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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ul 05. 2022

정신과에 가는 건 사랑니를  뽑는 것과 같은 거야


현재 강박증으로 정신의학과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요, 차차 좋아지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저를 괴롭혔던 강박사고와 침투사고도 많이 줄었고, 강박적 습관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에 따라 두통과 수면의 질도 훌쩍 좋아졌고요. 회복세를 그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병원을 방문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물으셨지요. 요즘 기분은 어떻느냐고. 저는 좋다고 답했습니다. 몸무게도 2키로나 늘었다고 덧붙였어요. 선생님은 활짝 웃으시며, 정말 다행이라고, 예란 씨 너무 말라서 걱정했었는데 정말 좋은 일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하하. 몸무게가 늘어서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다니,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말을 이어가셨어요.


“나는 예란씨가, 다음에 만났을 땐 요즘 돈을 너무 많이 써서 걱정이에요, 라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선생님은, 사람은 기분이 좋아지면 첫 번째로 식욕이 생기고, 두 번째로 사고 싶은 게 생기며, 세 번째로 하고 싶은 게 생긴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저는 무릎을 탁 치며, “맞아요, 요즘 그렇게 가방이랑 신발이 사고 싶더라고요, 종종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보고 있어요.” 라고 맞장구를 쳤답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정말 많이 좋아졌구나, 싶죠? 예전엔 강박사고와 침투사고가 두려워 침대 속에 웅크려 잠만 잤었는데.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내가 만약 정신과의 문턱을 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좋아질 수 있었을까?’ 음, 글쎄요. 모를 일입니다. 좋아졌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이보다 빨리 좋아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저는요,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강박사고들과, 이 강박사고들에 마음속으로 일일이 대답을 해주는 강박적 습관들이 조현병의 증상이면 어떡하나, 내가 조현병이면 어떡하나, 두려워서 정신과에 가는 걸 피하고 있었습니다.


정신과에 가서 정말 조현병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저는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읽고 쓰는 일,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일, 사람을 만나는 일, 사회생활, 그 어느 것도요(하지만 이건 저의 편견이었습니다. 조현병도 치료만 잘 받으면 정상적으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근 5개월간을 혼자 끙끙 앓으며 집에 처박혀 있었어요. 그러다 도저히 이렇게는 못살겠다 싶어서 언니에게 전화를 했지요. 저의 상황과 두려움에 대해 언니에게 낱낱이 털어놓았더니, 언니가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예란아, 너 사랑니 뽑아봤지? 그거 뽑고 난 뒤에 일주일간은 밥도 잘 못 먹고 양치할 때 피도 나잖아. 성가시고 아프잖아.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면 더 이상 아프지도 않고 멀쩡하지? 뽑기 전에는 계속 쿡쿡 쑤시며 아팠는데 뽑고 나면 시원하고 아프지 않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병원에 처음 갈 때는 무섭고, 어쩌면 진단을 받고 나서 더 혼란스럽고 두려울지도 몰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가기 전보다 훨씬 좋아질 거야. 무엇이든 썩고 있는 건 뽑아내야 해, 지금 안 뽑으면 점점 더 아파올 거고, 회복은 더 늦을 거야.”


맞습니다. 언니는 이런 부분에서 언제나 현명합니다. 썩고 있는 건 빨리 뽑아내야 해요. 사랑니를 그대로 두다간 멀쩡한 옆에 이까지 썩게 만들지도 몰라요. 그러니 아프기 시작할 때 바로 병원에 가는 게 좋습니다. 저는 언니의 말에 용기를 냈어요. 병원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만성 우울증일 때도 제 등을 떠밀어주었지요. 직접 병원을 찾아서 제 이름으로 상담을 예약해주었어요.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흠흠 어찌되었건, 이번에 저는 다행히도 걱정하던 조현병이 아니라 강박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카페에서 이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상태가 호전됐고요. 썩고 있던 사랑니를 잘 뽑아내고 있는 중이에요.

 


여러분,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정신과를 가는 것은 치과를 가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가 아플 땐 당연히 병원을 가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어떤 진단을 받을지, 그런 것을 생각지 않고 그냥 바로 병원에 가잖아요. 그것과 똑같은 겁니다. 마음과 정신이 아플 땐 정신의학과를 가서,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고 적합한 치료를 받아야 해요. 가기 두렵다고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누가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다 시기를 놓쳐버리게 된다면은, 옆에 있던 이까지 썩어서 더 큰 비용과 시간을 희생해야 할지도 몰라요.


‘정신과에 가는 건 좀 유난스러운 거 같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건 그냥 마음의 병이니 시간이 지나면 낫지 않을까?’ ‘정신과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있지 않을까?’ ‘내가 실은 무서운 병이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은 병원을 가고 나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여러분, 정신의학과는 병원입니다. 두렵고 낯선 곳이 아니라, 그저 아픈 사람들이 치료를 받으러 가는 곳입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지금 사랑니가 있지 않나요? 그래서 계속 쿡쿡 쑤시고 아픈데, 뽑으면 더 아파질까봐 무서워서 병원에 가는 걸 미루고 있지는 않나요? 여러분, 썩은 건 그냥 자연스레 낫지 않습니다. 어떤 계기가 필요하죠. 저는 그 계기 중 하나가 바로 병원에 가는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병원에 갔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살아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니었다면 진즉 우울증으로 자살하고 없었을 수도 있어요, 저도, 이런 글도.


그러니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강해지십시오. 여러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조금 만 더 용기를 내어 문턱을 넘어보세요. 사랑니가 나면, 병원에 가서 뽑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저는 지금 썩고 있는 사랑니를 열심히 뽑아내는 중인데요, 완전히 뿌리를 뽑을 때까지 계속 병원에 갈 겁니다. 그래서 다음번에 병원을 방문할 때에, 선생님! 요즘 돈을 너무 많이 써서 큰일이에요!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따위의 말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선생님, 큰일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따위를 말할 겁니다. 그때까지 계속 계속 가려고요. 이것이 제가 지금 낼 수 있는 최선의 용기이자, 최선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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