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김예란


누군가에겐 글쓰기가 생계 또는 꿈, 취미, 아니면 취미 그 이상의 무언가일 테다. 나에게 글쓰기는 짝사랑이다. 짝사랑.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하는데, 너랑 가까워지고 싶고 잘해보고 싶은데. 언제나 저어 멀리서 애틋하게 바라보며 절절 끓는 이 마음이 가닿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한 발짝 더 가까워지기를. 하지만 짝사랑, 그것은 이름만큼이나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고.


이 사랑의 대상은 얄밉고도 도도히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래,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어. 그러니 이번엔 내가 큰 인심 써서 다음포털 메인이나 브런치 메인 화면에 걸리게 해줄게, 됐지?’ 그렇게 아주 가끔, 가아끔 희망을 주고선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등을 싹 돌려버린다. 이 싹퉁바가ㅈ....l.....


최근에 브런치앱에 들어가 봤는데, 누가 ‘좋아요’를 눌렸는지 알림표시가 떠있었다. 화면 왼쪽 선단의 삼지창 (三) 옆에 달린 조그만 민크색 동그라미. 나는 그것을 누르지 않고 한동안 가만히 쳐다보다가, 화면을 그대로 캡쳐했다. 어쩌면 나는 이 조그만 동그라미를 보기 위해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보다, 하고.


나는 새 글을 올리고 나서 잠시 후 뜨는 알림표시를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알림사항을 확인하기 전, 마음속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설렘이 풍실풍실 부피를 늘려가는 게 좋다. 마음속에 몽글하고 부드러운 원을 그리는 듯한 그 느낌을. 이번엔 누가, 몇 명이 내 글을 읽고 공감해주었을까? 어쩌면 댓글이 달려 있지는 않을까? 혼자 작은 기대와 소망을 품으며 가슴 설레어한다.


그리고는 마음을 다잡고 살짝 눌러본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을 때는 아싸,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와 반대일 경우엔 눈썹과 입 꼬리가 내려앉는다 풀썩. 아... 정말 최선을 다해 썼는데 별로 반응이 좋지 않구나... 좋아요도 구독도 별로 없고 브런치 메인 화면이나 포털사이트에 걸리지도 않았구나... 실망과 착잡함이 더해져 회의감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나는 이곳에 한포기의 재능도 없는 게 아닐까..... 나 이제 정말 글 쓰는 거 그만둘까봐......'


아니다, 아니야! 다행히도 나는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그날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잡지에 처음으로 내 글을 싣던 날, ‘이 글이 한사람에게라도 가닿아 위로와 용기를 주었으면’하고 간절히 바랐던 마음을. 자기소개란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공감을 얻는 글을 쓰고자 노력합니다.’라고 적던 그 마음을.


‘이 마음을 잊으면 안 돼.’ 많은 사람들이 읽진 않아도 내 글이 단 한사람에게라도 단단히 가닿아 위로와 공감, 용기를 전하는 것. 또는 무언가를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과거의 다짐을 되뇌어주며 처음 글과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그러면 나는 다시금 겸손한 마음이 될 수 있다. 내 글을 끝까지 읽고 손수 ‘좋아요’와 댓글을 남겨준 분들에게 넘치는 감사함을 느낀다. 조그맣고 귀여운 나의 41명의 독자 분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고마움을. 그리고는 다시 얼마간의 힘과 희망을 얻고서 하얀 백지장에 키보드를 두들긴다.


KakaoTalk_20210121_215405665.jpg


나의 감성과 성찰이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어 닿기를.


내 브런치의 소개글이다. 그렇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지식과 글 솜씨를 자랑하기 위해서도, 단지 나 자신을 표현하거나 과거를 기록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나의 감성과 성찰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공감의 형태로 닿기를 바란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었으면, 당신이 내 글을 보고 용기와 희망을 얻었으면,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공감의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당신과 같은 존재가 여기 또 있다고, 그러므로 우리 모두 돌아갈 무렵엔 위로가 필요하다고. 그런 말을 전해주고 싶어 나는 글을 쓴다. 비록 몇 명 읽지 않는다고 해도, 누군가의 내면에 가닿아 울림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므로.


그래서 부끄럽지만, 새로 산 공책 첫 페이지에 나의 거대한 꿈을 적어 놓았다. 항상 마음에만 품고 있던 말,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의 꿈. 나의 희망을.

나는 서른 전에 꼭 내 책을 낼 거야.

나는 에세이 작가가 될 거야.

사는 동안 내 책을 3권 이상 내고, 그 중에 몇 권은 베스트셀러가 될 거야.


그리고 페이지 모퉁이에 작게 적어놓는다. “뭐, 안되면 말고”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글 쓰는 것을 멈추지 않도록. 너무 실망해서 좌절하지 않도록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작가가 못 되더라도 글 쓰는 걸 멈추지 않을 거야. 뭐, 안되면 말라고 그래! 나는 계속 해서 쓰고, 쓰고, 또 써서 기어코 쓰는 사람으로 남을 테니까 말이야.


자, 이제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적을 시간이다.

나는 오늘도 민트색 동그라미를 고대하며 타닥타닥. 경쾌하게 키보드를 두들긴다.

keyword
이전 16화언제든 도망칠 수 있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