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택된

<동그라미 찢기> 1

by 김민주

동그라미를 찢으려 할 때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동그라미를 잘 찢기 위한 준비 단계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애인과 어떤 데이트를 즐겨 하나요?"라는 질문을 하기 전에 애인의 존재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것처럼 동그라미를 찢기 위해선 당연히 동그라미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닐까. 만약 대충 휘적거려서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이 동그라미 녀석, 맛 좀 봐라"하면서 대뜸 찢어버렸는데 그것이 네모였거나 세모였다면 그 녀석들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게다가 찢고 나면 그것이 네모였는지 세모였는지도 알 수 없게 되어 그들의 억울함 역시 알아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동그라미를 찢기 전에 동그라미를 먼저 찾아보겠다.


동그라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문득, 어린 시절 잘 쓰지도 않으면서 괜히 하나쯤 들고 다녔던 모양자가 생각난다. 내 모양자에는 네모도 크기별로, 세모도 크기별로 있었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동그라미 역시 크기별로 있었다. 그중에서 적절한 크기의 동그라미를 하나 골라서, 일기장에 한 번 그려보려고 하는데 그 적절한 크기를 고르는 게 사실 쉽지가 않다. 작은 것은 작아서, 큰 것은 커서 그 나름대로 그만의 '동그라미의 멋'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작은 것도 그리고 싶고, 큰 것도 그리고 싶은데 온 동네 동그라미를 다 가져다가 그릴 순 없기 때문에 잘 골라야 한다. 그렇게 '잘' 고르려 하다 보면, 어떤 것도 포기할 수가 없어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는 때에 이르러 마음의 병이 깊어지게 된다. 어차피 찢을 건데 뭘 그렇게 고심해서 고르냐고요? 그렇긴 해요. 어차피 찢어버릴 거면서 그중에 선택되거나 선택되지 않은 모든 동그라미의 기분을 다 헤아리고 싶어 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동그라미가 된다.

나는 사소한 것도 놓지 못하고 전부 가지고 있으려 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집도 엉망진창이다. 아주 작은 잡동사니가 구석구석을 꽉꽉 채우고 있다. 그런 잡동사니가 모이게 된 것도 같은 식이다. 뭔가 사려고 할 때, 두 개가 모두 마음에 드는데 그중 하나를 고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두 개를 사고야 만다. 선택되거나 선택되지 않은 것들 모두 내가 가져야만 속이 시원하다. 그건 선택된 것에게 느끼게 될 죄악감과 선택되지 않은 것들에게 느끼는 죄책감이 담겨 있다. 하나는 내가 가져와놓고 잘 쓰지 않거나 구석에 박아뒀다가 나중에야 그런 게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느끼는 죄악감이다. 다른 하나는 나에게 선택되지 않아 영영 그곳에 남아 갈 곳을 잃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둘 다 퍽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곧잘 휩싸여 잡동사니는 늘어나고, 죄스러운 마음까지 다 끌어안고 산다는 것이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요? 일단 나는 대뜸 찾아온 아기였다. 물론 태어나기까지 어떤 식으로든 나의 탄생에 대한 부모님의 선택이 있었을 것이니 지금까지 살아서 이런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따지고 들어가서 아기가 태어나는 일이 무슨 인형 뽑기에서 내가 마음에 드는 인형을 골라 돈을 줄줄이 넣으면서, 열과 성을 다해 크레인을 조정해서, 내가 고른 인형을 뽑아오는 것처럼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건 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선택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나는 선택된 아기였다. 태어났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 선택에 대해서 어린 시절 내내 이런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엄마 말 좀 잘 들어."

이렇게만 쓰면 오해가 생길 것 같아 말을 덧붙여야겠다. 나는 4.17kg의 우량아로 태어났는데, 건강하진 못했다. 의사의 오진으로 인해 엄마는 오히려 내가 작다고 알고 있었단다. 예정일보다 일주일 늦게 진통이 왔고, 어쩌면 그 사이에 무럭무럭 자랐을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초산이었던 엄마는 의사의 말마따나 아기가 작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나는 엄마를 죽일 듯이 찢으면서 자연분만으로 태어났다. 세상에 나온 나는 울지 않았고, 어깨 언저리 어딘가의 뼈를 부러뜨리면서 나왔다. 이래저래 엉망이라 나는 큰 병원으로 실려갔고, 약 보름 만에 엄마를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말썽을 부려 혼날 때면 종종 이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엄마가 그렇게 고생해서 낳았으니 말 좀 잘 들으라고. 엄마도 죽다 살아났다고. 어찌나 힘들던지 내가 큰 병원으로 실려가는 와중에도 내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내 생각은 못했다고. 이 와중에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안 듣는 나를 혼내려고 과장하여 얘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이 단락을 쓰면서 엉엉 울었다.


다 울었으니 이어서 써보겠다. 그래서 어찌 되었든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선택된 아기라고 할 수 있다면, 나에게 있어서 그 선택은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처럼만 느껴지곤 했다. 말 안 듣는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을 때나 한 번씩 쓸모를 가지게 되는. 여차하면 나는 엄마를 죽일 뻔했던 아이로만 남을 것만 같았다. 엄마는 나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엄마의 선택이 나에게는 죄악감으로 남았다.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어린 시절의 나는 줄곧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의 첫째 딸이 내가 아니었다면, 선택된 아기가 내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내가 아닌 다른 녀석이 태어났다면, 내가 선택되지 않았다면,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러면 그 모든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돌아가지 않았을까. 엄마는 아이를 앉혀놓고 아이의 탄생을 무기로 아이를 압박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나는 내가 엄마를 죽일 뻔했다는 사실에 죄스러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까지 내 생일을 내심 싫어하는 나도 없었을 수도 있고, 엄마에 대해서 이런 글을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지금 나 때문에 이 글에 등장해서 원망받고 있는 것이란 얘기다. 그런 와중에 살아오면서 내내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일들이 늘 있었는데, 그런 걸 생각할 때엔 내가 선택되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몹시 마음이 괴롭고 슬펐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것도 내가 누릴 수 없었을 테니까. 선택된 아기는 언제나 엄마에게 미안했고, 선택되지 않은 아기가 되는 것을 상상하면 언제나 슬펐다. 내가 좋아하는 엄마와 가족들, 세상과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이미 만났는데, 선택되지 않을 것을 상상하려면 그 모든 것들과 헤어지는 것을 생각하게 되니까. 그러니 작은 동그라미도 그려 넣고, 큰 동그라미도 그려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 둘 모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저 사랑하면서 '그저 사랑한다'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하게 한다. 내가 골라온 것들이 사랑받지 못하는 것도 싫고, 내가 고르지 않은 것들이 마치 버림받은 것처럼 남는 것도 싫고, 내가 그들을 미처 사랑해주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도 싫다.

나라도 그렇게 고집스러울 정도로 동그라미를 다 그려서 그 모두가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둬야만 한다. 너 이 녀석, 막상 데려왔는데 쓸모가 없다, 싶더라도 예뻐해 주고 껴안고 살아야 나도 살아있어도 된다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말을 안 듣고 말썽을 부리고 누군가의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고, 그 선택에 대해 끝까지 마음을 놓지 않으려 해야만 내가 나를 붙잡고 있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케케묵은 모양자를 꺼내어 일기장 한 면에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한다. 내 일기장은 a6 사이즈의 작은 것인데, 가장 작은 동그라미부터 가장 큰 동그라미까지 어떻게든 그 전부를 그리려고 종이의 구석부터 채워나간다. 하지만 역시 종이가 모자라 마지막 동그라미를 그렸을 땐 그 선들이 겹겹이 쌓여있었고, 어떤 것은 동그라미처럼 보이지도 않게 되어버린다. 나는 그 모든 동그라미를 포기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렇게 동그라미를 포기한 모양새가 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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