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찢기> 0
나는 동그라미의 딸이다.
사실 제목을 지을 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나 단어 같은 것으로 제목을 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이 시리즈의 제목을 고민하면서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어머니의 성함이었다. 성함 석 자와 함께 그의 딸임을 밝히면서 시작하고 싶었는데, 에세이인만큼 쓰다 보면 다양한 에피소드와 나의 이런저런 감정이 드러날 것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덩달아 우리 엄마에 대한 감상이 따라 나올 텐데, 어머니의 성함에 괜히 불경한 감상들을 붙이게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대신에 찾아온 이름이 부득이하게 동그라미가 되었다. 작년 이맘쯤 <동그라미의 운명>이라는 소설을 한창 쓰다가 잘 풀리지 않아 여태 잠정 중단된 상태였는데, 이제 다시 쓸 때가 된 것 같다. 엄마와 나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써볼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말이다. <동그라미의 운명>도 어머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그건 소설 작업이라서 이 시리즈와는 별개로 진행이 되겠지만, 그 작업을 하기 위해서 나와 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도 다시 쓰고 싶고, 그 소설을 위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마침 <거짓의 말> 연재도 끝나 새로운 시리즈 작업을 하고 싶던 참에 덜컥 어머니를 떠올린 것이다.
나는 동그라미의 딸이다.
누군가의 딸로 살아갈 때에는 어머니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상황과 사람, 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그랬다. 그래서인지 내가 써온 글에도 어머니가 꽤 많이 등장하고, 몇 년 전에 썼던 소설 <할 말이 있어>도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였다. 어쩌면 나한테 있어 어머니와 딸이라는 것이 풀고 또 풀어봐야 하는 일종의 과제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그러니 가만히 두지 못한 채 자꾸 건드리고 풀어보고 묶고 다시 건드리길 반복하는 것 아닐까.
그런 와중에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누군가의 어머니이기도 한 사람들이 있을 터라, 내가 써 내려갈 나와 나의 어머니에 대한 글이 어떻게 가닿을지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아 프롤로그를 쓰는 정도로도 겁이 나서 몹시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있다. 그렇게 말을 고르는 데에 힘을 빼앗기면서도 이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은 내가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것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만약 딸이 생긴다면, 그 딸이 '나는 동그라미의 동그라미의 딸이었다'라면서 나와 있었던 일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상상일 뿐이라, 실제로 그것이 일어났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언젠가 태어날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에게 내가 어떤 어머니가 될 것인지 고민하고 다지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서 '내가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될까 봐 자식을 안 낳고 싶다고 말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동그라미의 딸이다.
우리 엄마는, 엄마의 엄마 같은 사람인 것 같다. 우리 엄마도, 엄마의 엄마를 보면서 서로 닮은 구석이 보일 때마다 몸서리를 치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어쩌면 엄마도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엄마의 엄마를 닮아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겠느냐고, 혼자 그런 생각을 해보면서 동그라미라는 단어를 가지고 온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동그라미 사이에 태어난 어여쁜 아가들이 동그라미를 따라 돌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될까 봐 아기는 안 낳을 거야!'라고 외치는 나도 있고, 그 언저리 어딘가에 외할머니의 싫은 면모를 빼다 박은 자신의 일면을 보면서 몸서리치는 우리 엄마도 있다. 그리고 또 어딘가에 우리 외할머니가 또 자신만의 괴로움을 안고 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며, 저어기 어디에선 나의 딸이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을 잔뜩 담아 '나는 동그라미의 동그라미의 딸이었다'라는 문장을 적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딘가에서는 이 동그라미가 찌그러지고 망가지게 하는 딸이 있길 바라게 되어 감히 <동그라미 찢기>라는 글을 써보기로 했단 말이다.
나는 동그라미의 딸이다.
동그라미의 딸이 찢어보는 동그라미는 어떻게 생겼고, 어떤 모양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녀의 딸이 태어났을 때에 어떤 것을 보며 자라게 될지 모르겠다. 이 동그라미가 그저 크거나 작은 것, 혹은 울퉁불퉁한 것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동그라미의 딸이므로 <동그라미 찢기>를 쓸 수밖에 없겠다. 동그라미의 딸이 <동그라미 찢기>를 쓰지, 다른 누가 쓰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