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엔 #3
예전에 CEO 직속 조직에서 스탭업무를 할때, 오랜동안 CEO 글의 초안 작성하는 업무를 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월례사 형식의 글을 썼습니다. 그 사이에도 회사 산행 행사가 있으면 산행 인사말, 창립기념일이 있으면 창립기념사, 종무식사나 시무식사를 쓰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글을 쓰며 원칙으로 삼았던 게 3가지 S였습니다. 가급적 짧게(Short), 읽는데 복잡하지 않게(Simple), 이야기가 재밌게(Story) 쓸 것. 그 원칙에 준해서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글을 쓰는 일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언젠가는 CEO에게 초안을 써서 보고해야하는 아이템이 몇 개 겹쳐서 스트레스를 겪다가 안면마비 증상이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글 쓰기 뿐만 아니라, 일을 하다 보면 업무에서 글 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게 됩니다. 메일, 보고서, 기획서, 광고 문구, 캠페인 제목 등등 글로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일을 하며 글쓰기를 할 때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특히 장문의 메일을 보냈을 때나, 보고서를 급히 작성하느라 장황하게 써서 보고했을 경우에 자주 듣게 됩니다. 메일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본인이 쓴 메일을 읽어봐도 약간 헷갈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자신 없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알기 쉽게 수정하려니 시간이 오래 걸릴듯하고, 제대로 쓰려니 스스로 생각해도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에라, 일단 보내보자’라고 마음먹고 보내기 버튼을 누릅니다. 보낸 편지함을 들여다보면 그때서야 머릿속에 후회가 밀려옵니다. ‘내가 쓴 메일이지만, 내가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고민 끝에 보낸 메일을 발송취소하려고 하는데, 벌써 상대로부터 답장 메일이 와 있는 겁니다.
대략 난감합니다. 이제는 발송취소의 기회도 사라지고, 이미 답장을 받아서 변명의 여지도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늘 후회하게 됩니다. 이런데도 계속 길고 장황하게 쓸 것인가요?
글을 쓸 때 명료한 게 좋은 겁니다. 짧을수록 더욱 좋습니다. 그러면 상대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훨씬 쉬워집니다. 전달할 말이 뚜렷하게 이해됩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구구절절 설명 듣지 않더라도 한 눈에 딱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면 더할 나위 없겠죠. 내 입장에서 글을 쓰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이해해야하니 상대 입장에서 써야겠죠. 그마저도 간단한 게 좋겠죠. 미국의 저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라고 말이죠. 앞으로 메일이나 글 쓸 때 하나만 생각하면 되겠네요. 바로 단단익선(短短益善)입니다. 짧으면 짧을수록 좋습니다.
위 이미지는 레고 블록으로 만드는 작품경진대회에서 수상한 작품입니다. 제목은 <잠수함>입니다. 레고로 잠수함을 표현하라고 했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수십 개, 수백 개의 레고 블록으로 일단 두툼하고 둥근 원형의 잠수함 본체를 만들었을 겁니다. 거기다가 뒤쪽 선미 부분에 프로펠러를 달았을 겁니다. 이렇게 작품을 만들어도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는 불필요한 것을 갖다 붙이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있어야 하니 해군병사를 만들었을 거고 해병이 드나들 수 있는 원형 해치를 만들어 열었다 닫았다 했겠죠.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고정관념 속에 잠수함을 만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파란 레고로 바다를 만들고 단 한 조각으로 잠수함의 잠망경을 표현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작품은 <잠수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할겁니다. 남들이 이런저런 말로 폄하할 수도 있겠죠. 이 사람은 뭐든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걸 심플하게 표현하는 게 최고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잠수함을 표현한 이 레고작품을 보며 생각해봅니다. 레고 하나하나가 작은 블록으로 되어 있어서 뭐든 표현할 수 있는 겁니다. 만약 레고 블록이 엄청난 크기였다면 작품을 만들기가 그만큼 어려울 겁니다.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 속의 문장 하나하나가 레고 블록처럼 작고 짧아야만 좋은 글을 만드는데 유리한 겁니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도 글쓰기에 대한 충고를 했습니다. "덜어낼 수 없으면 더하지 마라"고. 글에 이것저것 갖다 붙이지 말아야겠습니다. 단순하고 상대에게 읽히게끔 쓰는 것도 역시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아무 것도 더하지 않은 기역자 모양의 하얀 블록 한 개가 잠수함을 멋지게 표현했다는 걸 기억하세요!
# 미사여구 꾸미지 말고, 중언부언 하지말라는 알지만
# 글이 안 써지거나 자기가 쓴 글이 별로일때는
# 소리내어 읽으면서 윤문을 해보는 겁니다
읽으며 리듬을 타다보면 글이 어색하거나 잘 읽히지 않는 부분이 더 잘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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