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 모두에게 친절하면 안 되나요?
((칩거 22일차 기록))
나의 문제점들, 문제점이라고 하지말고, 내가 고치면 조금 좋을 점이라고 표현해야겠다.
사람들이 한번씩 이야기해줬던 말들을 기억과 카톡을 뒤져가며 적어내려갔다.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
지나치게 예의있는 사람
벽이 있다.
선긋고 친해지는 사람.
애매하게 구는 사람.
간을 심하게 많이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갈대.
내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그러나 속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있음)
끝이 보이는 관계를 맺는 사람
친한듯 안 친한듯 친한듯 거리를 알 수 없는 사람
모두와 쉽게 친해지는 사람
모든 사람과 친한 사람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사람...
이런 것들을 리스트로 쭉 적어내려가다 보니, 좀 웃긴 게 나왔다.
모두에게 친절한...?
나름 클러스터링을 해보려고 했는데, 웃기게도 이 모든 말들이
사실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사람.
모두와 쉽게 친해지고, 친절하지만
사실 그 누구와도 특별하게 친하게 지내거나, 특별한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
나는 나만의 기준 선이 있고 그 선에 해당하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선에 걸리지 않는 친절한 행동을 하며, 그 선을 지키기 위한 예의를 갖추면서 사람들과 친해지려 했다. 미리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열려있는 듯하지만 실은 모든 가능성의 한계를 이미 그어놓은 셈이다.
나는 나를 볼 수 없으니까, 느낄 수 없었지만, 나와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나에게서 묘한 거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고,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모습을 통해 관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곤 한다.
그런데 나는 그 누구에게도 확신을 줄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얘는 나에게만 이러는 게 아니라, 나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똑같이 대해준다. 내 눈 앞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내가 볼 수 없는 다른 어딘 가에서 만난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나에게 한 것과 똑같이 대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만약, 나에게 별다른 기대감이나 마음이 없는 사람이거나 무딘 사람이라면, 공평하군, 박애주의자네 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애초에 못 느꼈을 수도 있다..), 나와의 관계에서 어떤 기대감을 가지거나, 나와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었다면, 섭섭함을 느꼈을 대목이다.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의 함정은, 한 사람, 한 사람 일대일 관계에서 특별한 괸계를 맺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모두와 친한 사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 사람에게 특별한 단 한사람이 될 수 있을 거란 확신 대신,
이 사람에게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겠구나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는 이 사람의 첫번째가 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을 들게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게 나쁜가요? 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친절함 자체는 나쁠 수 없다.
그리고 애초에 세상에 100% 나쁘고 100%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첫번째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나는 그냥 수 많은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을 때, 내가 서운하지 않을 수 있다면, 모두에게 친절하고, 모두에게 동등한 애정과 관심을 주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절대 서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서운한 마음이 안 들 수 있겠는가?
내가 누군가에게 only one이 되고 싶다면, 나 역시 그 사람을 one of them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하는 것이다.
종종 사람은 내가 가지지 못한 걸 남을 통해 채우려고 한다.
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귀신같이 나의 부족한 점을 알고서 이를 채워줄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이다.
나는 늘 내 이상형의 조건으로 나를 첫번째로 생각해주는 사람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
나는 누군가를 특별하게 대우해주지 못하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어쩌면이 아니라, 아마도, 아니 아마 분명히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나의 무심함이, 나의 허울뿐인 이상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건 내 잘못이라고.
이미 준 상처를 롤백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는 누군가에게 절대로 이런 마음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외롭지 않길 바라듯,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의 이런 성향은 분명 사람들에게 외롭고 소외된다는 마음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또 따져 묻기도 애매하다.
왜 모두 똑같이 좋아해줘? 왜 모두 똑같이 대해? 라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어린 질투심처럼 보일까봐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도 아마 입밖으로는 꺼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지만, 사실은 정말 차가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내가 차갑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결국 적당한 선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사람.
끝에는 벽이 있는 사람. 나는 닫힌 문이었다.
이번 칩거재택기간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시간이 지나서야 이런 나를 되돌아봤을지도 모른다.
칩거가 길어질수록 외롭고 심심한 시간들이 쌓여가고, 사람들과의 연락이 뜸해지며 정리될 인연들(내가 먼저 연락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연락되지 않는 사람들)이 낙엽 떨어지듯 떨어져나가지만, 이제 괜찮다.
이 시간이 아니었다면, 정말 나에게 소중한 것,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모를 뻔 했으니까.
뜻 깊은 밤이다.
앞으로는 좀 더 세심한 사람이 되고 싶다.
무심결에 남에게 상처주지 않는 그런 사람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