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찢기> 2
동그라미를 찢어보겠다며 야심차게 연재를 시작했지만, 프롤로그와 1화까지 고작 두 개의 글을 쓰고 벌써 말문이 막혔다. 동그라미 찢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이렇게 고심을 하나 싶은데, 왠지 엄마를 찢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방치해두고 싶지는 않아 이 글을 다시 써보려고 앉았다. 잘 쓸 수 있을진 모르겠다.
엄마, 나 그때 정말 죽고 싶단 생각에 빠져 있었어. 그리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지. 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어. 없더라고. 엄마는 그때 날 도와줬어야 했어. 엄마, 나는 지금도 그 누구도 날 도와줄 수 없다는 걸 알아.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지. 그런 사람이 되었지.
도무지 글을 시작하지 못하겠어서, 엄마에게 제일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써봤다. 나는 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죽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내가 저지른 소소한 잘못들을 곱씹으면서 울었고, 그럴 때면 언제나 텅 비어있는 장례식장의 모습을 상상했다. 누가 오겠나, 이렇게 못된 아이의 죽음을 누가 슬퍼한다고. 그런 생각에 빠져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소소한 잘못으로부터 어떻게 그렇게 비약적으로 장례식장을 상상하는 것까지 갔을까.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나는 한창 실의에 빠져있었다. 무엇 때문이냐, 하면 나도 모르겠다. 막연하게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싱숭생숭했던 것 아니었을까 짐작해볼 뿐이다. 매일밤 내가 죽은 뒤의 세상을 상상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세상. 비어있는 장례식장. 아무것도 모르고 죽는 나. 그런 생각에 빠져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집에 돌아가면 나는 혼자 계단참에 앉아 울었다. 옥상문은 잠겨 있었고,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노을이 막 지려고 할 무렵 정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엉엉 울지도 못하고 찔끔찔끔 울었다. 집에 가면 부모님이 안 계시는 틈을 타 부모님 행세를 해야 했다. '민주야. 만약에 엄마, 아빠가 없어지면 너가 동생들을 잘 챙겨야 돼. 네가 부모야.' 엄마, 아버지가 없어진다니, 너무 끔찍한 세상에 남을 동생들을 위해서 나는 부모가 되어야 했다. 그러니 울 곳이 없어서 계단참이나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찌그럭찌그럭 울 수밖에 없었다. 울면 왜 우느냐 혼나고, 뭘 잘했다고 우느냐 혼나고, 그래서 숨어 울면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다. 울면서 집에 가선 컴퓨터 한 대로 싸우고 있는 동생들을 말린 다음, 챙겨서 학원에 보내고, 나도 학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어느덧 퇴근을 하고 돌아온 엄마, 아빠가 있었다. 저녁을 먹을 때엔 막내가, 혹은 내가, 혹은 여동생이, 아니면 엄마, 아빠가 하루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어 반찬 삼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집은 화목했다. 동생들은 귀여웠고, 엄마는 고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맛있는 저녁식사를 준비했고, 아빠는 틈틈이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훔쳐냈다. 우리집은 화목했다. 나는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이고, 내일이 오는 게 싫어서 잠을 참다가 기절하듯 잠들었다. 나는 동생들이 좋았고, 엄마의 김치찌개가 맛있었고, 아빠가 반듯하게 펴준 이불을 덮었다. 모든 것이 다 좋은데, 나는 자꾸 내가 없는 곳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 싫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깨버릴거야. 나는 나쁜 아이가 된다.
우리집은 화목해선 안됐다. 아버지의 사업은 형편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어머니는 귀여운 아기들을 내게 맡겨놓고 일찌감치 직장인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엄마의 사회생활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쉽사리 화를 냈다. 엄마는 아버지의 벌이가 시원찮아 불만이다. 말다툼을 하던 중 뭣도 모르고 불쑥 끼어든 나의 해맑은 한마디가 거슬렸는지 아버지는 손에 잡히는대로 잡아다가 내 머리를 내려쳤다. 엄마의 빨간 장지갑이었다. 나는 앵앵 울고, 아버지는 엄마에게 혼이 난다. 아버지가 방에 따라들어와 나에게 사과를 한다. 아버지는 속상해보였다. 나는 괜찮다고 한다. 다음날이 되면 나는 둘째와 막내의 손을 한손씩 잡고, 집 앞에서 막내동생을 유치원 봉고차에 태워보낸다. 둘째와 함께 학교에 간다. 수업을 마친 둘째가 한 시간, 두 시간씩 우리 반 앞에 서있다. 친구들이 괜히 동생에게 장난을 건다. 동생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나는 그걸 보고 화가 나서 친구들을 쫓아가 혼쭐을 내준다. 동생은 찬 복도 바닥에 앉았다가, 신발장에 기대어 서있다가, 하면서 나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에 간다. 집에는 아무도 없어서 동생을 데리고 놀이터에 간다. 못된 중학생 언니가 여기서 너넨 놀 수 없다 꼬장을 부려 다시 동생을 끌고 친구네 집으로 갔다. 저녁 즈음까지 인형 놀이, 스티커 놀이, 그림을 그리고 논다. 그러는 동안 나는 동생에게 괜한 심통을 부린다. 동생이 울상을 짓는다. 짜증을 부린다. 나는 못난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동생을 윽박지른다. 동생이 울상을 짓는다. 저녁 즈음이 되어서 집앞에서 유치원 봉고차를 기다렸다가, 막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의 빨간 장지갑은 식탁 위에 올려져 있다. 엄마가 밥을 짓는다. 아빠가 뉴스를 보고 있다. 막내가 돌아와 유치원에서 배운 율동을 보여준다. 함께 저녁을 먹는다. 둘째는 내 심술을 엄마에게 이른다. 혼이 나는 동안 나는 운다. 아빠는 옆에 앉아 나를 낳을 적에 얼마나 엄마가 힘들어 했는지 얘기한다. 밤이 깊어지면 이불을 뒤집어 쓴다. 지갑으로 맞은 곳이 뒤늦게 아파온다. 우리집은 화목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에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집을 나가고 싶을 때도 있고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밤새 울면서 쓴 편지를 엄마의 출근 가방에 슥 넣어놓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내 편지를 한 손에 쥐곤 그런 말을 한다. 집 나가고 싶으면 방을 구해줄까? 엄마는 내 편지를 한 손에 쥐고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 엄마는 어린 녀석의 심란한 마음이 당돌한 투정처럼 들린다. 엄마는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후로 나는 내가 죽어버려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을 영영 우려하면서 살게 된다.
맞아. 엄마. 나는 죽지 않았지. 그로부터 20년을 더 살았어. 앞으로도 더 살거야. 하지만 나는 내내 나를 혼자 세워두려고 할거야. 죽지 않기 위해서. 엄마는 그때 나를 도와줬어야 했어. 웃지 말아야 했어. 사춘기 꼬마의 이해할 수 없는 투정이었어도. 우리는 화목하지 않았잖아. 그 화목하지 않은 집의 어딘가에선 살 수 있게 해줬어야 했어.
오늘은 도통 정리가 되지 않아서 이런 글이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이다. 더 해봐야 케케묵은 쓰레기 같은 것들을 그대로 쓰거나, 아니면 정말 내 이야기가 아닌 것들을 쓰겠지. 동그라미를 찢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