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스트라이크를 날리다
샤넬은 시리즈로 특집편을 만들기로 했다.
왜? 그건 내가 샤넬 향수를 많이 애정하니까...라기보다, 샤넬은 좀 할 말이 많아서라고 해야 좀 공정한 사람처럼 보이겠지... 샤넬 향수를 이야기하면, 모두 당연히 샤넬은 NO.5아니야?라고 생각하겠지만, 그전에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샤넬의 향수 광고다.
우리는 아직 윌리웡카처럼 TV나 화면 속 향수의 향을 시청자에게 전달하지 못한다. 언젠가 뉴스에서 냄새 분자 구조를 전달해, 그 냄새를 시청자들이 맡을 수 있도록 구현하는 기술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언제 그런 기능이 장착된 TV가 나올진 아직 미지수... 그 전까지 향수는 오직 광고 속 이미지로만 자신을 나타내야할 것이다. 그래서 향수 회사들은 기를 쓰고 광고를 만든다.
향수 회사는 광고를 참 잘 찍는다. 거의 아트 필름 수준으로 찍는다. 나는 늘 향수 광고는 이미지 광고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조잡한 광고도 있겠지만, 향수 광고는 제품 광고를 넘어서 기업의 아이덴티티나 신념을 드러내기도 하고, 기업 브랜드 이미지 자체를 바꿔버리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그 기업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 기업의 미래 방향성을 전달한다. 그래서 다들 기를 쓰고 멋있게 찍는다. 영상 속 카피라이트 문구도 엄청 거창하다. 광고 모델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마치 그 향수를 사면 나도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처럼, 사람을 자극한다. 하긴, 향수 자체가 워낙 이미지에 크게 좌우되는 산업이기도 하고, 향수의 향은 시향해보기 전까지 모르는 거니까, 미리 세뇌한다. 이 향수는 이런 거야. 그런 이미지가 심어진 채 우리는 그 향수를 시향한다. 광고 속 이미지와 향이 결합하며 그 향에서 그런 이미지가 난다고 착각에 빠지게 된다.
가장 멋진 광고를 꼽자면 역시 디올 쟈도르 아닐까? 샤를리즈 테론의 표정, 손짓, 걸음 걸이 하나 하나에 모두 디올 쟈도르의 이미지가 담겨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향수 광고는 샤넬이다. 특히 샤넬 샹스.
그 많은 샤넬 광고 중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광고는 바로 샤넬 샹스. 이 광고 때문에 나는 본의아니게... 핑계지만... 샤넬 샹스라인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해, 다 모아버렸다. 한 라인을 다 사본 적은 없었는데, 샤넬은 그랬다. 이건 다 광고 때문이다. 나는 디지털 매스미디어 시대의 노예인 것인가? 하지만 그 광고는 정말 내 스타일이었다. 나의 스트라이크존을 건드렸다고나 할까? 향수 광고라고 모두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난 아직도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찍은 샤넬 향수 광고는 좀 오글거린다. 끝에 가브리엘 샤넬 이러면 다 되는 줄 아나...
샤넬 샹스(CHANEL CHANCE), chance, 프랑스어로 행운, 기회, 가능성을 의미하는 샹스 광고는 프랑스 출신의 비주얼 아트 크리에이터 장 폴 구드(Jean-Paul Gould, )가 연출했다. 장 폴 구드는 샤넬, 프라다, 바오바오백으로 유명한 이세이 미야케, 라코스테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해온 디자이너이다. 그는 1940년 생으로 40년 넘게 디자이너로 패션 업계에서 일해왔다. 그의 조부모님 역시 패션업계에 종사하셨는데, 파리에서 작은 오트쿠튀르점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DNA 속에 패션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특히 그는 광고 디자인 쪽에서 두각을 드러냈는데, 샤넬 샹스 광고 외에도 이전에 샤넬 에고이스트 향수 광고(1990)를 연출한 적이 있다. 그 광고를 찍을 때, 당시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자크 엘루에게 어쩌면 제대로 된 광고 필름을 찍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광고가 나온지 20년도 더 지났지만, 그 광고는 참 독특했다. 여자들이 하나씩 다 창문을 닫으며 에고이스트를 외친다. 이 광고는 국내 한 가구업체가 따라해서 광고를 찍은 적이 있을만큼 잘 만든 광고였다. 에고이스트만 주구장창 외쳐대며, 그 이름을 각인시켰던 강렬한 광고였다. 최근 그는 한 인터뷰에서 SNS가 발달하다 보니, 짧은 광고가 판을 치게된 이 시대의 변화를 겪으며 내심 아쉬워하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짧은 단편만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가 짧아질 수록,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줄어들기 때문일까?
에고이스트 광고에서도 그렇지만, 샤넬 샹스 광고에서 그의 아이디어는 더 빛을 발한다. 그는 재치있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재능이 있다. 그는 현명하면서도 야심만만하고, 유머가 담겨있으면서도 구조가 탄탄한 광고를 사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젝트, 그 광고의 정신에서 흥미를 느낀다. 그가 만든 광고가 딱 그렇다.
샤넬 샹스 라인에는 총 4가지 향수가 있는데, 광고 속에서도 4명의 샹스 걸들이 나타난다. 각각 샤넬 샹스에 있는 Chance, Eau fraiche, Eau tendre, Eau vive를 의미한다. Chance는 황금빛 향수로 낙관과 긍정의 무드를, 초록빛 Eau fraiche는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무드, 핑크빛과 라일락색을 넘나드는 Eau tendre는 부드러움과 섬세한 무드를, 오렌지색의 Eau vive는 에너지 넘치는 활기찬 무드를 상징한다. 그 중 이 광고는 샤넬 샹스 오 비브(Eau vive) 광고였기에, 오렌지빛 샹스의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이 든다.
샹스의 동화적인 색감과 장 폴 구드남다른 상상력으로 완성한 이 광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Take a chane, Take your chance, Take a chance on me, Take a chance on love 를 반복적으로 속삭이며, 주문을 거는 듯한 이 경쾌한 배경음악 속에서 그들은 볼링을 친다. 샤넬 샹스들이 볼링 공처럼 쭉 쏟아져 나오고, 그녀는 샤넬 샹스하나를 집어든다. 그리고 특이한 자세, 마치 아크로바틱하듯 독특한 자세로 볼링 공, 샹스를 던진다. 그리고 샹스는 데굴데굴 굴러가 볼링핀으로 놓여진 또 다른 샹스와 부딪힌다. 볼링 공이 된 샤넬 샹스 또한 볼링 핀이 된 샤넬 샹스. 샤넬은 광고는 양극단이 하나로 이어진다. 공이면서 핀, 도전이 곧 목표가 되는 이 광고는 우리에게 끈임없이 기회를 잡으라고, 행운을 잡으라고 이야기한다. 샹스 걸은 보기 좋게 스트라이크를 날린다. 우리의 도전이 분명 성공할 거라고 안심시키듯.
최근 샤넬은 No.5 L'eau의 모델로 17살의 릴리 로즈 뎁을 뮤즈로 삼았다. 이 광고는 샹스 광고보다 더 양극단을 오간다. 묘하게 조니뎁의 눈빛과 오랜 세월 샤넬의 뮤즈였던 바네사 파라디의 얼굴을 닮은 그녀는, 그들의 딸이다. 릴리 로즈 뎁이 나온 이 광고는 새로워진 샤넬 NO.5 로(L'eau)는 여성 안에 있는 가능성 넘치는 소녀를 일깨우기 위해 어린 릴리 로즈 뎁을 뮤즈로 광고를 촬영했다.
샤넬 No.5 L'eau는 단지 자신이 새로운 버젼으로 나왔다고, 이 향수는 이렇다고 이야기하려고만 만든 광고가 아니다. 샤넬 No.5 L'eau를 만들때 담았던 생각, 사람들에게 향수로써 전하고 싶었던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I AM... Night And Day, Question And Answer, Compose And Excessive,
Instant And Infinite, Artist And Muse, Vulnerable And Invincible, Breaking And Making,
You know me And You don't
I AM으로 시작하는 이 광고는, "당신이 아는 나 그리고 모르는 나"를 컨셉으로 하고 있다. 샤넬 No.5 l'eau.. 우리가 너무 잘 알지만, 전혀 모르는 새로운 향수라는 메시지는 사람들이 아는 나, 그리고 모르는 나, 내가 아는 나, 그리고 내가 모르는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늘 고정적인 한가지 이미지에 갇혀있다. 한쪽만 선택해왔다. 샤넬은 이 광고에서 AND를 계속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광고는 초단위로 구성되는 만큼, 불필요한 장면은 넣지 않는다.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15초에서 길어봤자 20초 남짓한, 시간이 곧 돈인 광고에서 불필요한 씬은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다 의미가 있고 계산이 들어가있는 장면이다. 꼭 필요한 장면만 넣는다. 그런 광고에 샤넬은 AND를 8번이나 보여준다. 결코 가볍게 넘겨선 안 될 의미가 담긴 단어인 것이다.
우리는 이 극단이 될 수 있다. 샤넬의 AND는 우리 안에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나는 낮이면서 밤이고, 질문이면서 답이 되며, 다듬어져 있으면서도 때로는 정도를 넘어서고, 찰나이면서도 영원하며, 남에게 영감을 받는 아티스트이면서 영감을 주는 뮤즈이다. 파괴하기도 하고 만들기도 한다. 연약하면서도 꺾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 극단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 이 메시지는 칼융의 원형이론과 닮았다. 아니마와 아니무스, 어두운 그림자,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나 자신을 모두 받아들임으로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
칼 융은 "우리 모두의 내면엔 우리가 모르는 또 하나의 자신이 있다."는 말을 했었다. 이 광고에서 처럼, 우리는 우리 안에 내가 모르는, 어쩌면 피하고자하는 또 다른 나 자신이 있다. 이런 우리에게 칼융은 이런 말도 했다.
"People will do anything, no matter how absurd, to avoid facing their own souls."
우리는 자기 자신의 영혼을 마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어떤 이상한 짓이라도 할 거라고...
진정한 성장은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는 칼 융의 또 다른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온전히 들여다봐야한다. 내 안에 내가 모르는 나, 어쩌면 알고있지만 모른척 했던 나를 제대로만 마주 본다면, 우리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 기회는 곧 행운이 될 것이다. 내 안에서 진짜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바라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