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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Feb 25. 2021

" 내 글을 사랑해주던 "

한솔아, 나는 네 글이 참 좋아.

말이 떠올라서.


" 한솔아, 나는 네 글이 참 좋아. "


고요한 자취방, 글을 쓰다가 문득 당신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부드러운 음정과 귀에 익은 음색, 이전에 당신이 자주 해주던 것과 똑같은 말이 들렸다.  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도 지나친 이질감에 자취방에서 여러 번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조명과 정리되지 않은 침구만 눈에 띄고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밀려드는 그리움에 넋이 나가고 말았다. 당신을 동반하는 그리움을 멈출 수가 없어, 온갖 것들을 떠올렸다. 짧은 대사 한 문장이 나의 밤을 가득 채우고도 한참을 남았다. 잠들기 어려운 밤이었다.


종종 내 글을 당신에게 보여주곤 했었다. 단문이든, 장문이든 가리지 않고 자랑하듯이 당신에게 보여주고 나면 당신은 응당 당연하다는 듯 늘 이런저런 말을 남겨주곤 했었다. 때론, 칭찬을 하기도 했고, 깊은 답과 함께 위로를 해주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했고, 그런 나를 보면서 당신도 늘 좋아해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글을 사랑해주던 참 따뜻한 당신이었는데. 보잘것없는 나의 삶을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말해주는 게 오직 당신이었을 텐데. 그 시간은 어디로 가서 어디에서 소멸한 걸까.


최근에는 도통 글을 쓰지 못했다. 병원을 다시 다니고,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그저 살기 위함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나를 못 이겨 슬픔에 빠지는 걸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래서 무언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일과를 마치고,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밀려오는 피로와 맞서 싸우기 바쁘다. 조용히 불을 꺼두고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이전만큼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이나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이전의 나는 무엇으로 글감을 찾았었지, 이제는 애써야만 떠오르는 것 같다.


일을 하면서 글을 쓰려니 자주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처음에는 그저 나의 삶을 기록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었는데, 욕심이 욕심에 꼬리를 물다 보니까 어느덧 사람들에 눈에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차오르더라. 순수한 마음이 변질되어 가는 게 애달프다가도, 글이 탄생하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합리화를 한다. 내 글의 탄생은 감정이 태어나는 순간에서 오는 원초적인 생명력에 우선인가, 아니면 나를 덧대어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 먼저인가.


당신이 종종 그림을 그리던 때가 떠오른다. 시간에 맞춰 나에게 이것저것 보여주며 이런저런 말들을 덧붙이던 당신의 순간들. 그 순간들이 모여 결과물이 되었을 때, 가끔 나는 이게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리기도 했었다. 그래서 어쩌면, '이게 나야?' 같은 유치한 물음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글의 소재가 당신을 향했듯, 당신 그림 속의 일부이길 바랬으니까.


네 글을 사랑해주던 당신, 그래서일까 시간이 많이 지나도 단순히 외로움의 감정보다 그리움의 감정이 먼저 떠오르는 오직 당신뿐이다. 몇 번의 시간 뒤로도 당신의 어딘가 익숙한 모습으로 나를 늘 찾아왔으니까. 때문에, 때론 부끄러운 용기를 내고 싶지만 낼 수 없을 것만 같다. 내 한 자의 존재를 사랑했듯, 나의 존재 자체를 사랑했던 당신이니까. '한솔아, 나는 네 글이 참 좋아'라는 말 한마디로 우리 관계를 정의할 수도 있었으니까. 


글을 쓰는 사람이란 건, 때론 그 존재 만으로도 큰 고통에 가깝다. 글이라는 건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을 다루기 위한 일종의 소재에 가까우니까. 누군가는 미련하다 여기고, 어리석다 하겠지만 ... 어쩔 수 없다, 그것만이 나에게는 감정의 탈출구니까 말이다. 입안에서 우물거리고 말 것들을 적어내는 일. 시간이 지나 때마다 다른 감정이지만, 결국 글이 향하는 목적성은 비슷하니까.


어쩌면 돌아가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가 맹목적인 당신만은 아니다. 나는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고, 그 그리움을 못 이겨 글을 쓰던 때를 바라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혹은 그냥 추억 속에 포장된 향수를 그저 고요히 즐기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마냥 행복했던 건 아닐 텐데. 그 순간도 나에게는 버거운 삶이자 무거운 의무였을텐데 말이다. 이렇게 말은 해도, 결국 당신이 어딘가에 걸쳐져 있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신 없이 그 시절을 떠올린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때에 나는 이런 글을 썼다. '나는 당신의 마음속을 들락날락하는 손님이 되었다가, 다시 돌아갈 거처조차 없는 방랑자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도 몰랐으면서 그토록 깊은 여행은 왜 시작했는지, 이제는 저 멀리 허공을 떠도는 비행사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시간이 지나고 읽어보니 무슨 소리인가 싶다가도, 내 마음에 꼭 들어맞는 말인 것 같아서 괜한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쓴 글, 시간이 지났을 때 보니까 이토록 느낌이 다를 수가 있을까. 우스운 점이 분명하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건 무슨 이유일까. 재촉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단지 회상에서 오는 가벼운 착각이었을까. 영문을 모르겠지만, 목적 없이 오직 누군가를 위해서 글을 썼다는 그 사실만큼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보고 싶다는, 그립다는 막연한 감정과 함께 나의 어두운 공간을 한없이 두드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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