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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이올렛 Nov 19. 2023

외출을 부르는 베이징 실내 추위

베이징에 부임하며 나름 여러 가지 준비를 많이 했다. 아이들 약과 사계절 입힐 옷들, 한글로 된 전집, 한국 가공 음식이며 하다못해 스타킹, 손톱깎이, 치약처럼 사소한 것들까지도. 베이징은 큰 도시고 교민도 많아 필요한 것은 대부분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데 뭘 그리 바리바리 다 싸 왔냐며 의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첫 번째 해외 파견 때 ‘필요한 건 다 현지에서 구하지 모’라고 생각하고 갔다가 낭패를 본 경험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특히, 생활에 쓰이는 사소한 것들일수록 내 취향과 선호가 많이 반영되어 그와 비슷한 물건들을 현지에서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하루하루 바쁘게 일하다 보면 정작 필요한 것들을 살 시간조차 없을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에서 늘 쓰던 것 그대로를 가지고 와서 지내면서 천천히 현지 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현지에서 필요한 물품 등을 구하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을 거의 완벽하게 다 한국에서 가져왔다고 생각했으나, 한 가지 대비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간절기 실내 추위’였다. 베이징은 서울보다 위도가 더 높은 곳에 있으므로 겨울이 더 빨리 오고 춥다. 대신 실내 난방이 잘 되어있다고 들은 터라 추위에 대해 걱정은 하지 않고 베이징에 왔다. 첫 번째 파견지였던 우한의 경우 겨울철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진 않지만, 실내 난방이 잘되지 않아 정말 춥게 지냈던 경험이 있다. 베이징은 난방(그것도 온돌난방!!)이 잘 되는 편이니까 추위 걱정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8월에 부임하고 약 3개월이 지난 11월부터 건물 안이 건물 밖보다 춥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베이징은 중앙난방을 하고 있어 내 맘대로 난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부 아파트는 개별난방도 가능하긴 하다) 베이징의 겨울철 난방은 주로 11월 15일부터 다음 해 3월 15일까지 한다. 물론 그 해의 기온을 보고 난방 시기를 1~2주 정도 조정하기도 한다. 베이징에서의 첫해 가을엔 정확히 11월 15일에 난방을 시작했다.     


사무실에서는 개별 난방기구를 사용하며 추위를 이겼지만, 집에만 오면 아이들과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주말엔 집 안이 너무 추워 차라리 외출을 선택했는데, 밖을 걸어 다니며 햇살을 받는 것이 훨씬 따듯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베이징의 봄과 가을, 정말 부지런히도 돌아다녔었다.     

베이징 거리마다 꽃이 만개했고, 나와 아이들은 실내 추위를 피해 이런 꽃길을 참 많이도 다녔다.


베이징의 실내 추위는 너무 혹독했지만, 덕분에 베이징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봄과 가을, 베이징 구석구석을 아이들과 다니는 혜택을 받았다. 봄에는 도시 전역이 꽃으로 장식되곤 했다. 아이들과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름 모를 여러 꽃나무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을이 되면 맑고 높은 베이징의 하늘과 찬란한 햇빛에 작은 행복을 느끼곤 했다. 북방의 가을 햇빛은 조금 더 차갑고 투명한 느낌이었다.     


더 없이 맑고 청량했던 베이징의 가을


11월 15일, 드디어 베이징에서 중앙난방이 시작됐다. 그리고 따듯한 온기가 집안 전체를 훈훈하게 해줬다. 우리들의 외출도 그와 함께 줄어들었으나, 매년 간절기마다 찾아오는 실내 추위 덕분에 유모차를 몰며 베이징의 곳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때가 아마 오래도록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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