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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맘충이라고 하는지 알겠어요

by 모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나는 복도 자리에 앉았고 창가자리에는 5살 정도 되는 여자 아이가, 가운데는 아이 엄마가 앉았다. 그 뒷자리에는 아이 아빠가 나머지 한 아이를 각각 전담마크하고 있었다. 새벽비행이라 졸음을 참다 참다 잠이 들었는데 중간중간 깰 때마다 아이 엄마는 졸릴 텐데도 자지 않고 아이를 케어했다. 아이가 편하도록 자기가 창가 자리로 가고 아이 머리를 자기 품 쪽으로, 다리를 내 쪽으로 향하게 뉘었다.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던 것이 아이 엄마가 아이가 잠결에 혹여 조금이라도 발을 내쪽에 닿게 할 가능성이 있을 때마다 재빨리 다리를 손으로 막고, 또 심하게 움직인다 싶으면 자기 쪽으로 완전히 데려와 껴앉으면서 왔기 때문이다.


나는 좀 닿아도 괜찮으니 자면서 가시라고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요즘 하도 언론을 통해 맘충 기사가 뜨고 하니까 그 기사로 대변된 요즘 엄마들 같지가 않았다. 너무 인상적이었고 대단해 보였다. 그 장면이 너무 뇌리에 남아 한국에 돌아와 동료와 카톡을 하면서 너무 대단한 요즘 엄마를 봤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개강을 하고 학교를 가는 길 지하철은 당연히 한국 사람들로 가득하다. 외국에 몇 주 이상 있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지하철에 앉은 건너편 사람들을 계속 관찰하게 된다. 남녀노소의 옷, 신발, 가방, 얼굴 생김새, 표정을 구경한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치앙마이에 있는 친구들이 how are you? 한국에 돌아가니 어때? 하고 메시지를 보내면, 응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 내 영혼은 아직 태국에 있어! 하고 대답한다.


학교를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퇴근 시간이라 만원이다. 사람들이 빼곡하게 문 앞까지 차는 지옥철이 되는데 다행히 몇 정거장 거치며 약간은 널럴한 좌석 없는 노약자석 부근까지 오게 되어 등을 기댔다. 노트북이 들어 배낭이 무거웠는데 잘됐다. 그런데 한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옆 칸에서 엄마로 보이는 40대 여자랑 다가오는데(애를 봐주는 이모님일 수도 있으려나) 이미 엄마 손을 뿌리치고 소리를 지르며 껑충껑충 뛰어 온다. 신나서 리드미컬하게 흥이 난 게 아니라 촘촘한 사람들 다리 사이로 마구잡이로 무지막지하게 다니는데 엄마는 애를 두 손으로 꽉 붙들 생각을 안 한다. 너무 심하다 싶으면 눈치를 보다 한 번씩 한 손으로 애의 손을 잡았다가 이내 풀린다. 결국 뛰어다니다 내 발도 밟고 다른 여자 다리도 쳤다.


“아이가 사람들 발을 밟을 것 같아요.”라고 아이 엄마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밟았고 애가 지나갔으니 괜찮지만 또 다른 사람을 밟을 게 뻔하니 조치를 취하면 좋겠다 싶었다. 요즘 엄마들한테 아이의 태도에 대해 지적하면 큰 싸움이 나고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 몸을 사리게 되지만 말했다. 그나마 기분 나쁘지 않도록 침착하고 예의 있는 목소리와 태도를 담아. 아이 엄마는 하하, 하고 머쓱해하며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아이를 제지하지는 않는다. 결국 또 뛰어가는 애를 놓치고 멀리 혼자 어린이 깡패처럼 다니는데도 느긋하다. 멀리서 하얀 줄 이어폰을 한 젊은 여자가 적나라하게 ‘너무 심한 것 아니야?’ 하는 표정으로 눈으로 아이 엄마에게 욕하는 게 명백하게 보이는데도 아이 엄마는 흐린 눈으로 허허, 죄송해요, 하며 사람 좋은 눈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찾으러 갈 뿐이다.


시민들이 원하는 건 사람 좋은 너털웃음과 말 뿐인 사과가 아니라 집 밖으로 나오기 전에 공공 예절을 교육하고 만일 민폐를 끼치면 더는 그러지 않도록 아이를 책임지고 전담 마크하는 하는 것이다. 저출생 시대에 애국하네, 하며 따뜻한 눈으로 봐주는 것도 정도가 있다. 정 애가 통제가 안되고 자기가 통제할 자신이 없으면 택시나 자차를 타거나 출퇴근 사람 많은 붐비는 시간이라도 피하면 좋겠다.


치앙마이 빅씨마트에서 한국어로 큰소리로 떠들며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그 부모도 너무 큰 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소리를 조금만 낮추면 어떨까?’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고 넘어갔다. 남의 집 자식 교육에 간섭 말라, 뭐가 시끄럽다고 그러시냐, 웬 오지랖이냐, 하고 싫은 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부모도 큰소리로 떠드는것을 보아 문제로 인식할 것 같지 않고 오히려 황당해할 것 같았다. 욕을 잘하게 생긴, 좀 일진 포스가 나기도 했다. 누구 한 명이 말해 모두가 조용한 공간을 즐길 수 있다면 나 한 명 희생해 총대를 메는 것이 나았을까. 그 총대를 부모가 알아서 메주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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