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첫 기록.
일을 한 지 어느덧 분기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몇 번의 월급을 받은 후로 이제는 병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남들 앞에서 나를 소개할 때 자연스럽게 명함을 꺼내게 되었고, 내 명함을 받아보는 사람들의 흥미로운 눈빛도 어느덧 익숙해진 것 같다.'동물의료센터요?', '우와, PD요?'라고 물어보면 나는 그냥 홍보팀에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일 뿐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게, 매일 귀여운 아이들을 보는 일상이 참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웃음으로 대답하는 게 버릇이 됐다. 그런 불편한 대답은 면접장에서 끝난 줄 알았는데, 직장에 다니기 전 면접을 보는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싶더라.
사실, 나는 아직까지도 직장인이라는 위치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도시 생활은 여전히 낯설고, 외롭다. 몇 번이나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이 그다지 녹록지 않아서 그냥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살고는 있다. 그립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여전히 나는 어린 사람이구나 하고 자주 느낀다.
나는 경상도에서 27년을 통째로 자랐다. 출생신고도 경상도였고, 살아온 곳도, 대학을 다닌 곳도 모두 경상도였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응당 그랬듯, 나 또한 수도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아왔다. 온갖 문화와 인프라가 집약된 도시, 문화 자체에 대한 기회가 적은 지방 사람들에게는 일방적인 동경인 셈이다. 때문에, 지방에서 자란 나에게 수도권으로의 취업은 불가결한 요소였다. 더군다나, 영상이라는 업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문화가 집약된 수도권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욕심이기도 했지만,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다.
수도권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 모든 게 새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 일을 하는 것, 심지어 먹는 것 까지 모두 제로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신나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처음 몇 주간은 정말 생각보다 신나는 날의 연속이었다. 집을 꾸미고, 밥을 차려먹고, 내 일상을 하나하나 스스로 기록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하나, 해가 지나간 뒤로 알게 모를 적적함만 끊임없이 쌓여가는 기분이다. 취미도 가져보려고 하고, 동호회도 나가보고, 운동도 해보지만 집에 도착하면 밀려오는 쌀쌀함을 견딜 수가 없다. '홀로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는 어느덧 사라지고 말았다. 불 꺼진 방 안에서 나의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게, 생각보다 그리 신나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가까운 지인들과 밤에 통화를 하는 날이면 멈출 수 없는 그리움이 마음을 온통 뒤덮는다. 돌아가고 싶다는 말뿐이지만, 순간만큼은 과거에 머무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밤새도록 전화기를 붙잡고 있곤 한다. 출근길이 고달프겠지만, 어차피 내일도, 모레도, 다음 주도, 다음 달도 나는 근본적인 굶주림을 견디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게 이제는 도무지 어렵게만 느껴진다. 얼굴 표정을 읽고 눈치를 보는 게 이젠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어려운 자리가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이전에는 어딘가에 가면 자리를 잡으면 홀로 일어나서 우당탕 떠드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괜히 낯선 경계심이 느껴진다. 묘하게 닮아있는 내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는 꼴이라니.
얼마 전에는 병원을 다녀왔다. 아침 지하철을 탈 때마다 등 뒤에서 누가 나를 칼로 찌를 것만 같아서 그게 너무 두려웠다. 약속 때문에 나선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선 숨이 쉬어지질 않더라. 비유가 아니라 진심으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사람이 많은 공간만 가면 불안감이 물밀듯이 몰려와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결국 병원행을 택했다. 외로움과 공허함이 결국 나를 잡아먹고 말았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네가 이겼어' 하고 항복을 고했다. 고향에 있을 때 이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전히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무기력감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한동안은 꽤 우울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동안은 정말 심했던 것 같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잘하지 못하는 이야기, 직장인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단순히 '일 하기 싫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 이 근원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살고 있다. 앞서 말했듯, 나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직장인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더 넓은 범위를 의미하는 것 같다. 저녁을 홀로 차려먹을 줄 알아야 하고, 달마다 전기세와 가스비를 지불해야 하며, 보험금 이력 같은 걸 가계부에 작성하며 돈을 관리하고, 아침 알람에 눈을 뜨고선 욕지거리를 뱉고, 의미 없는 주말 계획을 짜며, 병원에 다녀오고 약을 챙겨 먹는 게 자연스러워지는 모든 삶.
돌아가고 싶다고 약한 소리를 종종 하는 듯하다. 시간이든, 공간이든 뭐가 되었든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내가 살던 곳으로 되돌려 달라고. 말이다. 최근에는 글도 쓰지 않았으니 부끄러운 마음이다. 역시 아무래도 뭔가 의지를 잃어버린 탓이겠지 싶더라.
연초에 그리운 사람들이 참 많았어서, 이래저래 연락해보려고 꽤 노력했지만 결국 직전에 모두 멈추고 말았다.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이나, 분노나, 실망이나 여러 감정들이 수많은 사람에게 교차해서 지나갔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것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런저런 감정의 핑계를 대서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지금 결국 포기한 이 선택이 나를 후회하게 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의미 없이 두려워진다. 갈수록 마음이 멀어지면 차라리 다행일 텐데, 멀어지지도 않고 오히려 사람 없이는 못 살게 되어가고 있으니, 이 갈구가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불행하다.
2021년에는 좀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두 달 정도 갔나? 벌써 실패했다. 역시 엉망이었다. 그래도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하고 무언갈 끊임없이 하려고 살아가야겠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아침은 오니까. 때가 되면 나도 아침이 괜찮은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