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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un 23. 2022

야, 강박증도 행복해질 수 있어

   

강박증이 발현된 지 어언 4개월이 지난 시점, 병원에 다니면서 증상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강박사고로 번번이 고통 받는다. 엄마는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본가로 내려와 며칠 쉬다 가라고 종종 권유하셨다(나는 지금 자취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에라이, 여기서 고통 받나 저기서 고통 받나 똑같다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귀찮아서 집으로 내려가는 걸 매번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덥석 짐을 챙겨 본가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좋은 카페를 알고 있다며 내게 바깥 공기를 씌어주었다. 카페 근처에는 녹색 나무가 양 옆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었는데, 우리는 커피를 마신 후 산책로를 조금 걷기로 했다. 공원은 온통 녹색이었으며, 나무를 따라서 이름 모를 들꽃들이 아름아름 자라고 있었다. 가만가만 걷고 있자니 지저귀는 새소리가 나무사이로 들려왔고, 풋풋하고 생그러운 풀내음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나는 엄마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찬찬히 걸었다. 하지만 실은 그 순간에도 강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빙빙 맴돌고 있었다. 괴로웠고,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조용히 눈을 감고 새소리와 나무 향, 그 공간의 공기에 집중하며 자박자박 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그 모든 괴로움을 뚫고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 나왔다.


“아, 행복하다.”


갑작스런 고백(?)에 엄마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그리고는 이내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행복해서 다행이야, 내가 행복해서 다행이네, 하면서.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강박증도 행복해질 수 있구나.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때 이런 것을 깨달은 거 같다. 아, 강박증을 앓고 있어도, 여전히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몫이 남아있구나. 행복은 가만히 기다린다고 저절로 내가 있는 곳까지 걸어와 주는 그런 것이 아니구나. 행복은, 내가 발걸음을 옮겨 ‘도달’해야 하는 것이구나. 내가 순간순간 ‘선택’하는 것이고, 기회가 왔을 때 ‘붙잡아야’ 하는 거구나. 그런 것들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랬다. 나는 그날 엄마가 집으로 내려오라고 했을 때 귀찮다고 안 갈 수도 있었지만 가는 쪽을 택했고, 카페에 가자고 했을 때 집에서 쉬자고 할 수도 있었지만 역시나 가는 쪽을 택했다. 커피를 마시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걷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덕분에 나는 ‘아, 행복하다’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나의 선택, 나의 발걸음으로 이 푸른 행복을 손에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행복은 성공처럼 이루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거나 딱히 거창한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 어떤 상태에 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강박증이나 우울증, 조울증,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들, 직장, 또는 육아에 찌들어 있는 당신에게도, 분명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몫이 남아있다.


실은 행복은, 들꽃처럼 우리 도처에 간간이 심겨져 있다. 점심시간에 잠시 밖으로 나와 햇볕과 바람을 쐬는 것, 선선한 밤공기를 느끼며 찬찬히 걷는 것, 먹고 싶었던 케익을 내게 사주는 것, 시간을 쪼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서 대화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 잔잔히 심겨져 있다고. 다만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려고 고개를 들지도, 걸음을 옮기지도 않을 뿐.


실제로 강박증이 발현되지 않았을 때의 나에게도 손에 쥘 수 있는 행복이 있었고, 강박증으로 앓고 있을 때의 나에게도 여전히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행복이 있었다. 단지 어떤 종류의 행복을 얼마큼 누릴 수 있는가의 문제지, 행복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결국 행복은 내가 붙잡을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집에 처박혀 있느냐, 볕을 쬐려 나가느냐, 혼자 침대에 누에고치처럼 누워 있느냐, 사람을 만나 바보같이 떠들고 웃느냐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것을 깨달은 시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애써 행복의 쪽으로 손을 뻗는 일일 것이다. 날이 좋은 날엔 볕을 맞으러 밖에 나가고, 마음이 피폐해 졌을 땐 꽃을 한 아름 사서 내게 선물해줄 것이다. 입맛이 없을 땐 케익과 커피도 선뜻 먹여줄 것이다. 그렇게 간간이 행복의 순간을 하루에 한 개씩은 만들 것이다. 고이 심겨져 있는 행복을 쏙쏙 뽑아 바구니 속에 고이 담아 넣을 것이다. 그리고선 세월이 흘러흘러 호호 할머니가 되었을 때, 누구에게라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얘야, 사는 건 정말이지 존나 힘들단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야, 존나 힘들어 정말. 나는 우울증도 걸려봤고 공황장애도 걸려봤으며 빌어먹을 강박증까지 걸려 봤단다. 하지만 있잖니, 언제나 이 할미는 하늘을 보러 나갔고 자전거를 탔으며 커피를 마셨어. 작은 행복들을 힘써 찾으러 다녔고, 쟁취하며 살았지. 그게 중요한 거란다. 도처에 작게 심겨져 있는 행복을 유심히 바라보고, 발견하고, 쟁취하는 것, 매일매일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잊지 마렴. 어머나, 내가 또 말을 이렇게 많이 했구나. 틀니를 차라리 빼버리는 게 낫겠어. 미안하단다, 아가. 하지만 너랑 대화할 수 있어서 또 기쁘고 행복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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