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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Feb 03. 2021

보호자들의 통장에 가호를.

6.

존경을, 그리고 통장에 가호를.


병원을 한 번 찾아온 아이는 비슷한 이유로 다시 병원에 오게 되어있는 것 같다. 슬프지만, 내가 본 환자들은 그랬다. 이물을 삼킨 고양이가 입원했던 적이 있다. 사실 이물을 먹는다는 것 자체는 그렇게 중한 병은 아니다. 이물은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배변으로 나오게 되어있고, 설령 배변으로 나오지 않는 소재라 해도 간단한 수술 과정을 거치면 금방 회복 가능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물을 삼킨다는 건 한 번으로 끝나는 병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번 이물을 삼켜 입원을 한 아이는 두 번째, 세 번째 찾아올 때도 비슷한 이물을 삼켜 입원을 하게 된다. 때문에 내가 생각하기에 어떤 병이든 동물병원에서 한 번은 없다. 설령 건강검진이 되었든, 한 번 찾아오게 된 이후로는 꾸준히 찾아오게 되는 곳이다.


'이물을 삼킨 고양이는 배변으로 배출하면 그만이잖아요? 장기에 남는다는 건가요?' 이물을 삼킨다는 건 이런 질문처럼 쉽게 끝나는 행동이 아니다. 한 번 이물을 삼키고 입원과 퇴원을 거친 아이가 집에 돌아간다고 해서 '아! 그건 먹으면 안 되는구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물을 삼켰다는 건, 집안의 환경이 그만큼 조금 어지럽다거나 아니면 이물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어느 정도는 조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한 번 이물을 삼키는 아이는 대게 비슷한 이유로 다시 이물을 삼키게 될 것이다. 그건 호기심이 될 수도 있고, 외로움이 될 수도 있으며, 관심을 끌기 위한 하나의 표현일 수도 있다. 찝찝하지만 적어도 내가 공부한 바로는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보호자들이 무심하거나, 못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럴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병원에서 그런 아이를 환자로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삶을 위해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산다. 그게 직장이 될 수도 있고, 자녀가 될 수도 있으며, 개인적인 성향의 차이일수도 있다. 저마다의 사랑의 크기 또한 내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크지만 그들의 사정 또한 내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할 것이다. 때문에, 비슷한 이유로 여러 번 병원을 찾는 아이들을 보면 애정을 얼마나 받는 아이인지를 느낌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낀다. 사랑하는 만큼 해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 앞에서 얼마나 마음 졸일까.


동물과 함께 병원에 온다는 건 생각보다 큰일이다. 보호자의 죄책감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면서 동시에 비용과 윤리적 잣대에서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동물병원이라는 공간은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하던 우리 아이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내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많은 보호자들이 막상 오기에 굉장히 꺼려하는 듯하다. 또한, 앞서 말했듯 한 번 오게 되면 꽤 짧은 주기로 다시 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많은 보호자들이 이런 경계선에서 많이 고민하는 듯하다. 누군가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명 아닌가요!' 같은 소리를 하겠지만 막상 내 일로 눈 앞에 닥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 보호자들의 마음이 먼저 이해가 가는 편이다.




우연히 병원의 매출표를 잠깐 보게 된 적이 있다. 공유 폴더에 있는 여러 문서들을 확인하다 우연하게 보게 되었는데 진심으로 굉장히 놀랬다. 하루에만 내 한 달치 월급이 매출로 찍히는 걸 보고 나서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하루에 많은 환자들이 다녀가고 입원한다지만 그 비용을 모아봤을 때 이 정도일 거라곤 생각 못했던 탓이다. 모든 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역시 전문인력과 전문기술의 자본력은 다르다 이건가 싶었다. 예시로, 동물병원에서 MRI를 찍으면 대략 80~1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촬영 비용 외에도 마취 비용, 약값, 조영제 등 다양한 요소들이 이 어마어마한 가격에 포함되는데 나로서는 하루에 지출하리라곤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금액이다. 다행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가격을 실제로 받아보지 않았지만 병원을 찾는 많은 보호자들이 수납할 때 벌벌 떠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신기한 건, 내가 본 보호자들 그 누구도 비용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적게는 몇만 원밖에 되지 않지만 많게는 몇 백만 원이 나오는 금액을 선뜻 일시불로 수납하고 가는 걸 보면 뭐랄까, 당황스러우면서도 존경스럽다. 집에 돌아가서는 찢어진 통장을 보며 오열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병원에서만큼은 통장보다 '내 새끼'의 건강과 삶에 더욱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내 눈에는 '생명보다 소중한 건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사회단체보다  훨씬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병원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비싸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대중적인 인식을 뛰어넘어, 뉴스에서까지 간혹 수의사들까지 돈벌레 취급하곤 한다. 병원마다 저마다 제각각의 비용을 받고 있다며 마치 동물병원 전체를 싸잡아 기준점도 없이 돈 뜯어내는 공간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관련된 일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미국의 경우에만 해도 진료가 아닌 예약만 하는 데에도 몇십만 달러가 든다. 이후에 진료에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면 적금을 깨부수고도 모자라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얹어 해결해야 할 수도 있다. 애견인들의 천국인 영국, 프랑스 같은 유럽 상황도 별 반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심적으로 가까이 닿아있는 중국과 일본도 한국보다는 비싼 편이다. 못 믿겠다면 진짜 검색해봐도 좋다. 대부분의 국가가 동물치료에 관한 비용에는 대부분 얄짤없는데, 국가에서 지원하는 의료보험이 동물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동물병원 진료비가 비싸다고 느끼는 건 사람이 받는 의료보험 혜택이 그만큼 크다는 걸 반증하는 셈이기도 하다.


물론 과잉진료나 부실 진료 같이 동물을 생명보다 돈으로 우선시해서 판단하는 일부 비양심적인 동물병원에 대해서는 똑같이 분노하는 편이다. 스스로의 가치와 인식을 더욱 저급하게 만들면서까지 돈이 그렇게 좋을까 싶기도 하다. 동물병원의 환자들에게는 일정 순서가 있다. 급한 아이는 먼저 응급처치대에서 치료를 받게 되어있고, 수술 일정은 스케줄에 따라 관리된다. 돈이 많다고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고 해서 1순위로 수술을 받는 건 분명 아니라는 말이다. 환자라는 틀 안에서 모든 생명이 동등하듯, 동물들의 생명 또한 다르지 않다.




어떤 기사에서 비싼 병원비가 유기견을 늘린다는 글을 본 적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글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지만 사실 까놓고 보면 조금 우스운 말이다. 비싼 병원비가 유기견을 늘린다고?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심지어, 글을 읽어보면 명세서를 확인하고 난 뒤에 정당한 금액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하는데... 수의사가 멱살이라도 잡고 '이 돈을 어디 썼는지 하나도 알려줄 수 없으니 잔 생각 말고 돌아가세요!'라고 한 것도 아닌데 정당한 금액인지 알 수 없었다니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 그렇게 비용 관련해서 진심으로 고민한 사람이라면 첫 번째로, 동물을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반려동물을 입양했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두 번째로, 동물병원은 정말 많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있었듯이 말이다. 적어도 여러 동물병원을 돌면서 검사를 받아보며 비용에 대한 설명을 받아봐도 괜찮았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는다는 건 글쎄.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이 말이 가진 효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병원비가 비싸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보험적용도 되지 않고, 어디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달리 검사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싸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유기견을 볼모로 병원비를 꼬집고 싶다면 답은 간단하다. 키우지 않으면 된다. 키우지 않는다면 비싼 병원비를 낼 일도 없을 것이다. 그 정도의 책임감도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반려동물을 입양해서는 병원비가 비싸다고 징얼거릴 거라면 지금 키우고 있는 동물도 다른 좋은 가정에 입양시키길 권유한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건 내 손으로 직접 책임감을 껴안겠다는 말이 된다. 생명을 돌본다는 행위를 우습게 봤다면, 인간성의 기만이자 결핍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일과도 같다. 비싸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다. '좀 많이 나왔네, 생각보다 비싸네' 정도의 투정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기를 바란다. 비싸다는 핑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적어도 입양하기 전에 한 번만 더 고민했다면 애초에 징얼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는데 이런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고민을 하면 할수록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 밥 한 끼 차려먹는 돈도 아까워 마트에서 세일 시간을 기다리는 나로서는 아마 고민의 여지조차 우스운 일이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아픈 반려동물을 업고 와야 하는 모든 보호자들을 존경한다. 동물병원에 스스럼없이 발을 들이밀고 들어와 아픈 우리 아이의 진찰을 요구하는 모든 보호자들의 통장에 가호를, 재물복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원문에 게시되는 글은 모두 의학적 소견이 아닌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자세한 증상이나 문의는 가까운 동물병원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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