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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Sep 30. 2019

연극배우의 삶은 어떨까

어제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연극을 보았다. 약 2주 동안 공연이 진행되고 이번 주면 막을 내리는 대학로 연극이다. 체코 원작이라니 그 감성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그리고 사람마다의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니 궁금해서 정말 오랜만에 연극을 보게 되었다.


2017년에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가 교직원에게 주어지는 복지 혜택인지 뮤지컬 표 다섯 장이 생겼다고 해서 고교 동창들 다섯이서 소극장 뮤지컬을 보러 간 뒤로 이런 공연을 보는 것이 처음이다. 대학생 때는 신기하게도 주변에 연극영화과를 나와 배우를 하는 언니 오빠들이 종종 있어 초대권으로 공연을 자주 보러 갔었다. 대사가 거의 없는 수준의 작은 역할이라도 아는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다른 모습으로 연기하는 것을 보는 건 꽤 신기하고 흥미로운 경험이다. 가끔 보는 연극이지만 나는 연극을 보는 것이 좋았다. 바로 코앞의 무대에서 배우들이 대사를 하는 것이 신기해 뚫어져라 쳐다보고, 한 사람이 대사 할 동안 배경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동작으로 움직이는지, 무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는 것이 정말 흥미롭다.


이번에 본 연극에서도 무대 곳곳에 쌓여있는 체코어로 된 신문, 다양하게 활용되는 뒷 무대, 연극 특유의 소품들을 보는 맛이 있었다. 아쉬웠던 것은 장장 3시간가량 되는 시간임에도 연극의 주제와 예술성, 원작을 잘 살리지 못해 밋밋했고, 주연 배우가 극을 끌고 갈 매력과 표현력이 부족해 보였다. 그럼에도 입체적으로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배우들이 극에 흥미를 더해주었다. 특히 가장 고령의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빛나 보였다. 그 발성, 실제와 같은 연기, 표정 등에서 오랜 시간 쌓은 전문성이 느껴졌다. 저 나이까지 어떻게 저렇게(그렇게 고령은 아니지만 50대 정도) 대사를 외우고, 캐릭터를 연구하고,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서서 예술을 표현할까. 대단하다. 저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 배우가 되지 않고 그냥 남들처럼 회사원이나 평범한 길을 걸었으면 저 자리에서 볼 수 없는 사람이잖아?


예전에 논술 시험에 나왔던 재미난 문항이 떠올랐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복원하자면 이런 문제였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무슨일 하세요?"
"저는 배우입니다."
"아, 어느 레스토랑에서 일하세요?"
예술계에는 위와같은 농담이 있다.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담아 이어지는대화를 구성하시오.

재미있는 논술 문제라고 생각하며 답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대화를 생각하니 항상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연준비 혹은 오디션을 보러다니는 주변 사람들이 떠올랐다. 또, 생활고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그 길을 내려 놓고 일반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거나 작은 레스토랑을 차리거나 연기학원을 차리는 등 결국 다른 길을 걷는 이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 중에 나랑 같은 과 대학동기는 대학을 다니며 연기에 눈을 뜬 뒤 대학 4년을 졸업한 후 연기로 유명한 학교로 다시 신입학한 친구도 있다. 정말 용기있다고 느낀게, 한창 다른 선후배 동기들은 취업을 준비하거나 고시 혹은 대학원/로스쿨과 같은 현실적인 길을 준비할 때 "니가? 연기를?" "멀쩡한 길 놔두고 왜?" 이런 비아냥을 들으며 가고 싶은 길로 전진하였고, 인정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항상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디션을 보러다니며 공연을 준비하여야 하는, 얼마 간의 연봉을 받으며 안정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주변 친구들에 비해 매우 불안정한 생활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얼마나 가슴뛰고 행복할까.

 


대개의 사람들이 틀에 박힌 생활의 궤도에 편안하게 정착하는 마흔 일곱의 나이에,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던 그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왜 가족들을 놔두고, 안락한 삶을 두고 떠나 그 나이에 꼭 그림을 그려야 하냐는 비난어린 주변의 말에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난 과거를 생각지 않소. 중요한 것은 영원한 현재뿐이지." 라며 우직하게 예술의 길을 걸어 나간 <달과 6펜스> 속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 사실 나는 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읽었다. 타인의 삶과 가치관, 그 확신을 누구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나로서는 도덕적인 문제로 분개하는 일이 어쩐지 쑥스럽게 여겨진다. 그런 일은 어쩐지 자기 만족을 위한 일 같아서.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라는 작중 화자의 말도 공감이 간다.  


어제 본 연극 <일상의 광기에 대하여>로 부터 느낀 주제의식과도 통하는 <달과 6펜스>에 나온 구절로 글을 마친다.

세상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는 것.

이상해도 된다. 나만 이상한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이상하다. 이상하면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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