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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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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크림 May 07. 2018

펜할리곤스

어디로 간 거니 펜할리곤스

4월 갑자기 모든 백화점에서 펜할리곤스 매장이 철수했다. 큰 충격이었다.

펜할리곤스가...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다니... 면세로만 살 수 있다니... 이럴수가...

펜할리곤스는 니치 향수 브랜드 중 조말론과 함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향수가 아닌가? 분명 얼마전까지만 해도, 난 펜할리곤스의 아기자기한 보틀들이 정갈하게 놓여있는 펜할리곤스 매장을 보며 흐뭇해했었다. 

펜할리곤스는 동그란 유리 구슬 향수캡과 귀여운 보틀, 앙증맞은 색색의 리본, 바라만 봐도 마음이 흡족할만큼 사랑스러운 패키지를 자랑한다. 게다가 펜할리곤스는 각각 향수마다 다른 색의 리본, 라인마다 다른 모양의 리본으로 보틀을 장식해 그 어떤 향수도 똑같은 리본을 하지 않는다. 향수 보틀 하나하나 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브랜드였다.  개인적으로 아닉구딸과 펜할리곤스의 보틀 디자인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펜할리곤스 매장이 한국에서 모두 철수했다니. 그렇게 펜할리곤스가 장사가 잘 안되었단 말인가? 나는 왜 부지런하게 펜할리곤스 향수를 구매하지 않았던가? 이제 더는 펜할리곤스를 편안하게 구매하지 못하다니. 나는 어쩌란 말인가?


펜할리곤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Free shipping이라고 하나, 주소지 입력칸에서 USA 지역만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자본주의의 정점, 직구의 바다, 아마존에 뛰어들기로 마음 먹었다. 모두가 아마존, 알렉사, 에코, 제프 베조스를 부르짖을 때에도 www.ama까지도 입력해본 적이 없던 나였다. 펜할리곤스의 매장 철수가 나를 이렇게 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나는 펜할리곤스를 흠모했다. 아마존에 올라온 펜할리곤스 가격에 깜짝 놀랐다. 방금전까지 애타게 그리워하던한국 펜할리곤스가 몹시 괘씸해지던 순간이었다. 대부분이 거의 반값이었다. 심지어 반값보다 쌌다. 살면서 해외 직구를 하게 될 줄이야? 나에게 펜할리곤스가 이럴만한 가치가 있는 향수 브랜드인가? 내가 이렇게 주절주절 TMI수준으로 내 슬픔을 나열할만큼 의미있는 브랜드인가?


그렇다. 펜할리곤스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펜할리곤스(Penhaligon's) 브랜드 로고에 있는 왕실 문양은 영국 왕실로부터 왕실 조달 허가증(Royal Warrants of Appointment)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왕실에서 품질을 보증한다는 뜻이다. 펜할리곤스는 금보다 비싼 자스민, 손으로 직접 짜낸 베르가못 등 진귀한 원료로 향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니치 향수 브랜드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선 송혜교 향수로 불리며, 오렌지 블러썸이 유명하다.


영국 콘월 펜젠스에서 태어난 윌리엄 헨리 펜할리곤(William Henry Penhaligon)은 1870년, 런던 번화가, 피커딜리가(Piccadilly street)에서 바버샵을 열었다. 위치적 특성 때문인지, 실력 때문인지 펜할리곤의 바버샵은 금새 입소문이 났다. 펜할리곤은 바버샵에서 귀족들을 위한 향수, 토일럿 워터나 포마드를 만들어 팔았다. 펜할리곤스의 시그니처인 보틀도 그때 당시 만들었던 보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그 당시에는 향수를 담은 후, 왁스로 보틀을 밀폐한 후 리본을 묶어두었다고 한다. 지금은 왁스로 실링을 하지는 않지만, 그때 사용했던 동그란 캡에 리본을 묶는 것은 그래로 유지하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와 윈스턴 처칠 같은 유명인사들 부터 귀족과 왕실까지 펜할리곤스의 향수를 사랑했다. 하지만 1929년 경제 대공황 여파로 천연 원료 공급에 어려움을 겪던 펜할리곤은 1940년대에 이러 사업을 접었고, 전쟁 통에 건물마저 붕괴되고 말았다. 그렇게 펜할리곤스는 역사속으로 사라질듯 싶었으나, 1970년대에 들어 패션 디자이너 Sheila Pickles가 펜할리곤의 향수 조제법이 적힌 책을 발견하고, 다시 펜할리곤스를 오픈한다. 

 


펜할리곤스에는 Heritage, Core Collection, Trade Routes와 Portraits 라인이 존재하고, 각 라인에 다양한 향수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이 중 재미있는 스토리라인 까지 갖춘 포트레이트(Portraits)라인은 패키징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귀족들의 은밀한 이야기라는 테마로, 각각의 향수들은 하나의 인물이 되어, 그 인물들간의 관계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로드 조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각각의 캐릭터에 맞는 동물 모양의 향수캡이 매력적인 향수라인이다.



THE TRAGEDY OF LORD GEORGE, 로드 조지경의 비극

전통과 명예를 중시하며, 말끔하고 단정한 로드 조지는 자신의 속마음은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로, 아내 블랑쉬가 있으면서도 클라라를 만난다. 사슴 뿔모양의 향수캡이 시그니처인 이 향수는 브랜디가 탑노트, 하트 노트에는 쉐이빙 솝, 베이스 노트에는 통가빈과 앰버이 들어있다. 쉐이빙 솝과 브랜디, 통가빈이 어우러져 매우 진하고 강렬한 향이다. 속마음은 알 수 없는 캐릭터지만 그 안에 견고한 그의 세계가 있음이 느껴질만큼 강렬한 향이다.


THE REVENGE OF LADY BLANCHE , 블랑쉬 여사의 복수

복수라는 이름에서 흥미가 느껴지는 레이디 블랑쉬는 조지 경의 본부인이자 로즈 공작부인의 엄마로, 매력적이지만 위험하고, 자극적인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탑노트에 아이리스 꽃잎인 오리스, 안젤리카, 하트 노트에 나르시스 꽃, 베이스 노트로 히아신스로 구성된 플로럴에 의한, 플로럴을 위한 플로럴 향수이다. 플로럴 계통에 많이 쓰이는 장미, 자스민, 피오니가 들어가지 않아 일반적인 플로럴 향과 차별화된다. 베이스 노트까지 플로럴 계통으로 된 향수지만, 탑 노트의 아이리스가 파우더리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머스크나 우드가 없어도 가볍게 들뜨지 않는 향이다. 


CLANDESTINE CLARA, 은밀한 클라라

관능적이면서 우아한 매력을 지닌 로드 조지의 정부 클라라, 탑노트는 바닐라와 럼, 하트 노트로 시나몬과 머스크, 베이스 노트에 앰버, 패츌리가 들어있다. 럼과 시나몬의 스파이시한 관능적인 향과 바닐라의 달달함과 머스크의 부드러운 느낌에서 오는 우아함이 앰버와 패츌리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축축한 땅, 나무같은 향이 어우러져 독특한 향이 느껴진다. 


THE COVETED DUCHESS ROSE, 명성 높은 로즈 공작 부인

향수 이름에서 느껴지듯, the coveted Duchess Rose, 욕망으로 가득찬 로즈 공작 부인이라는 설정으로, 로드 조지와 블랑쉬의 딸이다. 얌전한 외모 뒤에 감춰둔 욕망이 가득하다고 하는데 무슨 욕망을 감춰둔 걸까? 만다린 오렌지의 탑노트, 로즈의 하느 노트, 머스크와 우디 어코드의 베이스 노트를 지녔다. 펜할리곤스는 이 향수를 비의 순수함과 차가운 로제 와인의 상쾌함, 여인의 관능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향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정도인가? 첫 비의 순수함이 뭐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거창한 향수는 아니지만 장미와 시트러스, 머스크와 우디향이 잘 조율되었다고 느껴지는 향수이다.


MUCH ADO ABOUT THE DUKE, 소동을 몰고 다니는 공작

로즈 공작 부인의 남편, 매너와 매력을 겸비한 넬슨 공작의 범죄자스러운 이면을 담은 향수라고 한다. 범죄자스러운 이면이란게 뭘까? 마구 흥미가 생긴다. 블랑쉬 여사의 복수에 가담하는 걸까? 자세한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렇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향수의 스토리라니... Much ado about nothing 이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따온듯한 이름이라,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의 결말이 희극이듯 이들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라게 만든다. 넬슨 공작을 나타내는 이 향수는 탑노트로 장미와 페퍼, 하트 노트로 진, 베이스 노트로 레더와 우디 어코드가 담겨져있다. 스파이시한 장미향에 토닉향이 가해지다 끝에는 우디한 가죽향으로 마무리되는 독특한 향으로, 진한 향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에게는 머리가 아플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개성적인 향수라는 생각이 드는 향이다. 매너와 매력을 겸비했다는 캐릭터 설정에 잘 어울린다. 어떻게 향으로 캐릭터를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는 걸까?


ROARING RADCLIFF, 광란의 래드클리프

로드 조지와 클라라 사이에서 태어난 래드클리프는, 한국식으로 따지면 서자이다. 명예와 신분, 가문에 얽매일 수 없는 위치라 그 무엇보다 자유로운 인물이다. 오죽하면 향수 이름조차 Roaring Radcliff, 사자 모양의 캡에, 표효하는 래드클리프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신사다우면서 마초스럽고 자유분방한 삶을 나타낸 향수이다.

탑노트에는 럼, 베르가못, 타라곤(사철쑥), 하트 노트에는 장미, 타바코, 베이스 노트에는 진저, 시나몬, 통가빈, 허니, 비즈왁스, 앰버우드가 들어있다. 베이스 노트를 진저 브레드 어코드로 부르는데, 무척 특이한 향이 난다. 

통가빈과 우디한 향이 마치 로드 조지경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처럼 동일하게 들어가있다. 하지만 조지경보다 복잡하고 섬세한 향이 느껴지는데, 럼과 베르가못, 장미와 타바코, 아로마틱한 타라곤향과 진저와 시나몬의 스파이시한 느낌, 모순적인 조합에서 묘하게 매력이 느껴진다. 마치 소설이나 영화드라마 속 나쁜 남자, 사연있는 남자에게 끌리듯이 매력적이면서 위험한 향이 느껴진다.


사실 이들의 포트레이트보다 더 매력적인 이야기가 있다. 바로 루나와 앤디미온.

루나와 앤디미온? 누군가는 그리스 로마 신화 루나와 앤디미온 이야기를, 또 누군가는 루나와 앤디미온에서 달의 요정 세일러문의 턱시도 가면을 떠올릴 있겠지만...


(위) 세일러문과 턱시도 가면, (아래) 왼쪽 앤디미온과 아르테미스, 오른쪽 티토노스를 떠나는 에오스


루나는 말그대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나타내고, 앤디미온(엔디미온, Endymion)은 지상의 인간으로 양을 치는 목동이었다. 그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사랑에 빠지지 않기로 유명했던 처녀의 신 아르테미스조차 첫 눈에 그에게 반한다. 그녀는 그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인간의 유한함이 안타까웠으면, 그에게 영원불멸함을 주면될 터인데, 그녀는 그에게 영원한 청춘과 함께 영원한 잠을 선물한다. 그는 영원히 잠들게 되어, 잠든 채로 늙지도 죽지도 않게 되었다. 또 다른 버전으로는 제우스가 엔디미온에게 영원한 잠을 선사한 대신, 영원한 청춘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를 선물로 주었다, 벌로 주었다라는 버전이 있는데 사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제우스로 인해 삶을 누리지 못하고 영면에 빠진 앤디미온을 보고 제우스의 딸인 아르테미스는 사랑에 빠진다. 아르테미스는 매일 밤 그가 잠들어 있는 라트모스산 동굴로 가, 그의 곁을 지킨다. 나는 가끔 이게 사랑이야기인지 무서운 이야기인지 혼란스럽다. 영원히 잔다면 죽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사실 에오스와 티토노스의 사랑이야기보다 더 비극이 아닌가? 티토노스는 청춘을 보내기라도 했지, 앤디미온은 선택권없이 그저 잠들어있지 않는다. 장미빛 여신으로 불리는 에오스는 새벽의 여신이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경계선에서 새벽을 불러온다. 장미빛 여신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녀가 장미빛 손가락으로 하늘을 열어 새벽을 데려오기 때문이다. 아마 새벽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보고 새벽의 여신의 손가락이 장미빛 색깔이라는 상상을 했기 때문인 걸까? 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인간 티토노스와 사랑에 빠져 제우스에게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을 간청한다.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에오스는 티토노스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중요한 것을 깜빡했다. 불사(不死)를 부탁할 때에는 불로(不老)도 함께 부탁했어야했다는 것을... 티토노스는 영원한 삶을 부여받았지만 영원한 젊음은 부여받지 못했다. 그는 계속 나이들어갔다. 그가 점점 노쇠해져가는 걸 볼 수 없던 에오스는 그를 가두어버리고, 티토노스는 점점 늙어가다 매미가 되었다. 혹은 에오스가 티토노스가 늙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어 그를 매미로 만들었다라는 여러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돌아다닌다. 매미로 바꿀 수 있다면, 젊은 시절로 되돌려줄 순 없는 걸까? 여기서 재밌는 건 매미의 상징이다. 매미는 불사를 상징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도 티토노스 덕에 죽지 않는 생명의 상징으로 매미가 쓰여졌고, 동양에서도 매미는 불사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매미 모양으로 옥을 깎아 죽은 사람의 입에 물려주었다고 한다. 아마 매미가 오랜 세월 땅 밑에서 머무르다 지상으로 올라오는 모습을 죽지않고 부활하는 이미지로 보았던 게 아닐까 싶다...


루나와 앤디미온, 에오스와 티토노스의 사랑이야기를 볼 때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된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홍안만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그 사람의 인생 전부를,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걸까? 결혼이란 제도로 묶여있는 인간과 달리, 신은 자유롭다. 그들은 사랑의 형태도, 대상도, 기간도 인간과 다르다. 영원히 잠들어 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거나, 사랑하는 이가 늙어가자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나버린다거나, 사람들이 하는 사랑의 모습과는 다르다. 하지만 공통된 이야기는 젊고 아름다운 존재만 사랑하고 있다는 점. 신도 아름답고 젊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아름답지 않고 나이든 인간과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자애로운 신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이드는 게 무섭다는 생각도 들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 기적같고, 낭만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때 열심히 들었던 노래, 라나 델레이가 부른 위대한 개츠비 OST "Young and Beautiful"는 이런 감정을 노래한다. 




라나 델레이는, "Young And Beautiful"에서 몽환적인 목소리로 영원한 사랑을 갈구한다.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고, 아름답지 않아도, 여전히 나를 사랑해줄건가요? 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그 대답이 YES일 거라고 그녀는 확신하며 노래를 부른다.


Will you still love me
When I'm no longer young and beautiful?
Will you still love me
When I've got nothing but my aching soul?
I know you will, I know you will
I know that you will
Will you still love me when I'm no longer beautiful?

Dear lord, when I get to heaven
Please let me bring my man
When he comes tell me that you'll let him in
Father tell me if you can
All that grace, all that body
All that face, makes me wanna party
He's my sun, he makes me shine like diamonds.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 가사인가? 하지만 자신이 천국에 가게 될 때 그를 데려가게 해달라는 건 역시 좀 무섭다. 내가 죽는다고, 그 사람도 데려가겠다니... 따지자면 순장의 개념이지 않은가??? 이게 사랑일까???

자유와 사랑의 공존하며, 그 사람의 존재와 존재 방식을 존중하는 사랑은 없는 걸까??

영원한 사랑은 인간도, 신도 갈구하게 되는 것인가보다. 어째서 우리는 사랑을, 영원을 갈구할까?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그건 사치일까? 헛된 꿈일까? 개인적 욕망일까?



펜할리곤스의 루나(EDT)와 앤디미온


어쨌든 루나와 앤디미온의 조금 무섭고도, 이상한 사랑이야기는 펜할리곤스에서 낭만적인 향수로 만들어진다.

살랑살랑 거리는 커다란 하얀색 리본만 봐도 펜할리곤스의 루나는 너무나 아름다운 향수이다. 루나의 탑 노트는 정말 사랑스러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늘 소개하곤 하는 향수이다. 루나의 탑 노트는 맑고 신선하면서, 깨끗한 향이 난다. 투명하게 맑은 느낌, 밝은 달빛 아래 이슬이 맺힌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달빛 아래 서있는 기분이다. 어떤 말을 해도 이 루나의 탑 노트를 맡았을 때 느낌을 전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직접 맡아봐야만 안다. 탑 노트로 레몬, 베르가못, 비터 오렌지, 하트 노트로 장미, 자스민, 쥬니퍼 베리, 베이스 노트로 발삼 퍼, 머스크, 앰버그리스가 들어있다. 탑노트는 다 시트러스인데 신기하게도, 시트러스향이 아닌 다른 향이 먼저 올라온다. 이 첫향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왜냐면 이 첫향이 아주 빨리 날아가기 때문이다. 또 여기서 슬픈 사실이 있다. 바로 베이스 노트... 첫향의 그 신선함은 시간이 갈수록 퇴색해버리고, 무겁고 진한 시트러스향만 남는다. 이게 루나의 비극이다. 잔향이 안 좋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첫향의 신선함이 너무 빨리 사라지고 무거운 향이 남는다는 게 슬프다. 아르테미스와 앤디미온의 사랑처럼 낭만적인듯 하나 끝이 씁쓸한 느낌이다.


펜할리곤스의 앤디미온은 탑노트로 베르가못, 만다린, 라벤더, 세이지와 하트 노트로 제라늄과 커피, 베이스 노트에 카더몬, 넛맥, 블랙 페퍼, 레더, 미르, 유향, 샌달우드, 베티버가 들어있다. 베이스 노트가 무척 복잡해 시간이 지날수록 향이 더욱 풍성해지는 경향이 있다. 사실 앤디미온의 이미지는 영원히 잠든 미소년의 이미지인데, 그런 이미지는 아니다. 오히려 좀 어른스러운, 많이 어른스러운 남자 스킨향, 옛날 남자 스킨향, 어릴적 맡아본 적있을 법한 아빠 스킨향이 난다. 좋게 말하면 클래식한 남자 향이다. 클래식과 올드함, 구식은 참 종이 한장 차이다. 굳이 따지자면, 앤디미온은 클래식에 더 가깝기는 하다.


펜할리곤스의 향수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담겨져있다.

앙증맞은 향수 보틀은 저마다 색과 모양이 다른 리본이 매어져있고, 저마다 다른 색과 향을 띄고 있어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인물들이 떠오른다. 향수도 저마다의 인생과 이야기가 있는 듯하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우리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인생이 있고, 자신만의 향이 있지 않을까?

내 인생도 이렇게 풍성하고 매력적인 이야기가 가득 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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