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에게 10

사랑

by 김민주

민주에게


민주, 안녕. 어느새 2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어. 2월을 돌아보면서 그동안 썼던 일기들을 주욱 읽어봤어. 이런 일들이 있었지, 저런 일들이 있었지, 이런 생각을 했고, 저런 생각을 했었지. 이번 2월은 나에게 어떻게 남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 그러다가 별안간 나는 세상에 어떻게 남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해 봐. 나는 세상에 어떤 모양으로 남고 싶을까.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면, 곧잘 슬프곤 했던 것 같아. 사라질 나와 사라질 나를 기억하는 일. 사라진다는 게 참 마음 아프곤 했어. 내가 어떻게 남을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어. 어쩌면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요즘의 나는 우리가 어떻게 남을지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곤 해.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모양으로 남을 것인지 고민해야 했고, 그 어떤 모양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지.


얼마 전에 '민주는 사랑을 나눠 주잖아. 나눠주기만 하면 언젠가 힘들어질 때가 있을 텐데. 그게 무섭진 않아?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잖아.' 같은 질문을 들었어. 나는 그래. 내가 되고 싶은 모양이 사랑이라는 걸 알았어. 그럼 사랑이 무얼까. 내 마음에 있는 것들, 나는 내 마음에 사랑이 많다는 걸 알고 있어. 나는 그걸 사람들에게 계속 나눠주는 사람이고 싶어. 나는 언제나 내가 피운 꽃과, 거기서 뿌려진 씨앗들이 다시 다른 곳에 가서 꽃을 피우고, 온 세상에 꽃이 가득 피는 것을 상상하곤 해. 내가 전하는 사랑이 어떤 사람의 사랑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고, 그 사람들에게서 다시 사랑이 떠올라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상상해. 정말 이상하고도 너무나 이상적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상을 따라가는 사람이야. 혹여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이상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그런 사람이 되고 싶거든.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이상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자꾸 마음을 전하고 싶어. 따듯하게 웃고, 다정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사랑이 돌아오지 않아도 돼요. 내가 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좋아요. 그 사랑이 또 다른 사람들한테,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한테 퍼져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꿈꾸는 세상의 모양은 그런 모양인가 봐. 그래서 나는 그 세상을 위해서 내 모양이 사랑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이를테면 태초에 이런 세상을 위해 소소히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있었다,라고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러기 위해서 나는 좀 더 따듯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좀 더 편안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좀 더 다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내가 죽은 다음에도 내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좋겠어. 그래서 힘든 삶의 어떤 순간에서 조그만 사랑을 하나 꺼내서 이런 사랑이 내게 있었어,라면서 힘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도 참 좋은 것 같아.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눠 줄 수 있잖아. 내가 마음껏 사랑할 수 있어서 좋아. 마음껏 예뻐하고 마음껏 마음 주고, 마음껏 소중히 여겨도 되어서 좋아. 그림을 그리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내가 좋아하는 재밌는 일들이 많지만, 거기에서 충족할 수 없는 것들을 일하면서 얻고 있어. 마음이 마음껏 흐르는 일. 나한테 정말 제격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민주가 힘이 들 때 언제든지 마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어. 내가 사랑을 주다 지쳤을 때 충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원하지 않아. 누군에게서 충전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 충전소를 내 마음 안에 두고 있는 것 같아.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나. 그리고 그 사랑이 내게로도 향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언제든지 조건 없이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내가 있어. 언젠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을 만들려 하고 싶진 않아. 사람에게 기대려는 순간 자체가 사랑을 나눠주는 나를 힘들게 하진 않으려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 기대하는 게 생기면 실망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부터 사랑을 주는 일이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내가 너무 미련한 걸까?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겠어?


나는 이제 어떤 사랑을 나누어주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면, 사랑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해. 아이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랑을 나누어 줄까. 앞으로 계속 우리는 이걸 고민하게 될 거야. 어떤 사랑을 나눠줄 것이며, 그런 사랑을 나눠주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지. 항상 있는 사랑, 두려움을 주지 않는 사랑, 따듯하고 다정한 사랑, 편안한 사랑, 한결같은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을 받는 이들을 위해서 나는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될 거야. 그래서 언제 어디서 내 사랑을 받아가도 그이들이 나를 걱정하지 않게. 그래서 언제 어디서 내 사랑을 받아가도 그이들이 단단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그래서 언제 어디서 내 사랑을 받아가도 편안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너도 좋고, 나도 좋게. 사랑을 위해서 단단해지는 나와 단단해진 나로부터 단단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


때로, 지치면 내게 기대. 사랑을 향해 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껴질 때면, 마음껏 내 사랑을 느껴. 어느 순간에도 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있어. 우리, 이렇게 단단해지자. 이렇게 사랑을 하자. 이렇게 반짝거리자. 이렇게. 이렇게.


사랑해, 민주. 오늘도.


2024. 2. 27.(화)

민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