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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Sep 27. 2019

초밥집에서


엄마가 여행으로 일주일째 집에 없다.

집에 밥이랑 반찬은 있지만 질리고 그렇다고 뭘 해 먹기는 귀찮고. 밖에 나온 김에 초밥집에 들어갔다. 줄을 서서 먹기도 하는 인기 있는 곳이지만 5시라 아직 저녁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어서 밖에서 힐끗 보니 사람이 몇 명 없다. 밝은 황토색 분위기의 내부. 주인장인 요리사를 삥 둘러싼, 10 명정도 앉을 수 있는 니은 자의 목재 테이블 하나랑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 세 개정도 있는 작은 공간이다.


내부에 들어서니 주인장 아저씨가 정말 반갑게 인사한다. 이 아저씨는 여태껏 가본 식당 중 가장 친절하다. 특별히 뭘 더 해주는 건 아니지만 기계적으로 나오는 친절한 말투가 아니라 말투에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까지 친절하지 않아도 되는데 싶을 정도이지만 과잉친절로 부담스럽게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니은자의 긴 부분에 꺾이는 위치 부근에 앉아 주문한 음식이 나올 동안 니은자의 짧은 부분에 앉아 있는 여성을 왠지 관찰한다. 영화 <풀잎들>이나 <카페> 속에 들어온 듯이. 에어팟인지 선 없는 이어폰을 끼고 있는데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다. 이어폰으로 무언가 듣는 일이 잘 없는 나는 가끔 들을 때 여전히 선 있는 하얀색 이어폰을 끼고 듣는다. 아이폰을 살 때 애플에서 같이 준 건데 조금만 들어도 귀에 닿는 부분이 아파 오래 듣지는 못한다.


"와사비 있는 쪽부터 드세요."

아저씨가 내 음식을 건네주었다. 오랜만에 먹는 초밥이다. 나는 운이 좋게 엄마가 음식을 정말 잘하는 집에서 태어나서 모든 요리를 집에서 먹지만 초밥은 집에서 해 먹기 어려워 이렇게 가끔 나와 사 먹는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밖에서 한식을 사 먹는 일은 잘 없고 이렇게 초밥, 돈까스, 인도요리, 동남아 요리, 파스타 정도를 사 먹는다. 곧 새로운 여자 손님이 들어왔고, 내 오른쪽 옆 의자를 한 칸 걸러 앉았다.


"저 연어 초밥으로 주시는데요. 스테이크는 빼주세요."

"양파랑 소스도 올려드리지 말아요?"

"아 두 개만 올려주세요."

이 곳에서 연어초밥을 먹어본 사람인가. 괜히 메뉴판의 연어초밥을 눈으로 따라가 본다. ‘연어초밥 16,000원.’ 그때 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추석들 잘 보내셨어요?" 굉장히 경쾌한 말투에 놀라서 쳐다보니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학생과 어머니가 함께 들어왔다. 아이팟 여성이 나간 니은의 짧은 자리에 앉았다.

"어효. 이매역에서 여기 오는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어요. 어휴 왜 이리 막힌데요?" 짧은 숏커트 머리의 학생 어머니는 또 붙임성 있게 주인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 장인 장모님도 이매 사시는데 안 밀리면 진짜 10분 만에도 가는데 신호 계속 걸리면 정말 답이 없어요." 하며 아저씨도 밝게 손님을 응대한다.

"여기 회덮밥 하나랑 오늘의 초밥 하나 주세요." 새까만 머리에 까만 바람막이를 입은 남학생은 알아서 척척 주문하며 어머니 것까지 수저와 젓가락을 세팅하고 물을 따르며 어머니와 간단한 대화를 나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정말 보기가 좋다. 어머니는 같이 밥을 먹고 일상에 행복을 주는 아이가 있다니 정말 든든할 것 같다. 저 까만소년에게는 어머니가 밥을 먹여주고 자신을 키워주는 존재로 평안함을 느끼겠지. 어머니는 이인분의 밥값을 내고 소년에게는 어머니가 밥을 사주는 것이 100% 당연하다. 이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문득 인간이 굳이 이인분의 밥값을 내며 자식을 낳아 키우는 데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동이 노동을 할 수 없으니 의식주와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그런 이성적인 의무감 외에 자발적으로 희생을 하고, 또 자기가 하는 것을 희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너무나 당연히 기쁨으로 행하는 마음과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먼 미래의,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로 느껴지는 미혼 여성이지만 부성애 모성애가 새삼 아름답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에게 자녀는 어떤 존재인가요?]를 주제로 각양각색의 엄마 아빠들을 인터뷰 하며 프로젝트식으로 글을 써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을 하고 나가려 하니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또 찾아주세요!" 하는 주인아저씨의 커다란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문을 열고 나오니 어느새 차가워진 공기가 훅 하고 코로 들어왔다. 공기의 느낌은 날카로운 은색이지만 갖가지 파스텔 색들이 연하게, 아주 서서히 스며들고 물들어가 우중충한 차가움을 약간은 부드럽고 색다른 감정의 풍부함으로 이끄는 듯했다. 또 다시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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