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1

이 편지를 읽는 당신에게

by 김민주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김민주입니다. 그동안 저의 속마음을 나눈 편지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환 일기를 주고받은 몇 개월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읽었을지, 어떤 마음들이 움직였을지, 저의 편지를 읽은 하루는 어떤 하루였을지 너무나 궁금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 그래서 다른 사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모지리. 그런 저를 어찌 사랑하겠나요? 언제나 실수투성이에 덜렁거리고, 뚝딱거리죠. 그런 바보를 어떻게 사랑하란 말인가요?

그럼에도 저는 저를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모자라고 부족한 바보를 누가 사랑하겠나요? 제가 아니면 누가 사랑할까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바랄 수 있을까요? 사랑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면서, 사랑받지 못할 것에 상처받으면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은 참 힘이 듭니다. 모자란 것들을 자꾸 들춰보고 어쩌면 내가 한평생 가지지 못할 그것들이 야속하여 울기만 하는 날들은 저를 계속 모자란 것 안에 가둬 놓곤 했습니다. 그 안에서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원망하고, 이런 하루가 또 생겨날 것을 두려워하게 되어요. 어느 날에는 방바닥을 이리저리 뒹굴면서 울고, 어느 날에는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찧고, 어느 날에는 가만히 앉아서 아무도 모르게 마음을 찢고 있지요.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몰라야 했죠. 이런 나를 알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할 거야. 이렇게 미친 사람을 누가 안아줄까. 허구한 날 죽을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알면 사람들은 실망할 거야. 사람들은 웃는 나를 좋아해. 사람들은 착한 나를 좋아해. 사람들은 밝은 나를 좋아하고 있어. 이렇게 침울한 나는 사랑받을 수 없어.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물론 정말 그래요. 우울은 정말 물에 검은 물감을 푼 것처럼 많은 걸 가려버리고, 옮아가곤 해요. 하지만 물에 물감을 풀었다면, 물을 갈아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게 나 스스로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겠지만, 저는 그게 어려워서 다른 사람의 옷자락을 잡아끌었어요. 바닥에 엎드려서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면서 도와줘, 물 좀 갈아줘. 처음엔 그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했어요. 나 대신 물을 갈아주는 수고를 해준 그이를 위해서 애써야 했어요. 정말이지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었죠. 그런 생각을 하면, 언제까지고 그 사람이 물을 갈아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검은 물로도 내 색깔을 내는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비록 조금 탁하더라도, 비록 조금 어둡더라도, 그것들이 조금 불편하게 보이거나 그것들이 조금 슬프게 보이더라도. 검은 물에 빨강을 섞고, 노랑, 파랑, 같은 것들을 섞어서 조금은 탁한 무지개를 그려봐요. 생각보다 덜 예쁘더라도 나는 무지개를 그려요. 붓에 물이 묻어나고, 그림을 그릴수록 물은 줄어 들 거예요. 거기에 새로운 물을 부어요. 여전히 검은 물에 물을 탄 것일 뿐이지만 처음보다는 조금 맑아질 거예요. 물을 갈아주지 않아도, 무지개를 그릴 수 있어요. 당신도요.


없어지지 않는 어떤 것들을 없애려고 마음먹지 말아요. 그걸 없애지 못하는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아요. 괜찮아요. 맑은 하늘도, 뿌연 하늘도, 컴컴한 하늘도, 모두 하늘이듯이 맑은 당신도, 뿌연 당신도, 컴컴한 당신도 모두 당신이니까. 뿌연 날에도 맑은 당신을 사랑하세요. 컴컴한 날의 뿌연 당신을 사랑하세요. 맑은 날에 컴컴하기만 한 당신을 사랑하세요. 그리고 사랑이 필요할 때 나를 떠올려 주세요. 제가 그리는 무지개를 떠올려요. 저렇게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구나. 저런 무지개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구나. 제가 보내는 사랑을 받아주세요. 당신의 무지개를 향한 제 사랑을요. 그래서 내 무지개도 괜찮구나, 내 무지개도 나쁘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해줘요.


두서없이 적곤 했던 편지들을 읽어주어서 고마워요. 제 마음이 전해졌을지 모르겠지만요. 슬슬 봄이 올 것 같아요. 꽃이 피면 꽃을 한 번 마음속에 그려 보세요. 조금 탁하고 예쁘지 않아도, 그다음 봄을 기다리면서 보듬어 주세요. 그다음 해의 봄에는 좀 더 마음에 드는 꽃이 필지 누가 알겠어요. 그리고 꽃을 그리면 자랑해 주세요. 주소를 하나 남겨둘게요. 물을 갈기 힘들 때 제 옷자락을 잡아끌어요. 어두컴컴한 꽃 하나를 자랑하세요. 무슨 꽃이든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요.


<김미닐에게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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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모쪼록 행복한 날에도 불행한 날에도 편안하게 잠들길 바랄게요. 안녕.


2024. 3. 12. (화)

민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