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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아티스트 Nov 17. 2019

남녀노소 쉽게 즐길 수 있는 취미.

그림 보기. 


한번은 저녁 시간에 혼자 파리의 팔레 드 도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날씨도 춥고 이 시간까지 줄을 서야 하는 상황에 그냥 돌아갈까 싶었는데 그냥 온 김에 보자 싶어서 발을 동동 굴리며 기다렸다. 그 와중에 내 앞에는 딱 봐도 꽤 나이 드신 할머니가 혼자 서계셨다. 오. 이 저녁에 이 추위에 혼자 미술관에 나오시다니. 사실 파리의 어느 미술관이나 나이대가 높은 연령층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새삼 젊은 아빠가 어린 아기를 안고 그림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인상적이었다. 파리의 미술관은 워낙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방문하기도 하지만 확실히 미술을 즐기는 시민들의 폭이 참 넓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긴다.     


우리나라도 요새는 꽤 다양한 사람들이 미술관을 즐기는 것 같아도 적어도 내 주위는 아직까지도 그림을 알아야지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거 같다. 그림을 좋아하는 게 마치 고급 취미인양 바라보는 선입견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을 가는 일은 쉽고 저렴하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취미다. 혼자만의 시간도 가질 수 있고 좋아하는 그림스타일이나 작가가 생기게 되면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시간 맞춰 가면 무료로 도슨트의 설명도 들을 수 있고 요새 큰 미술관은 신청만하면 들을 수 있는 재미난 프로그램들도 많다.      



나는 그래서 아빠에게도 간혹 같이 그림을 보러 가자고 이야기한다. 정년이 지난 우리 아빠의 하루는 매우 길어졌다. 집 쇼파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시는 아빠의 시간에 내 시간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기력해 보이는 아빠의 뒷모습 때문이다. 은퇴 후 느긋해 질만도 한데 인생에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뒤늦은 고민이 되는 모양이시다. 억지로 미술관에 함께 나서면 어색한 듯 두리번두리번 한다.      


그래도 막상가면 꽤나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게 된다. 어른들이 딱 봐도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림들은 생각보다 감탄하며 보는 재미가 있고 반대로 내가 봐도 이게 뭔지 모르겠는 난해한 작품들은 대화거리가 된다. 아빠 이게 뭐 같아? 아빠라면 이런 주제를 어떻게 그려보고 싶어? 내가 질문을 던지면 아빠는 고민에 빠진다. 일하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없는, 별 쓸모없는 질문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지금 당장 효용가치 없는 아무 쓸데없는 질문이 내 삶에 진짜이지 싶다. 아빠는 물론이고 나도 요즘엔 열심히 일만 하며 살수록 삶의 본질과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이가 들고 일자리를 접어도 삶은 계속 된다. 60이후에도 하루하루 감정은 변하고 70, 80살 미래를 새롭게 이끌기 위해서 노력해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관습적으로 살기에 인생이 너무 길어졌다. 뒤늦은 삶의 허무함을 느끼기 전에, 아빠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열심히 일만 하다가는 나이만 들어버릴 거 같아서 그림을 보면서 질문을 던지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익숙해졌다.      


그림을 보는 건 누구나 언제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좋은 취미라 생각한다. 더불어 그림을 보며 거창하지는 않아도 삶에 필요한 좋은 질문과 답을 찾아낼 때도 있어서 감정적으로도 이롭다. 예술가만 작품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그림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구나 내 인생을 이끄는 예술가, 작가가 아니겠느냐. 우리도 우리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쓸데없이 질문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는데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대부분 그러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노인 자살률 1위인 데에는 경제적인 빈곤도 문제지만 노인들이 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 받던 나이를 지나 뒤늦게 인생에 허무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쓸쓸한 등을 보이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함께 그림을 보러 가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좋은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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