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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면에 나이는 왜 물으시죠

치앙마이(24)

by 모네
치앙마이대학교 앙깨우 호수


치앙마이대 정문 근처 야시장 상점들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숨은 야시장이 있는데 여긴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해가 질 무렵 앙깨우 호수를 산책하다가 집으로 가는 길은 걸어서 돌아가는데 가는 길에 늘 들르는 곳이다. 운동할 때 가방을 가져가기 번거로워서 주머니에 핸드폰, 방 열쇠와 함께 혹시 몰라 300바트 정도 비상금만 주머니에 쑤셔 넣고 나와서 돌아오는 길에 소소하게 뭘 사 먹거나 한다. 여기서 누렇게 되어버린 핸드폰 케이스와 깨진 액정필름을 각 100바트씩 주고 갈았고, 느낌 있는 황토색 셔츠를 샀고 태국 mz들이 양말처럼 신는 시스루 양말을 샀다. 빈티지 옷도 정말 대규모로 걸어 놓고 팔아서 이것 저것 보다가 150바트하는 그레이색 청바지가 예뻐서 입어봤는데 29인치인데 편하게 맞지는 않아서 그냥 사지 않았다. 원래 빈티지보다는 새옷을 좋아해서 거의 사지는 않지만 빈티지는 구경만 해도 재밌고 아주 가끔 너무 좋은 가격에 예쁜 걸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이곳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한 줄에 3개씩 꽂아놓고 5바트에 파는 곱창꼬치가 너무 맛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닭똥집인가 하고 뭔지 몰라서 하나만 주세요, 하고 먹어봤다가 쫄깃 고소한 맛에 3개 더 주세요, 하고 먹게 되었다. 먹는 가판대가 쭉 펼쳐져 있고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많아서 지나가기만 하면 경쟁적으로 자기네 식당으로 오라고 붙잡는다. 가판대에서 사 먹은 음식은 바나나로띠, 떡볶이, 간장새우 덮밥 등인데 모두 맛있고 여행자는 거의 없고 어린 대학생들이 많아서 관광지 느낌이 안 나고 새롭다. 대학가답게 저렴한데 꽤 예쁜 옷들이 많아서 구경하다 보면 재밌어서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옷가게를 둘러보다가 더워서 근처 드럭스토어에 들어간다. 에어컨이 나와서 시원하다. 붉은 노을을 비롯해 빅뱅 노래만 나온다. 알바생이 빅뱅알 좋아하나. 오랜만에 듣는 음악들이다. 님만해민 근처 win cosmetic이라는 곳보다 더 크고 섹션 분류가 잘되어 있어서 태국 화장품들을 구경한다. 팩이나 몇 개 사볼까, 하고 둘러보며 thailand number 1이라고 쓰여있는 곳에서 몇 개 고른다. 달팽이 점액? 과 진주펄 성분이 들었다는데 태국도 우리나라 식약처만큼 유해 성분에 얼마나 관대한지를 잘 모르니 많이 사지 진 않는다. 그리고 가격도 한국 팩과 비교해 그리 메리트가 있지도 않다.


치앙마이 라이브바 공연


팩 몇 개를 사서 가방에 넣고 올드타운의 재즈바까지 32바트에 바이크를 불렀다. 8시 반 정도 되었다. 한국이라면 이 시간에 운동을 제외하고는 밤에 혼자 돌아다닐 일이 없는 게 딱히 갈 데도 없다. 치앙마이에는 곳곳에 라이브 연주를 하는 바들이 있으니 여기저기 가보는 재미가 있다. 혼자서 라이브바에 가서 공연을 보러 가는 것에 재미를 느끼던 차여서 오늘도 한 곳으로 향한다. 바이크에서 내리는데 이미 사람들이 많니 북적인다. 오늘은 앉을자리도 없어 밖에서 서서 보기엔 날이 덥고 꿉꿉해서 밖에서 몇 분 정도 지켜보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내가 두리번거릴 때 의자에 혼자 앉아있던 한국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가, 뭐 워낙 한국인들이 많기에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난 것처럼 반갑진 않았고 그냥 시선을 거두었었다. 한 블럭정도 꽤 걸었는데 뒤에서 저기요,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아까 그 느끼하게 생긴 한국 아저씨다. 50대에 가깝거나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나이 들어 보이는 40대 후반일 수도 있고 뭐 나이가 몇 살인지 관심이 간다기 보다 묘사를 위해. 그냥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한국인이시냐고 묻길래, 여기까지 쫓아온 게 싫은 감정에 주춤하며 “(한국인인 게 뭔 상관이고 어쩔 건데) 네.” 하고 난색을 표하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혼자 왔냐, 언제까지 있냐, 언제 따로 볼 수 있냐고 물으며 자긴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밥이나 커피를 먹고 싶다고 했다. 거짓말을 못하는 나는 사실은 말하지만 주춤주춤 말하며, 혼자 왔지만 얼마 안 있는다고 했는데 아저씨는 꼬치꼬치 얼마나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이라 낮엔 공부하느라 시간 내기 어렵다고 말했고, 그는 실망을 하고 놓아주었다.


여자로 접근한 게 아니고 호기심이 생기고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서 반갑고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은 거였다면 자기는 누구누구고 이런 사람인데, 하고 자기 소개를 먼저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 대 사람으로 낮에 커피 한 잔 마시며 가벼운 스몰톡을 나눴을 수도 있다. 낯선 사람인데 밤중에 길을 따라오면 이상한 사람으로 더 의심을 하게 되니까.


이런 일이 더 있어서 찝쩍거리는 게 부담스러울 때 종종 은연 중에 학생이라고 말하면 애기겠네요, 하고 어리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게 느껴져서 자주 애용한다. 그런데 원래 나이를 안다고 해도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게 싫었다. 가정이 있을법한 나이로 보이는데(실제 나이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저씨들이라는 게 싫었다) 자기도 혼자라고 어필하면서 적극적으로 말 거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 남자들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고 추구하듯이 나도 어린 남자가 좋거든요. 여자들은 꼭 평소에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상남자를 좋아한다면서 막상 다가가면 꼭 그러더라, 하는 푸념소리가 들리지만.


아주 가끔 투어나 동행, 아니면 카페나 바에서 우연히 한국인을 만나면 첫 만남에 친하지도 않은데 나이를 묻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다. 치앙마이에서 만난 다른 외국인들은(아시아인 포함) 자기는 몇 살이라고 자연스럽게 “오, 난 00살인데도 이래~” 하고 말을 한 적은 있어도 서로의 나이를 묻지 않았다. 뭐 더 알아가게 되고 친해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이건 수년 전 입사할 때도 느끼며 놀랐는데 먼저 입사한 또래 사람들이 첫날 신입 직원인 우리를 바로 보자마자 “몇 살이에요?” 하고 묻는 것이다. 나이든 출신대학이든 어디에 사는지는 친하지 않은 사이에선 말하기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사적인 정보를 쉽게 묻는 그 태도가 이해가 안 가고 무례하게 느껴졌었다.


그냥 하루 지나가며 보는 사이에도 한국인들은 상대의 나이가 꼭 궁금한가 보다. 초면에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는 사람에게 나는 묻는다. “나이가 왜 궁금하신데요?” 하고 물으면 당황하며 뭐 그냥, 아니면 그게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거예요? 말해주는 게 힘들어요?친해지는 과정이잖아요, 하고 나를 예민한 사람 내지는 별종 취급한다. 속으로 나는 이렇게 느꼈다. ‘자기의 단순한 궁금증을 위해 조심스럽게 묻는 것도 아니고 가십거리처럼 쉽게 물어보는데 내가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은 나의 정보를 쉽게 줄 필요가 있나? 잘 모르는 사람이고 친해지려고 알아가고 싶은 매력도 모르겠는 사람에게? 난 오늘 보고 말 사람인데 왜.‘ 그리고 이성의 경우에는 나이를 말하면 자기와의 가능성을 점쳐보고 가능성 있는 사이로 대하는 기분이 싫을 때가 있고 성별과 관계없이 나이로 우위를 점하며 친하지도 않은데 반말을 하기 시작하는 게 싫다. 내가 나이가 더 많다면 갑자기 어렵게 대하는 것도 오히려 그들이 말하는 ‘친해지는 과정’에서 좋지 않은 경험이 있었다. 친하지도 않은데 누나나 언니라고 하는데 나는 우리 관계를 그렇게 형성할 정도의 사이가 아니어서 어색하고 그 역할을 할 자신도 없다. 친한 사이라 해도 서로 존대하고 존중하며 거리를 둔 채로 지내는 걸 선호한다.


그리고 나이로 평가받고 판단받는 것보다는 나로서 비춰져 사람 대 사람으로 알아가는 게 좋다. 나이를 알게 되면 나조차도 그 나이대에는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인 기준과 압박감의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평가하게 된다. ‘이 나이에 아직도~ 이 나이에 왜~’ 하는 막이 씌워진다. 그래서 처음 만나서 대화하는 데 굳이 그 막을 인위적으로 쓸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그 사람의 나이가 궁금하거든 조심스럽게 예의를 다해 묻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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