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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크림 Apr 16. 2018

산타 마리아 노벨라

(소곤소곤) 이게 바로 산타마리아노벨라야...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고현정 크림으로 유명한 '크림 이드랄리아'를 떠올릴 것이다. 한 때 고현정 크림이라고 소문난 크림들이 여럿있었다. 때는 2009년, 고현정이 미실로 대박을 쳤던 시기. 드라마도, 그녀의 연기도 대단했지만, 더 대단했던 건 그녀의 피부였다. 백화점만 가면 다들 자기 제품이 고현정이 쓰는 크림이라고 홍보하는 브랜드들이 넘쳐났다. 누구는 이 제품이 고현정이 한 번에 6~7개씩 사가는 크림이다. 또 어디서는 고현정이 비행기에서 이 크림을 한 통 다 쓴다더라 하며 사람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이야기들을 했었다. 고현정씨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어서 진실은 모르겠지만, 고현정이 쓴다고 소문난 크림들은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가 많았다. 나 역시 산타 마리아 노벨라를 처음 알게 된 건 고현정 크림으로 유명세를 탄 후였다. 시간이 흘러, 2011년, 고현정은 자신의 일상을 담은 '고현정의 결'이란 책을 낸다. 그 덕에 고현정이 실제 사용하는 화장품들의 진상이 밝혀졌다. 고현정이 사용하는 화장품이라 홍보하던 제품들은 거기에 1도 없었다....(눈물)....



고현정이 공개한 그녀의 세면대


그녀가 공개한 건, 화장대가 아니라 욕실이었다. 그녀의 욕조 옆에는 조말론, 딥디크 제품부터 닥터 브로너스 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구비하고 있었다. 화장대 대신 사용한다는 세면대에는 - 그녀의 뷰티팁에 따르면, 잠시의 건조함도 허용할 수 없도록, 세안 후 바로 크림을 바를 수 있게 세면대에 화장품을 놔두는 게 좋다고 한다. - 시슬리, 라메르, 프레시, 키엘 등 다채로운 화장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드랄리아는 보이지 않았다. 하얀 크림통은 상표가 보이지 않게 돌려놓은 모습이었지만, 딱 봐도 라메르 크림 케이스였다.


물론, 세면대 위에 없다고 해서 고현정이 이드랄리아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시 찝찝한 기분은 떨칠 수 없다. 마케팅이었단 말인가? 하는 배신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마케팅 술수였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드랄리아의 향을 맡아보면, 그 분노가 가라앉을 만큼 매력적인 장미향을 느낄 수 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약국 화장품이란 이름으로 유명하지만, 실제 역사적으로 주목받았던 건 산타 마리아 노벨라만의 향이었다.



Santa Maria Novella logo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아마도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자 화장품 공방일 것이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로고에는 Casa Fondata nell’Anno 1612라는 문장이 쓰여있다. 이는 이탈리아어로, 1612년 설립된 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역사는 1612년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1221년에 시작된다.


1216년, St. Dominique가 설립한 도미니크 수도회는 122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자리를 잡고, 청빈한 수도 생활을 시작한다. 그들은 수도원 정원에서 키운 약초로 상비약을 만들어 사람들을 돕기도 하고, 시장에 판매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들의 간판에는 Farmaceutica di Santa Maria Novella라고 적혀있는데, 이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그들이 만들어 팔았던 약들의 성분을 기록한 문서 중 일부가 남아있는데,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장미로 만든 로즈워터, 장미수(1381)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기록들이 남아있는데 그 중 가장 재미난 설화는 Aceto aromatico로 식초에 관한 이야기이다. 7명의 도둑은 각각 한가지씩 재료를 알고 있어, 그들 7명이 모여야만 만들 수 있는 식초가 있었다. 도둑들은 7명이 함께 모여 그 식초를 만들고, 이를 얼굴과 몸에 발랐다고 한다. 이 식초를 바르고 나면, 전염병이 돌고있는 마을에 들어가 도둑질을 해도, 전염병이 옮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이 식초는, 실제 전염병 환자가 있는 집에서 이 식초를 태워 병이 더는 확산되지 않게 소독해주는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소화를 돕는 허브로 만들어진 소화제, 레몬밤을 이용해 만든 진정제 등 다양한 약들을 만들었고, 실제로 이러한 기록이 전해져 지금도 산타 마리아 노벨라에서 이들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내부,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약초들이을 재배하는 정원


실질적으로 약을 판매하고는 있었지만 그들이 약국으로 인정받은 건 1508년에 들어서였다. 1612년에는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2세는 연금술과 약학에 통달한 안죨로 마르키시(Angiolo Marchissi)신부에게 왕실 주치 약사라는 칭호를 내리고, 그를 산타 마리아 노벨라 원장으로 임명했다. (늘 하는 말이지만, 향수의 시작과 연금술, 화학, 약학은 뗄 수 없는 것이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메디치 가문과 관련된 일이 많은데, 이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가 터를 잡은 곳이 피렌체이기 때문이다.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의 유력인사였다. 지금도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제품 중에는 그 당시 메디치 가문을 위해 만들었던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약국으로 허가를 받은 후, 이탈리아 전역으로 산타 마리에 노벨라 수도사들이 돌아다니며 약을 전파하여 이탈리아를 넘어 인도, 러시아, 중국에 까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제품들이 퍼져나갔다.


(좌) 메디치 가문에 바쳤던 식전주, (가운데) 소화제, (우) 7 도둑의 식초로 유명한 아체토 아로마티카


19세기 들어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1866년, 재정적으로 궁핍했던 이탈리아 정부가 교회의 재산, 영토 등을 몰수하여 국영화하였기 때문이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시 국영 기업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이탈리아의 역사를 아주 조금 살펴봐야한다.


16세기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우던 시기였다. 이탈리아는 동서양의 문물을 교류하는 중심이었고, 그 덕에 물자가 늘 풍부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으며, 여러 문화가 융합되 새로운 문화예술이 싹텄다. 그런 르네상스의 한 가운데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초대 원장 안죨로 마르킷시를 임명했던 피렌체 대공 역시 페디치 가문 출신이었다. 메디치 가문하면, 이름 때문인지 다들 약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메디치 가문이 약사와 관련되었다는 기록은 1도 존재하지 않으며,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 존재하는 21개의 길드 중 상인 길드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을 보아 상업으로 부를 축적했을 확률이 가장 높다. 메디치 가문은 후에 금융업을 통해 귀족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그 후, 메디치 가문은 3명의 교황과 2명의 프랑스 왕비를 배출해낸 막강한 가문으로 성장한다. 또한,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의 문화 예술, 과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이 예술가와 학자들에게 전폭적인 후원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인문학 붐이 일며,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 1순위까지는 아니더라도 - 으로 늘 언급되는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은 메디치 가문에게 헌정된 책이다. 마키아밸리가 활동하던 16세기 이탈리아는 경제적으로는 르네상스로 문화와 중계 무역으로 풍요로웠던 시기였지만, 정치적으로는 프랑스나 스페인처럼 중앙집권화를 이룬 단일 국가가 아니라 몇 몇 가문이 지배하는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있는 상태였다. 문화와 물자가 풍부했지만 중앙집권화가 되지 않아 군사력이 약했던 이탈리아는 프랑스, 스페인에 의해 8차례 침략을 받으며 끊임없이 전쟁에 휘둘리게 된다. 마키아밸리 역시 고향 피렌체에서 평범하게 공무원으로 잘 살고 있었으나, 스페인에 의해 피렌체 공화국을 무너지자, 감옥에도 끌려가, 고문을 받다가 풀려난다. 갈 곳을 잃게 된 마키아밸리는 이탈리아가 빨리 정비되어, 이러한 전쟁에 휘말리지 않길 바라며 군주론을 써서 메디치가문에 헌정했다. 왜 메디치 가문이었을까? 메디치가는 이탈리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메디치 가문은 수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을 지원했다. 미켈란젤로, 다 빈치, 단테, 보티첼리, 페트라르카 등등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수 많은 예술가들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 어쩌면 르네상스 문화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걸지도 모른다. 마키아밸리 역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다시 재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메디치 가문은, 군주론에 쓰여진 마키아밸리의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힘을 가진 가문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당시, 군주론을 선물받은 로렌초 메디치(로렌초 2세)는 그 책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로렌초 메디치 역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직접 발굴해낸 안목을 가졌던 인물이나, 왜 군주론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일까? 미스테리. 정치적 식견과 예술적 식견이 비례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술에 식견이 없는 자가 봐도 대단한데!!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작품을 만드는 천재였을지도...  




군주론을 읽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탈리아는 16세기 이후 19세기 중반까지 계속된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다. 루이 14세의 손자 필리프가 1700년 에스파냐 펠리페 5세로 즉위한 후, 시칠리아 지역은 부르봉 왕가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전쟁터가 되었다. 1734년 시칠리아는 완전히 프랑스 부르봉 왕가로 넘어가, 부르봉 왕가가 이탈리아 왕권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후 시칠리아의 재정은 파탄이 날 지경이었다. 부르봉 왕가의 사치에 등골이 휘던 건 이탈리아 뿐만이 아니었다. 프랑스 역시 국왕의 사치에 만성적인 재정적 적자에 시달렸다. 그 이후는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좀 있다가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등장한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설파하며, 시민들을 해방시키려 했던 나폴레옹이라지만, 그것은 오직 조국 프랑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나보다. 사실 프랑스에서도 딱히 그런건... 나폴레옹은 절충주의란 이름으로, 이탈리아 내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나라와 자신에게 저항했던 베로나 같은 지역들을 차별적인 대우를 했다. 나폴레옹에게 저항했던 지역의 이탈리아 시민들은 그 전보다 더 심한 핍박을 받게 되었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나폴레옹에게 침략을 받은데다, 나폴레옹이 실각하여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를 떠난 후 또다시 왕정복고, 군주제로 복귀하는 모습을 보며 이탈리아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기 시작했다. 그들은 군주 국가가 아닌 자유를 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헌법을 필두로 국민의 자유가 보장되길 바랬다. 이런 배경에서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일어난다. 허나 이러한 통일 운동도 카밀로 카부르와 사르데냐 왕이 손을 잡으며 자주적인 통일 운동 정신이 훼손된다. 사드레냐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 2세는 카부르를 재상 자리에 앉힌다. 카부르가 보기에 그 당시 이탈리아 통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였다. 사르데냐 지역을 제외한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로마교황의 지배하에 있었다. 카부르는 사르데냐 왕국의 힘만으로 이탈리아를 되찾는 건 어렵다고 생각하고 타국의 힘을 빌려 오스트리아부터 몰아내는 계획을 세운다. 에마누엘 2세는 프랑스, 영국과 협상을 맺어 오스트라아와 전쟁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때 겔랑에서 언급된 나폴레옹 3세가 등장한다. 나폴레옹 3세와 에마누엘 2세가 연합하여 오스트리아를 무찌른다. 물론 프랑스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 이미 사르데냐의 승리가 확실시 되고는 있었다만... 로마를 남겨둔 채 사르데냐 왕국을 중심으로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루었다. 그 후 이탈리아는 국민의 대표가 만드는 헌법이 아니라 카부르에 의한 헌법이 만들어졌다. 새로 들어선 이탈리아 정부는 통일 온동 정신만 훼손한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이탈리아를 파탄냈다. 그들은 자유 무역을 도입하였고, 이는 가내 수공업 수준이었던 이탈리아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갈수록 사람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졌지만, 세금은 점점 인상되었다. 특히 농업 비율이 높고, 2차 산업에 취약했던 남부 이탈리아 시민들은 세금 인상을 버텨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이탈리아 정부는 교회 재산과 영토를 몰수해 국유화 시켜 이를 되팔아 일단 부족한 세수를 충당했다. 이는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교회가 지주로 있던 영토가 이제 개인이 그 영토의 대지주가 된 것이다. 그들은 교회보다 더 많은 세금을 소작농들에게 요구했다. 그 와중에 산타마리아 노벨라도 국유화에 휘말리게 된다.  


1871년에 들어, 교회 보장법이 통과되고, 이탈리아 국가 안에서 교황의 법적 지위가 인정되었다. 교회의 재산이 보장되기 시작하였고,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시 다시 원래 주인의 품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마지막 수도원장의 조카 체사레 아우구스토 스테파니가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운영권을 돌려받게 된 것이다. 현재에도 스테파니 가문이 계속적으로 산타 마리아 노벨라를 상속받아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과학 기술을 도입하되, 최대한 과거 전통을 따라 수공업으로 모든 제품을 생산한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제품이 자주 품절되는 실질적인 이유... 단순한 수작업 뿐 아니라,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정원에서 허브를 직접 채취하며, 발사미테를 채취하는 날도 전통에 따라 피렌체의 수호 성인 지오반니의 축성일인 6월 24일에 추수를 한다. 발사미테는 중세 시대부터 매우 신비한 약초로 소중히 다루어졌으며, 이 약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 바로 Acqua Antisterica(아쿠아 안티스테리카-항 히스테릭 워터)이다. 1614년, 초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 원장인 안죨로 마르킷시는 오늘날 아쿠아 디 산타 마리아 노벨라(Acqua di Santa Maria Novella)라 불리는 아쿠아 안티스테리카를 만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에서 아쿠아 디 산타 마리아 노벨라 향수에 대한 설명에 "1533년 카테리나 드 메디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써놓았기 때문이다. 코시모 2세와 카테리나는 동시대의 인물들이 아니다.



아쿠아 디 산타 마리아 노벨라 향수, 아쿠아 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엘릭시르



이러한 혼란은 아쿠아 디 산타 마리아 노벨라로 똑같은 이름의 제품이 2가지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 둘은 전혀 다른 제품이다. 하나는 1614년 만들어진 아쿠아 디 산타 마리아 노벨라(아쿠아 안티스테리카)로 엘릭시르 제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쿠아 디 산타 마리아 노벨라로 향수이다. 도미니크 수도사들은 약을 만들 때 쓰는 약재의 농도에 따라 오일, 쥴렙, 엘릭시르, 워터, 스피릿, 솔트 등으로 약을 분류했다. 아쿠아 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엘릭시르는 발사미테, 박하, 실론, 계피 등을 넣고 만든 약제이지, 향수가 아니다.


아쿠아 디 산타마리아 향수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가장 오래된 향수, 즉 첫번째 향수이다. 이 향수는 1533년, 메디치 가문의 카테리나 드 메디치가 프랑스 앙리 2세와 결혼하기 위해 칼라브리안 베르가못과 시칠리아 레몬, 탠저린, 라벤더 등 다양한 꽃들을 혼합하여 만든 향수다. 시트러스 계열의 원료가 잔뜩 들어있어서 그런지 상큼한 향이 제일 먼저 올라온다. 상큼하면서도 라벤더와 로즈마리 특유의 시원한 향이 느껴지는 향수다. 그녀는 이 향수 뿐 아니라, 커트러리, 식사예절, 마카롱 등 이탈리아의 세련된 문물을 프랑스 왕가에 들고 들어갔다. 마카롱은 프랑스 과자가 아니라 실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과자였다. 우리가 알고있는 마카롱은 라뒤레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마카롱 과자 사이에 크림이 들어간 모양이다. 최초의 마카롱은 가운데 크림이 없이, 과자만 따로 있는 형태였다. 특히 그녀가 뿌리는 향수는 단연 인기를 끌었는데, 프랑스에서 이 향수는 ‘아쿠아 델라 레지나(Acqua Della Regina, 왕비의 물)’이라고 불리며 금새 유명해졌다. 앞에서 언급했던 군주론의 효과를 톡톡히 봤던 사람이 바로 이 카테리나 드 메디치였다.


카테리나 드 메디치는 프랑스 부르봉가 출신인 카트린 드 브루봉을 할머니로 두었고,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0세의 조카딸이었다. 이런 빵빵한 사람들을 친척으로 두었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거기다 메디치 가문은 과거의 영광을 거의 잃은 상태로, 재정 상태 역시 예전의 메디치 가문이 아니었다. 14살의 나이에 그녀는 교황 클레멘타인 7세의 입김으로 프랑스 왕국에 시집갔지만, 그녀는 인정받지 못했다. 앙리 2세는 다른 여인을 사랑하고 있었고, 프랑스 왕실은 그녀를 상인 출신이라며 은근히 무시했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교황 클레멘타인 7세가 프랑스 왕실에 그녀의 결혼 조건으로 걸었던 지참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참금을 지불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나마 그녀를 예뻐했던 시아버지 프랑수와 1세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앙리 2세의 총애를 받았던 푸아티에 후작부인은 그녀를 조롱했고, 그녀의 아이들 마저 빼았아 갔었다. 그런 모욕 속에서도 그녀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 남편인 앙리 2세가 갑작스럽게 죽게 되자, 그녀는 모든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다. 그녀는 앙리 2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어린 아들을 대신해 섭정을 펼치게 된다. 그녀를 모욕하던 푸아티에 부인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고, 그녀는 관대하게 푸아티에 후작부인을 용서한다. 그 후 그녀는 아들들을 지키기 위해, 발루아 왕조를 지키기 위해 지나치게 최선을 다했다. 위그노 전쟁 한가운데서 자신의 아들들을 지키기 위해 이간책을 쓰면서 살아남으려 애를 썼다. 두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도 버텨냈던 그녀는 가장 믿었던 아들 앙리 3세에게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한다. 그 충격으로 그녀는 몸져눕게되고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게 된다. 심지어 죽어서도 제대로된 묘비없이 비참하게 묻혔다. 다만 먼 친척뻘이었던 여인이 그녀의 묘지를 앙리 2세 옆으로 옮겨주긴 했지만... 그녀가 죽은 후 얼마가지 않아 앙리 3세마저 실권하여 죽임을 당해 발루아 왕조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브루봉 왕가의 앙리 4세였다. 그는 위그노와 가톨릭을 통합하여 새롭게 프랑스를 부흥시킨다.





역사 속에서 피도 눈물도 없었다, 비인간적이었다라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고, 군주론을 읽었었나보다, 그 당시는 저게 최선이었을 것이다라는 매우 상반된 평가를 받는 그녀지만, 그녀도 14살의 나이에는 오렌지와 베르가못, 탠저린으로 풍부한 시트러스 향이 나는 향수를 뿌리던 소녀였다고 생각하면 어딘지 마음이 짠하다. 화려한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리며, 한껏 치장해도 자신을 봐주지 않던 사람들,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외롭게 궁전에서 버텨냈을 그녀를 생각하면 조금 쓸쓸해지기도 한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에는 아쿠아 디 산타마리아노벨라 외에도 시트러스 계열 향수로 아쿠아 디 콜로니아, 시칠리아가 있다. 시칠리아라는 이름답게, 베르가못, 오렌지, 네롤리, 만다린, 레몬 등이 탑노트로 들어가고, 라벤더, 로즈마리, 페티그레인, 정향(Clove)이 하트 노트로 들어가고, 베이스 노트로 벤조인, 사이프러스 들어간다. 아쿠아 디 산타 마리아 노벨라와 거의 유사한 노트를 가지고 있지만, 시칠리아에서는 탑노트에 망고, 만다린, 베이스 노트에 사이프러스만 추가 되어있다. 탑노트에 추가된 망고, 만다린 때문인지 시칠리아는 아쿠아 디 산타마리아노벨라보다 더 달달하면서 좀 더 풍부한 과일향이 난다. 시원하고 깔끔한 시트러스를 원하면 아쿠아 디 산타마리아노벨라를, 좀 달달한 느낌의 시트러스계열을 선호하면 아쿠아 디 콜로니아 시칠리아가 더 잘 맞을 것같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최고 인기 향수는 아쿠아 디 콜로니아 프리지아, 아쿠아 디 콜로니아 아이리스, 아쿠아 디 콜로니아 멜로그라노이다. 특히 아이리스는 종종 품절이 되기도 한다.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아쿠아 디 콜로니아 프리지아는 단일 노트이다. 프리지아만으로 만들어진 향수다. 세상에... 가끔 단일 노트로만 된 향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한때 그랬다. 단일 노트로 만들어진 향수는 노트가 따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첫향이 그대로 쭉 이어지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프리지아는 부드러운 프리지아 꽃 냄새가 난다. 조말론의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같이 발랄한 프리지아향과는 좀 다르다. 조말론의 경우, 좀 물 먹은, 촉촉하고 생생한 프리지아의 느낌이라면,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프리지아는 책 사이에 끼워두었던 프리지아가 곱게 간직된 느낌이다. 말린 꽃잎에서 나는 진하지만 차분히 가라앉은 꽃잎향이 느껴진다.


아쿠아 디 콜로니아 아이리스는, 오리스 뿌리, 즉 붓꽃(아이리스)의 뿌리와 제비꽃 이 2가지만으로 만들어진단일 노트 향수이다. 피렌체의 상징인 아이리스와 제비꽃 외에 다른 원료가 들어가지 않아 이 둘 본연의 향만 느껴져 깔끔한 느낌이 든다. 아이리스 뿌리와 제비꽃 만으로 아주 파우더리한 비누향이 나타나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머스크, 앰버, 용연향, 시더 우드 같은 베이스 노트가 없이도 충분히 부드러운 벨벳느낌의 향이 느껴진다. 하지만 베이스 노트가 없다보니 묵직하고 무거운 느낌없이, 조금 진한 비누향이 느껴진다. 사람에 따라서 진한 꽃향기가 나는 비누향을 좋아하는 이도 있지만, 살짝 머리 아프다고 느낄 수 도 있을 것 같다.


아쿠아 디 콜로니아 멜로그라노, 왁스 타블렛으로도 나올 만큼, 인기가 많은 향이다. 멜로그라노는 석류라는 뜻인데, 사실 석류향인지 잘 모르겠다. 석류하면 떠오르는 상큼한 향, 빨간 유리알 같은 석류의 느낌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탑노트에 일랑일랑, 장미, 석류, 베르가못, 오렌지가 들어있고, 하트 노트로 베티버, 버지니어 시더, 오리스 루트, 타바코가 들어있고, 베이스에는 바닐라, 패츌리, 앰버 등이 들어있다. 특이한 조합이다. 플로럴 계열에 타바코, 탑노트에 메인인 석류를 넣으면서 석류향이 뭍일 수 밖에 없는 조합으로 일랑일랑과 장미를 넣었다. 일랑일랑과 장미는 향이 매우 강해, 물론 조절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들을 넣었을 때 다른 향은 이들에게 묻히기 쉽다. 베르가못과 석류, 오렌지가 들어있으면서도 시트러스 특유의 싱그러운 향은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베이스와 하트노트 탓에 우디하고 파우더리한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탑노트에 들어가 있는 것만 보고 향수를 구매하기 보다, 잔향을 맡아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게 훨씬 좋을 듯하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에서 나온 향수는, 전체적으로 매우 은은한 꽃향기가 난다. 마치 ASMR을 듣는 기분이다. ASMR은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로, 뇌를 자극해 심리적 안정을 얻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새 유튜브에서 ASMR 기법을 활용한 다양한 소리들이 존재한다. 그 중 요새 내가 자주 듣는 건 한 광고에서 ASMR로 아이유가 속삭이는 영상이다. 최근 이 영상에 너무 중독되서 1시간 연속 광고 영상을 듣고 있기도 한다. 아이유의 팬은 아니었지만, 이 광고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광고임에도 1주일만에 조회수가 60만명을 넘었고, 한달 이상된 광고의 조회수는 300만을 육박한다. 화제가 되는 것과 별개로 이 광고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뉜다. 누군가에게는 힐링이 되는 영상이, 누군가는 신경이 예민해지는 불편한 영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작은 소리로 광고가 나와서 신경쓰인다, 소름이 돋는다는 평도 있다. 세상은 이렇게 호불호가 갈리고, 취향이 나뉜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다른 향수들에 비해 강하게 올라오는 향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호불호가 나뉜다. 너무 은은하고 잔잔하다. 그럼에도 지속력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지속력이 나쁘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정말 너무나도 은은하게 그 향이 남아있어 스스로 잘 안 맡아지는 것일 수도 있다. 향수의 지속력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향수를 구매할 경우, 미리 잔향이 몇 시간 정도 지속되는지 테스트해보고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ASMR의 경우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아주 작은 소리라 우리는 더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듣기에 더 선명하게 들리는 기분이 든다.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기분은 덤이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은은함 역시 그렇다. 너무 은은하기에 오히려 집중하고 향을 맡게 되니까, 더 선명하게 꽃향이 느껴진다. 아주 연하고, 은은한 가운데 깊숙히 숨겨진 꽃 향을 원하는 사람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가 제대로 취향을 저격할 듯하다. 반면, 어떤 이는 이 향을 맡으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이도 있다. 나도 처음 멜로그라노 향을 맡고, 살짝 머리가 아팠다. 진한 꽃향을 맡으면 우리는 종종 머리가 아파하지 않는가? 멜로그라노도 그랬다. 분명 향은 파우더리하고 연한 향인데도 꽃향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장미와 일랑일랑 때문일 수도 있다. 연한데 진하다? 참 모순된 말 같지만, ASMR 역시 작은 소리지만 더 선명하게 들리는데, 딱 그 느낌이다. 은은하고 연하면서, 그 속에 존재감이 느껴지는 선명한 플로럴. 하지만 플로럴 향들은 금새 날아가고 산타 마리아 노벨라 특유의 파우더리한 향들이 남는다.



여전히 수작업을 고수하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소설 연금술사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현자에게 행복의 비밀을 배우기 위해 찾아갔던 젊은이는 그가 숟가락에 기름 두방울을 떨어뜨려 주며, 이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집안을 구경한 후에 다시 자신에게 오라고 말한다. 젊은이가 집 안을 한바퀴 돌고 오자 현자는 그에게 자기 집에 있는 화려한 물건들을 이야기하며 잘 보았냐고 말한다. 젊은이는 기름 두방울만 보느라 그 어떤 풍경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현자는 그를 다시 돌려보내 자기 집을 구경하고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젊은이가 돌아왔을 때 그가 가진 숟가락 위에 기름 두방울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현자는 젊은이에게 가르침 하나를 건네준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방울을 잊지 않는데 있도다.”


얼핏 보면 쉬운데?라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방울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누군가는 기름 두방울이 현실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열정이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자아 성찰, 순수함 등등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그런데 만약 기름 두 방울이 나의 신념이 된다면 어떨까?


인생을 즐기고, 삶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내 가치관, 나의 꿈이나 신념, 휩쓸려 잃어버리기 쉬운 마음을 잘 유지한다는 건 분명 참 어려운 일이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은은함 속 꽃향기를 맡을 때마다 생각한다. 작은 속삭임이 얼마나 선명하게 들리는지, 가끔은 내 숟가락 속에 기름 두방울, 내 마음이 잘 있는지, 귀를 기울여야한다. 정신을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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