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김 부장 이야기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은 전문대를 나와 보험회사에 다니다가 미래가 창창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대기업 부장에 이르도록 내조를 했으며 서울에 아파트도 샀다. 아들은 연대를 보냈다. 평범한 중산층의 모습이다. 보험회사 다니던 20대 초반 그녀는 매우 개성이 있고 발랄한 사람이었는데 아기를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다 보니 그냥 경력 없는 평범한 주부가 되었다. 지금은 회사 짤린 남편을 대신해 생활력 있게 살고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보단 10년 정도 어린 세대인데 아이가 두 명 이상이 보편적이던 우리 세대와 비교해 식구 수는 더 간소화되었겠지만 맞벌이하지 않는 가구의 삶은 비슷하다. 오히려 한 반에 외동인 사람은 한 두 명 정도이던 게 요즘은 두 명 이상이 희귀하려나.
우리 어릴땐 일 안 하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반 친구 엄마들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우리 집은 맞벌이를 해야 하는 집이었지만 그래도 친해진 아줌마들끼리 근교에 한정식 집이나 찻집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커서 가끔 엄마가 근교 어디를 데려가면, 엄마가 이런 데는 언제 와봤어? 하면, 예전에 니네 어릴 때 엄마들하고 많이 다녔지, 하고 말했다. 남동생 친구 엄마들은 애들끼리 친한 경우, 나와 관련된 엄마들은 그냥 교육열이 높은 엄마들이 많았다.
엄마들 모임을 가면 어떤 모임이든 꼭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이대를 나왔다고 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대개 남편은 사업을 하거나 대기업에 다니거나 고위공직자였는데 넓은 집에 살고 체어맨 같은 사장님 차를 타고 다닌다. 그런데 대학 얘기가 나오면 너도나도 이대를 나왔다는 거다. 그 당시 이대가 유행이었나. 이 작은 집단에 이대 비율이 이렇게 높을 수가 있는 건가 확률적으로. 결과적으로 대부분은 거짓이었다. 학교에서 부모님 최종 학력을 손들며 수요 조사를 하던 시절인데 손든 사람이 거의 나를 포함해 다섯 명 정도도 안 됐다. 그리고 엄마들 모임에 진짜 이대를 나온 사람이 있던 거였다. 대화와 표정을 통해 거짓말은 드러나고 민망해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동네마다 경제력마다 다를 수 있는데 우리 엄마가 살던 경기도 시골에서 그 당시 여자들은 똑똑한 친구들은 상고에 가서 바로 취업하거나 시집을 가는 사람도 있고, 자기 초등학교 친구들은 초졸 중졸도 많다고 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우리 엄마는 상고에 갔지만 할머니가 취업해서 삼촌들 등록금을 보태라는 말에 집을 나와서 일 년간 아득바득 등록금을 모아 서울 중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였다. 비슷한 또래인 우리 교수님도 자기네 학과에 자기 혼자 여자였다고 했었다. 즉, 지금 우리 또래 대다수가 대졸이듯이 평균적으로 모두가 고졸인 게 평범한 것이고 당연했고, 그것이 실력 없고 창피한 게 아니었다. 왜 그런데 친구 엄마들은 거짓말을 했을까?
남편은 돈도 잘 벌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데 자기는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워킹맘에게 자기도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돈 벌 필요가 없어서 내가 일을 안 하는 거다! 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대졸자가 점점 흔해지고 당연해지는 시대가 되면서 컴플렉스처럼 느끼게 된 걸까. 나름 자기도 똑똑했는데, 지금 시대면 좋은 대학도 갔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그 많고 많은 대학 중 뭔가 신여성처럼 보일 수 있는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카드를 내보였나. 어쨌든 자신을 포장하고 싶었나 보다. 자존감을 서열화된 물질적인 것에서 찾는 사람은 더욱 자격지심이 강해진다.
우리 자식뻘이나 손주뻘 되는 세대에는 다시 오히려 대학 나온 사림이 별로 없는 시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극단적으로 말해 대학에서 얻는 지식 그 자체는 챗 지피티로 얻을 수 있어 대학의 가치가 사라지고 직업의 대전환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스타에는 지도교수에게 논문을 봐달라고 가니 챗지피티 한번 돌려서 수정한 걸 다시 가져오라 해서 아아.. 내 등록금.. 하는 짤이 뜬다. 젠슨황이 디지털센터에 개발자들은 필요 없어서 잘려 나가는데 전기 수리할 배관공은 귀해서 모셔야 할 존재로 묘사하였다. 너 공부 못하면 저 아저씨들처럼 된다, 고 우리 부모세대가 혀를 끌끌 차던 이들이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이다(물론 미국 물가 감안). 임원 승진 못하고 짤린 김 부장보다 자기 사업체 가지고 정년 없이 꾸준히 일하는 카센터 사장인 형이 간지나지 않는다고 가치가 덜하다 할 수 있는가.
개인의 선택이고 가치 있게 두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 그렇다고 뭐가 우위에 있다고 결론짓고 싶진 않고 자기 자존감을 피상적인 것에 연동시키지 말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