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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26. 2020

일상에서 귀여움 찾기

퇴근길에 머그컵을 씻으러 들어간 탕비실에는 온통 피자 냄새가 떠다니고 있었다. 쑥색 스웨터를 입은 남자 직원이 전자레인지 앞에서 피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왁 피자 냄새!”라고 말했더니 머쓱해하며     

“아아, 남은 게 있어서요.”라고 말했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며 아아, 맛있게 드세요, 라고 말했다. 피자를 먹고 싶어서 달라고 한 게 아닌데. 그냥 아이스브레이킹 차원에서 혼잣말을 크게 한 형식으로 말한 건데.


얼마 전에 새로운 곳에 온 2주 간의 소회를 이전 지사 부장님께 사내 메일로 써서 보냈다. ‘항상 핸썸하고 따스한 미소의 한부장님께’라는 메일을 받은 부장님께 답장이 왔다. 드디어 안부 편지도 받고 기분이 좋다면서 그간 내 소식이 궁금해서 부서 대리들에게 물었더니 잘 지내고 있더라는 말에 진작 연락드릴 걸 후회스러웠다. 안 그래도 봉준호 감독 수상소감 중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내 생각이 났다면서. 내가 무심하게 내뱉는 말과 행동을 신선하고 재밌게 느꼈다고 거기 가서도 기죽지 말고 개성과 재능을 펼치라고. 아빠 미소를 하며 내 편지를 읽고 타이핑하고 있을 부장님을 떠올리니 더욱 감사한 마음 가득이었다.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이라는 것을 언급한 수상소감을 들을 때 나는 감독이 이것의 가치를 알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구나, 자신이 빛나는 순간에 함축적으로 이 말을 고른 안목과 센스가 대단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라는 헤밍웨이의 일기 같은 소설을 읽고 있어서 더 공감이 갔다. 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처럼 굳이 주제가 뭔지도 모르게 싶게 흘러가는 잡스러운 일상과 대화 이야기가 꼭 몇 십장을 차지해야 하는가? 하는 ‘불호’ 들의 비평에 직면할 수 있다. 나처럼 ‘호’ 들에게는 이 부분이 매력 포인트인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는 거고 작가는 이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글을 쓴 건데.



내가 일상에서 귀여움을 찾는 것은 일부러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 상사의 옷을 챙겨야 하는 동료가 옷걸이에 걸린 노오란 점퍼를 자기 의자에 하루 종일 걸고 있는 장면이 귀엽게 느껴졌고, 타인의 귀여운 모습을 발견할 때 나의 눈이 거짓 없이 웃는 눈이 되어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이 든다는 것을 발견해서 앞으로 타인의 귀여운 모습을 영감 삼아 메모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를 앞으로 끌든 뒤로 끌든 노오란 옷이 일심동체가 되어 소중히 간직되는 것, 상사는 후배 직원의 챙김을 받는 존재라는 것이 새삼 귀여웠다.


얼마 전에는 Tea를 잘 모른다고 해서 내가 메신저로 대화 중에 이 티 저 티 추천해 준 동료에게 티백을 너무 오래 담그면 안 된다, 적당히 우리고 빼라고 하자 오래 우릴려고 스카치테이프까지 붙여 놓았는데 으악 지금 바로 빼고 있다고 답장이 왔다. 내 말을 듣고 바로 빼는 모습이 상상되어 귀여웠다. 말도 잘 듣네.


내가 자주 자리에 놀러 갔던 또 다른 동료는 냉장 보관해야 하는 것을 며칠 동안 자리에 두길래 안 먹을 거면 받지를 말든지 보관을 잘하든지 누구를 주든지 해야지 상해서 먹지도 못할 텐데 버리든지 왜 자리에 계속 두냐고 하자, 잔소리가 심하다며 투정을 부리는 것이 귀여웠다. 자기는 집에 가면 프린스라고 엄마도 자기를 안 건드리는데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 살면서 처음이라고 잔소리 좀 그만 하라고 투덜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소리 내서 웃었더니 이제 자리로 좀 돌아가세요,라고 했다.


나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직원들이 톰과 제리 같다고 하는 이 동료가 헤어질 때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 눈물짓게 했다. 악수를 건네며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부여잡고 오래 토닥이며 너무 아쉽다, 콤비를 이뤄 재밌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반드시 놀러 가겠다고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진지한 모습이 귀여웠다. 평소라면 조금만 닿아도 자기는 스킨십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기겁하는데 말이다.


어느 날은 고객에게 상담원 찾는 전화가 왔다. 아 그 상담원 선생님 잠깐 자리 비우셨는데 어떤 일 때문에 그러세요?라고 하니 자기가 이제 서비스는 끝나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저 000 선생님한테 너무 서운했어요. 하며 어린 애도 아니고 무엇 무엇이 서운했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마침 상담원이 자리에 돌아왔길래 연결해주냐고 하니 수화기 너머로 손사래 치는 것이 느껴질 만한 목소리로 아니라고 바꿔주지 말라고 했다. 뭐가 서운한건지 말도 잘 못알아듣겠고 큰 일도 아니었지만 서운한 감정을 느낀 것이 귀여웠고고객을 서운하게 했다는, 화려한 경상도 말씨로 맺고 끊음 정확한 상담원의 평소 상담 모습이 떠올라 귀여워 웃음이 났다.


이 외에도 상사가 더 높은 상사에게 보고하러 가기 전 멘탈이 나가있는, 당황스러움 가득한 표정을 볼 때 한참 어른이지만 좀 사랑스럽고, 엄마가 갱년기라 덥다고 반팔로 돌아다닐 때, 구내식당에서 상사와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으며 잔뜩 쫄아있는 상태인 직원을 보며, 괜히 말 걸고 싶어서 사소한 건으로 전화할 때, 사람들을 보면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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