난닝만 가냐? 그렇다(뭐 일단 그렇다 했다) 친구는 중국인이냐? 그렇다. 친구 이름은 뭐냐? 누구누구다. 누구누구는 남자친구냐? 아니다 친구는 여자다. 난닝은 처음 가냐? 그렇다.
그는 그냥 난닝을 가는 게 신기해서인지 의심보다는 호기심 있는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통과시켜주지 않을 생각보다는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 뉘앙스로 느껴졌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국내선 게이트까지 가는 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몸수색을 엄청나게 한다. 아랫배는 왜 이렇게 만져보는 거야. 젤리처럼 통통해서 그런가. 위장약 두 알을 따로 기내 가방에 넣었는데 다행히 그냥 통과했다. 뉴스에서 최근에 한국인 부부가 감기약 성분인가 중국에서는 불법인 약을 가져와서 억류되었다는 것을 봐서 혹시나 찝찝했다.
중국에 도착하니 외교부에서 보낸 문자는 괜히 무서웠다. 뉴스에서도 국정원에서 중국 반간첩법으로 핸드폰도 열어볼 수 있으니 카톡 페이스북 등 사용 주의하라고 한 게 생각나서, 괜히 카톡을 보내고 난 뒤에는 메시지 삭제를 눌렀다. 다행히 여행 기간 동안 소도시와 시골로만 다녀서 그런지 공안이 나를 뒤지는 일은 없었다. 같이 다닌 중국인 언니가 공산당원이라 막아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휴, 공항인데 에어컨을 안 트나 더워서 혼났다. 게이트가 어딘지, 거기에 난닝행이라고 쓰여있는지, 혹시 시간이 바뀌지는 않았는지 코앞까지 가서 체크를 한 뒤, 한숨 돌린 나는 목이 말랐다. 알리페이나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를 사용할 수 있게 깔아왔는데 친구네 집에 가기 전에 이게 잘 작동하는지 해보고 싶어서 스타벅스에 갔다. 스타벅스는 꽤 비쌌다. 메뉴에는 다행히 중국어와 영어가 같이 쓰여있었는데, 영어로 메뉴 이름을 말하는 데 못 알아듣는다. 아니 자기네 메뉴는 알아야지. 손가락으로 가리킨 후 처음으로 알리페이로 결제를 해본다. 내 바코드를 보여주니 스캔해 간다.
음료를 마시며 중국어로 쓰여있는 공항 내 식당, 상점들을 보면서 중국에 왔구나, 하고 느껴본다. 공항 밖 멀리 보이는 샤먼은 도시 도시 한 게 서울 같은 느낌이 든다. 나중에 친구에게 물어보니 샤먼도 여행할 만한 곳이라고 나중에 샤먼에서 만나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탑승할 때가 되어 게이트로 가니 게이트로 나가면 또 만원 버스 같은 것을 타고 비행기까지 가야 한다. 거의 퇴근길 2호선 지옥철처럼 내 바로 앞에 사람이 꽉꽉 들어찼다. 나는 먼저 타서 등을 기댈 수 있어서 어쩌다 보니 사람들이 나를 향하는 방향으로 서있다. 여기는 외국이지만 그래도 나는 동양인 외모니까 나를 외국인으로 생각을 안 하겠지? 하고 생각했다. 내 옆에 두 개 있는 의자 중 하나에 앉은 어린 꼬마 여자아이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하지는 않았다. 혐한이 심한 중국인들이 가득하다면 내가 안녕? 한 순간 모두가 나를 쳐다보면서 갑자기 이 좁은 공간에서 방어할 수도 없게 나를 공격한다면? 하고 이상한 생각이 뻗쳐왔다. 얼른 고개를 도리도리 해서 이상한 생각을 물리쳤다.
샤먼을 날아서 난닝으로 간다. 자동으로 좌석이 결정되어 앉았는데 앞자리라 좋긴 한데 창가자리다. 약간의 폐소공포가 있는 나는 걱정이 돼서 타자마자 승무원에게 영어로, 혹시나 자리가 남으면 복도 자리로 옮길 수 있을까요? 하고 물으니 당황하길래 나중에요! 하고 말하니 여유를 찾은 눈빛으로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출발하기 전에 내 옆자리에 앉은 소녀들은 한국인이냐 물었고, 너무 밝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영어로 이것저것 물었다. 옆자리에 앉은 소녀가 수줍어하며 나보고 아름답다고 그리고 자기는 Kpop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중국에 와서 처음 영어가 통했다. 나는 난닝에 친구를 만나러 가고 광시 지역을 여행할 거라고 말했다.
소녀들과 대화를 하면서 가면 재미있었을 텐데 손님들이 다 타자 승무원이 까먹지 않고 뒷자리로 옮겨도 된다고 챙겨주었다. 감사했다. 비상구 뒷자리였는데 옆에 사람이 없는 자리로 안내해 줬다. 널찍하게 갈 수 있어 행복하고 마음도 안정되어 아까 먹은 기내식이 고를 수도 없이 일괄적으로 똑같은 게 나왔는데도 불만감이 들지 않았다.
- 나 공항에 8시 넘어서 도착하는데 집 주소 알려주면 그 근처에 호텔을 잡아서 택시 타고 갈게 너무 늦어서! 하고 내가 이틀 전에 친구에게 아이메시지를 보냈더니(같이 여행하는 친구 두 명이 다행히 아이폰을 쓴다)
- 그럴 필요 없어, 우리 집이나 엄마 집에 빈방에서 자면 돼. 어차피 엄마는 주말에 아빠가 있는 시골로 갈 거야. 그리고 내가 데리러 갈게. 물론 운전은 남편이 하지만.
하고 답장이 왔다. 늦은 시간이라 미안했지만 신세를 지기로 했다. 비행기가 약간 늦게 도착했는데 친구도 다행히 늦게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지는 않아서 덜 미안해서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너무 반가워서 포옹을 했다. 약간 어색한 공기도 잠깐 흘렀지만 금방 할 얘기가 넘쳐났다. 일단 샤먼 공항에서의 일을 쏟아냈더니, 자기 핸드폰 번호를 알려줄 걸 그랬다고 했다. 친구 남편은 친구가 결혼하고 처음 봤는데 우리보다 한 살 많은데도 동안이고, 무엇보다 영어를 잘한다.
드디어 우린 난닝 시내에 도착했고, 나는 친구 엄마 집으로 가서 자게 되었다.
물론 돌아오는 중국 항공은 엄청나게 연착되고 무기한 기다리고, 속 썩이는 순간이 많았지만 결국엔 잘 풀렸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