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먹어치우는 크로노스(사우투르누스)
프란시스코 고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를 대표하는 스페인 화가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화가 중에 한 명이다. 고야의 작품은 명화집에 빠지지 않고 등장 한다. 아마 이 누드화를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 본 가장 좋아하는 그림 '옷 벗은 마하'이다.
고야가 그린 여성의 나체는 아주 당당하게 표현되어있다. 비슷한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타이타닉에서 주인공이 여주인공의 나체를 그리는 장면이다. 여주인공의 포즈와 눈빛이 상당히 비슷하지 않은가?(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어쨌든 같은 여자가 봐도 섹시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아주 충격적인 그림도 있었다, 바로 아들을 먹어치우는 크로노스(사투르누스)라는 작품이다.
어릴 적에 만화로 처음 접한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 신화 이야기는 아주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아들에 의해 지하세계에 갇히게 될 거라는 저주를 받은 크로노스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나온 족족 그대로 잡아먹어버린다. 이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아들까지 잡아먹는 잔인함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지나칠 정도로 과하게 드러나 있다. 닭다리도 아니고 아들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저렇게 잡아 뜯어 먹다니. 그림이 굉장히 역겹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예전엔 권력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것인가, 어떻게 자식을 잡아먹을 수 있지? ‘신화는 신화일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역사에도 자식과 형제를 무참히 죽이며 권력을 차지한 왕의 이야기가 있었고 오늘날에도 부모와 자식 간 혹은 형제간에 서로 못 죽여 안달이 난 기사들도 종종 본다.
요즘 최근 화제작 드라마 SKY캐슬을 보면서도 이 그림이 불현 듯 생각났다.
드라마 속 서진(염정화)은 박영재(송건희) 집이 주영(김서형)으로 인해 산산조각 난 상황을 알고 있었음에도 딸 예서를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켜 며느리로 인정받기 위해 김주영을 입시 코디로 들인다. 드라마 속의 부모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권력을 유지하고 본인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자녀들의 영혼과 꿈을 먹어 치워버린다. 이 그림 속 크로노스의 모습처럼 무섭고 잔인하다.
저 하나의 그림으로 상징되는 상황이 현실 곳곳에 산재한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은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없어지지는 않겠지? 신화보다 더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