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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May 04. 2023

당신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나는 지금이라고요"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공부를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꼭 내 인생이 실패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도대체 뭐가 문제 길래 안정적인 직장에 정착할 수 없는 건지 괜히 눈을 내리 깔게 된다.


이제껏 글을 쓰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글을 쓰는 직장을 얻으려 고군분투했지만 모두 계약직이었다. 계약기간이 끝날 때쯤엔 또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나는 이제 지쳤다. 대학 졸업 후 무려 4번이나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릴 수는 있으나 그러니까 나는 글으로 먹고 살수는 없는 것인가요. 나는 두 번째 책을 낼 수 없는 것인가요.


엎친데 덮친격으로 브런치에게도 버림받은 기분이다. 내 글은 써봤자 아무 반응도 없고 몇 읽지도 않는다. 메인에 올라가는 일도 없고 그놈의 잘난 “추천작가”에 이름을 올린 적도 없다. 내 책이 브런치 메인에 결코 실리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고(진짜 너무하다 나도 책 냈는데 왜 내 책은 안 실어주나).


그러므로 나는 생각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경기 도중 부상을 입은 강백호가 감독에게 물은 것처럼(“영감님,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나는 지금이라고요”), 내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나, 하고.


내 영광의 시대는 바야흐로 2021년 10월, 내 첫 에세이가 출간되었을 적이다.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몇 년간 브런치에 혼자 써왔던 글이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오던 날. 세상을 다 가진 기분. 이제껏 당했던 수모와 수치가 한순간에 씻기고 모든 보상을 받은 것처럼 느껴지던 때. 그때가 내 영광의 시대였다. 작가 김예란. 그 타이틀이 내게 쥐여졌던 시절.


그리고 이제는 시간이 흘러흘러 그 영광이 한낱 미세먼지처럼 흩어져버렸고.


그런데 그거 아니. 강백호는 그날의 경기에서 선수생명이 걸린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고 그 때문에 훗날 재활지료를 받게 되는데 원작에서는 재활치료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그가 다시 농구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씩씩하게 치료를 받는 모습만 나올 뿐. 그런데 작가의 다른 만화, 장애인 농구를 다룬 만화에서 지나가는 전단지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당신도 제 2의 강백호가 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아, 하고 감탄을 내뱉는다. 아, 성공했구나. 재활에 성공해서 프로에 입단했구나. 그래서 장애인 농구선수들에게 빛과 희망이 되었구나.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또 생각한다. 내 영광의 시대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지금은 긴긴 재활치료를 받는 것일 뿐이라고. 이 재활치료가 끝나면, 나도 언젠가, 아니 머지않아 두 번째 책을 낼 수 있으리라고. 그러니까 강백호처럼 이 지독한 재활치료를 씩씩하게 견뎌내자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이라고 선택한 것에 최선을 다하자고, 그러면 나의 영광의 시대가 슥 하고 나를 다시 찾아와 주리라고.


슬램덩크 만화책에서 재활치료 선생님은 강백호에게 말한다. 

오늘은 꽤 아플거야, 괜찮겠니?

강백호는 씩 웃으며 대답한다. 물론이죠.      


그러니 나도 대답하련다.     

오늘 하루도 괜찮겠니?

“네, 물론이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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