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란 Dec 06. 2022

시간을 견디는 일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네, 라고 생각하며 멍하니 지하철 창문을 바라본다. 새까만 풍경이 재빠르게 창문 뒤로 밀려난다. 정말이지 하나같이 되는 일이 없는 요즈음이다. 회사는 자금난에 처해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니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뚜렷한 성과나 보람이랄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나의 작가생활은 어떠한가. 그것도 영 민둥민둥하다. 3쇄 소식은 귓등으로도 안 들리고 글도 잘 안 써진다. 써도 반응이 없다, ‘좋아요’ 수도 적고 구독자도 더 이상 늘지 않는다. 성과 없는 글쓰기에 지친다. 슬럼프에 빠질 것만 같아. 아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안 풀리는 일. 결혼이 하고 싶은데 그것도 영 뜻대로 안 된다.


이것 참.


그래서 나는 요즈음 낙담되어 있다. 침체돼 있다. 일상생활에서 기쁨을 잃어버렸다. 뭘 해도 즐겁지 않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기대되는 게 없고, 무기력하기만 하다. 나는 뭘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는다. 그럴 땐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냥 침대에 가만 누워 있는다. 눈을 반쯤 뜬 채로 천장만 바라본다. 의미 없이 핸드폰 스크롤을 내리는 일도 이젠 지겹다. 그래 나는 지겹다. 이렇게 사는 게 지겹다, 지겨워 죽겠어.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친애하는 나의 언니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걸어 말을 한다. 나 너무 무기력해. 이렇게 사는 게 지겨워. 아주 지긋지긋해. 나 기대되는 게 하나도 없어. 나한텐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거 같아.


그러자 언니가 침착하게 입을 뗀다. 예란아. 어떻게 인생에 좋고 예쁘고 기대되는 것들만 있겠니. 나는 무기력하게 답한다. 적어도 그런 게 일상 속에 하나쯤은 있어야 하잖아. 우리는 그런 걸로 삶을 버티는 거잖아. 언니가 다시 입을 뗀다. 그런 게 없는 시기도 있단다. 그저 시간을 견디는 시간. 그런 시기도 인생엔 있는 거란다. 그리고 너는 그런 시기에 무너지지 않도록 견디는 연습을 해야 해.


아,

그렇구나.


나는 수긍한다. 수긍했으므로 이만 전화를 끊기로 한다.



그리곤 시간을 견디는 시간, ‘시간을 견디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기쁨도 즐거움도 없이 그저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짊어지고 그것을 견디는 일에 대해. 그래, 언니의 말대로 인생엔 그런 시기가 있지. 그런 시기도 있지. 그저 바닥에 엎드려서 감내해야 하는 시간. 그저 이 시기가 지나갈 때까지 주먹을 꽉 말아 쥐고 버텨야 하는 시간. 그런 것들이 우리 인생 중간 중간에 끼여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그런 시기가 인생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기로 다짐했다. 세상 돌아가는 게 내 마음 같지 않다고 해서 지구에서 탈출할 수는 없으므로 이를 악물기로. 이 시기를 한번 견디어 보기로.


어떤 성과도, 보상도 기대하지 않은 채 이 시기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로 한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회사일이 잘 풀리지 않아 화를 잔뜩 품고 있는 사장님의 눈치를 하루 종일 보다가, 퇴근하면 아무 성과도 없는 글쓰기를 하며, 입맛이 없어 저녁은 건너뛰고 무의미하게 핸드폰 스크롤을 내리다가, 침대에 누워 다시 천장만 가만가만 쳐다보다가. 그렇게 잠이 들 때까지 하나 둘 셋 숫자를 셀 것이다.


그런 하루들을 보낼 것이다. 시간을 견딜 것이다. 아무 기쁨도 즐거움도 보람도 성과도 없는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이를 악물고 버틸 것이다. 이 시기를 감내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이 시기도 언젠간 끝이 날 거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일단은 그 믿음으로 오늘 하루도 시작해보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