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찢기> 3
하루를 보내는 일이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것인지 알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간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 가기만을 기다리면 그때만큼 지겹고 끔찍한 시간도 없을 것이다. 매상 활기차고 즐겁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아쉬운 때만 있으면 사는 것이 참 좋게만 느껴질 테지만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사람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어느 때엔 눈을 뜰 때부터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건 유난히 지루하고 심심한 주말의 오후와는 다른 것이다. 주말이라고 신이 나 일찌감치 눈을 떴는데 생각보다 즐겁지 않아, 아니면 평소와는 조금 다른 주말 오후를 보내고 싶단 기대 같은 것 때문에 실망하게 되는 것과는 아무래도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난밤 잠들기 전부터 오늘 같은 하루가 또 돌아오는 것에 질려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게 어느 정도로 사람을 괴롭고 막막하게 만드는지, 가만히만 있어도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이 무서울 지경이다. 이대로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아침이 돌아올 것이고 오늘처럼 괴로운 하루가 다시 시작될 테니까. 시간이 그냥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내일이 오는 게 두려운 딱 지금, 그 두려움에 미처 잠들지 못하고 있는 딱 오전 1시-2시쯤, 어떻게든 하루를 다 보내긴 했다 싶은 이때가 시간이 멈췄을 때 가장 만족감이 클 것이다. 지나간 하루와 오지 않을 내일에게 그저 안도감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세상이 그렇게 생겼다. 끔찍하게 만들어진 세상은 아님에도, 누군가에겐 세상의 생김새가 끔찍하게만 느끼게 되는 모양새. 나에게 너무 벅차고 힘들었던 하루가 내일 또 돌아온다. 오늘과 내일은 분명히 다른 날인데도, 어제와 오늘이 나아진 것 없이 벅차고 힘들었단 사실이 내일을 밀어내게 된다. 그저 너무 자연스러운 세상의 사실이, 규칙이, 이치가 나를 괴롭게 만든다면.
잘못 만들어진 것은 아무래도 내가 아니겠느냐고.
숙제로 그렸던 원형의 시간계획표를 떠올려보니, 나는 이런 하루를 살고 있었다. 스케치북에 큼직하게 동그라미를 그리곤, 일정한 간격으로 동그랗게 이어진 선 위에 점을 찍으며 24칸을 만든다.
02:00-08:00 악몽을 꾸며 가위에 눌린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그 괴로운 악몽이 그저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짓눌려 남은 괴로움은 꿈이 아니라는 것에 좌절한다.
08:00-15:00 나의 괴로움이나 나의 좌절이나 나의 마음은 언제나 현실과 다르게 흘러간다. 사는 것은 꿈과 달라서 나는 삶 안에서 해내야 하는 과업을 마주치게 된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나의 마음을 달랠 시간을 이 시간계획표에 설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 같은 것은 꼭 꿈에서나 보살핌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여겨야 했다. 나는 차분하게 지나가는 하루 안에서 몹시 침착하지 못한 마음을 더 절절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15:00-18:00 그런 와중에 나에겐 보살펴야 하는, 보살피고 싶은 이들이 있었다. 그 역시 나의 의무와 책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는 것은 한편으로 나에게 있어 '세상에 보살핌이 있다'는 희미한 믿음을 심어주는 일이었기 때문에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꿈에나 있다는, 환상과도 같은 일을 내가 착실하게 해내기엔 언제나 실체가 없었으니 그런 믿음이 나에게 희망적이진 않았다.
18:00-21:00 아직도 남은 하루. 나는 지난밤부터 하루 종일 쌓여온 악몽의 잔재를 아직도 치우지 못했다. 가방에, 아니면 주머니 속에 대충 구겨 넣어놨던 영수증 같은 것들. 나는 며칠 전에도, 엊그제, 그리고 어젯밤에도 악몽을 꾸었고 그 모든 잔재가 주머니 가득 차있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며칠 전, 엊그제, 어제도 그것을 치워주는 누군가가 있었거나 치우는 방법을 내가 알고 있거나 치울 시간이 있지 않았다. 늘 그랬으니까. 늘 그랬어서 미처 계획표에도 '치우는 시간'을 넣지 못한 것이다.
21:00-02:00 밤사이에는 다들 잠을 자는데. 나는 다시 악몽을 꾸게 될까 봐, 오늘 미처 내다 버리지 못한 잔재가 뒤늦게 떠올라서, 내일이라고 내가 달라질 것이란 확신을 하지 못하여, 한참 동안 잠들지 못한다. 가족들의 코골이 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동안, 나는 내 계획표를 이렇게밖에 만들지 못하는 내가 싫고 창피스러워서 코를 훌쩍거리면서 운다.
나는 이게 얼마나 나를 살기 힘들게 만드는지 알고 있었다. 어떤 틈에 어떤 시간을 추가하고, 어떤 시간을 줄이고, 어떤 시간을 늘려야 하는지 알고 있다.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꾸 새로 동그라미를 그리는데, 그런데도 나는 자꾸 똑같은 동그라미를 그린다. 처음 컴퍼스를 사용해 보던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 우리 엄마가 왼손으로 컴퍼스를 잡고 오른손으로 나사를 돌돌 돌려 푼 다음 연필을 넣어 보여줬다. 바늘 끝과 연필 끝의 길이를 맞출 때에 우리 엄마는 손톱 위에 톡 하고 올려보면서 길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싶은 동그라미의 지름을 먼저 자로 맞추고 그 절반을 바늘과 연필 사이의 거리로 삼았다. 오른손으로 컴퍼스 손잡이를 잡고 거침없이 빠르게 손가락을 굴리면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과정을 꼭 복사하듯 배워서 손톱 위에서 바늘과 연필의 끝을 맞추고, 지름을 먼저 잰 다음 절반만큼 벌려, 컴퍼스를 굴릴 때에는 거침없이 빠르게 돌렸다. 동그라미야 매한가지로 동그랗고 동그랄 뿐이니, '동그라미를 그린다'는 건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동그라미를 그리는지. 나는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그릴 거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만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게 똑같은 동그라미가 되었다. 동그라미는 언제나 이렇게 곧잘 그리니까 마치 어떠한 문제도 없는 것만 같다. 동그라미를 잘 그리는 것은 자신 있었다. 나는 엄마가 알려준 대로 간격을 맞춰 24칸을 그리는 것도 잘 따라 했고, 내 삶을 그 안에 넣는 것도 잘했다. 알려준 대로. 언제나 동그랗기만 한 동그라미. 모양자로 그려도, 컴퍼스를 돌려도 동그랗기만 한 동그라미. 동그라미를 동그랗게 잘 그렸으니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바늘과 연필 길이를 맞출 때에 눈대중으로 맞추는 이, 책상 위나 종이 위에 대보는 이, 맞출 생각도 없는 이를 보게 된다. 그들 모두 역시 동그라미는 동그랗게 잘만 그렸다. "컴퍼스를 사용해 지름 8cm의 동그라미를 그려보세요."(1점) 모두 그걸 그리는 모습이 달랐고, 걸린 시간이 달랐지만, 모두 지름 8cm의 동그라미를 예쁘게 잘 그려냈다. 그러니 모두 1점을 얻었다. 그런데 나는 문득 그들이 나와 다른 모습과 나와 다른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인간이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나는 모든 인간 중 엄마를 빼다 박았다는 것을,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알게 된다.
참 희한하다. 모두 같은 도구를 사용했고, 모두 지름 8cm의 동그라미를 잘 그려서, 모두 1점 얻기에 성공했다. 이제는 컴퍼스를 이런 모양으로, 저런 모양으로, 어떤 과정으로 하든 동그라미를 그리라면 무심코 잘 그릴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손톱 위에서 길이를 맞춘다. 그 모든 걸 알고 있는데도 나는 자꾸 똑같은 계획표를 그리는 것. 컴퍼스를 잡는 모양새, 24칸의 간격을 맞추는 방법, 그 안에 내 삶을 나눠 넣는 방식, 나에게 필요한 시간을 구태여 넣지 않고, 나를 괴롭게 하는 시간을 꾸역꾸역 채워 넣는 그 모든 관성.
늦은 밤 이런저런 걱정에 잠에 들지 못하고, 식탁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맥주캔을 여는 엄마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새벽이 될 참인 1시, 2시쯤 되어선 괜히 마음이 참잠해지고 생각이 깊어져 잠이 잘 안 왔고, 책상 앞에 덩그러니 앉아서 맥주캔을 하나 열었다. 문득 어린 시절 그렸던 계획표가 떠올라서, 온 서랍을 뒤져 낡은 컴퍼스를 하나 찾았다. 한 손으로 가려질 정도의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본다. 술기운이 오르니 눈앞이 자꾸 빙빙 돌아서 동그라미가 두 개, 세 개씩 겹쳐 보이는데. 이건 엄마의 동그라미일까. 나의 동그라미일까. 내가 그리면 다 내 동그라미인 것일까. 엄마의 동그라미를 내가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 아닌가. 이제 내 동그라미인가. 술기운에 동그라미가 흔들린다. 이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