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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y 29. 2019

살아남으려거든 예술을 즐겨라


4차 산업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서서히 체감 중이다. 도통 이해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 비트코인 어쩌고라는 가상 화폐와, 그 문제를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생겼다는 것,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 햄버거 가게는 자동화되어 주문받는 사람이 없다는 것, 전자정부 수준은 부문별로 1위 내지는 항상 상위권에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 등. 쓰고 보니 IT와 정보기술에 한정되어 떠올라 제대로 이해한지도 모르겠는 파편적인 열거 같기도 하다..


OECD는 15-20년 내 자동화로 인해 사라지거나 개편될 일자리 비율을 내놓았고, 한국의 연구기관도 일자리의 자동화로 직업의 대체 가능성을 분석하고 있다. 알파고가 내 자리를 대체하는 거 아니냐는 친구의 말 뿐인 걱정도 장기에는 현실화될 수 있다.


4차 산업시대는 비단 정보 기술 분야뿐 아니라 이러한 정보 기술, 소프트웨어, 아이디어가 산업 분야를 뛰어넘어 초융합, 초연결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지금은 내 생업과 관련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점점 내 생활을 잠식할 것이고 내 생업도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결국엔 나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예술


-질문하지 않는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다. 질문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능동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질문은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한계 짓는 체재(體裁)를 거스르면서 생명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하는 행위다. 세계의 단순 부속품이 되지 않기 위해서 질문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질문을 필요로 한다. 질문은 억압, 속박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사람답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반성하는 적극적인 사유 행위이다.
-문학은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제기하는 질문이다. 문학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진정한 작가는 질문하는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인 셈이다.
 
  오종우, <대지의 숨> 중에서


4차 산업시대의 중심에는 결국 인간이 있다. 바로 생각하는 인간. 그리고 나는 예술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당연시되는 것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의문을 가지게 한다. 생각하는 인간은 이처럼 질문하고 사유하는 인간이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을 구체화시키거나 업무에 녹여내고 무언가를 실행한다. 과거와 현재를 파악, 분석하고 혜안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본다. 창의적으로 문제에 대응하며 삶을 주체적으로 운영한다.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회를 변화시킨다.


대학 수업에서 예술의 기초를 배울 때 예술에는 문학 외에도 음악, 미술, 건축, 무용, 연극, 영화로 다양하다고 배웠는데 나는 이들 모두를 조금씩 다 좋아한다. 이들 각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으며 리스트의 Le Mal du Pays라는 곡을 감상하고, 서머싯 몸의 글을 읽으며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는 듯한 묘사에 회화적 감성을 느껴 그 시공간으로 잠시 떠난다. 우디 앨런의 <한나와 그 자매들>에서 소개되는 건축물들의 아름다움 속에서 얼마 전에 다녀온 바르셀로나 거리나 리스본의 신시가지 혹은 친구와 파리를 걷다 우연히 나온 골목을 상상한다. 영화와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삶을 반영하며 생각할 거리와 영감을 잔뜩 준다.


한 기관의 캐치프레이즈, 예술의 가치에 대한 확신에 스웩이 느껴진다.


나는 매일매일 예술을 즐긴다. 예술을 즐기는 것은 사치적 행위가 아니며 알고 보면 고상하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실용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며 직업예술가만이 창작행위의 적임자도 아니다. 나의 생업과 동떨어져 있다고 치부하고 멀리할 것이 아니다. 미래에 자동화로 대체율이 낮은 직업 10위 내에 모두 예술 관련 직업이라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비단 직업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업이 예술에서 얻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에서 예술을 차곡차곡 쌓아나가자. 이는 현재적 즐거움과 위안을 줄 뿐 아니라 나의 삶의 방향에 혜안을 줄 것이다. 이렇게 좋은 것이라면 지금은 효용을 잘 모르겠더라도 의도적으로라도 접해보고 싶지 않은가. 쉽고 자기에게 감흥을 주는 재미있는 것부터 접해도 좋다. 어느 순간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를 느낀다면 짜릿할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시대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거나 그 변화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이 당신에게 도전할 용기를 줄 것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도록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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