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입학을 앞둔 22년 2월. 만 3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좀처럼 말이 늘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던 시기였다. 육아로 인한 우울감이 심해서 더 이상 가정보육을 할 자신도 없었고, 우울증과는 별개로 4세부터는 무조건 기관을 보낼 생각이었지만, 그 시기가 오도록 내 아이가 말을 잘 못할 거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행히 아이는 조금씩 문장 발화를 시작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발화가 거의 안 되는 아이를 여기에 보냈다. (어른 말을 다 알아 듣기는 했음) 원래 뭘 잘 몰라야 용감하다고 어떤 곳보다 아이에겐 정글 같을 수 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모든게 늦된 아이를 평소의 나답지 않게 덜컥 맡겼다.
내 속은 등원 후에도 계속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같은 방 아이들에 비해 모든게 늦된 모습을 보면서(사실 지금도 가끔) 나 자신을 엄청나게 자책했던 첫 해. 모든게 다 내 잘못 같아서 견딜수가 없었고, 차라리 두돌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더라면 지금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센터를 더 빨리 보냈어야 했을까,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 잠깐씩 틀어줬던 영상들, 대충 먹인 식사들이 문제였을까, 그때 사려다 망설인 장난감, 그림책 때문이었을까 모든 것을 하나하나 복기하며 자책했다.
그 와중에 이놈의 어린이집은 부모(특히 엄마)한테 하라는게 뭐 이리 많은지 거기다 공동체라는 허울 좋은 울타리 안에서 다른 집 아이들을 돋보기 댄 것처럼 자세히 보게 되니, 집으로 돌아오면 내 새끼의 부족한 부분만 오지게 잘 보여서 돌아버리겠더라.
이런 게 공동육아라면 안 하는게 낫지 않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고 탈퇴를 고민했다. 그렇게 탈퇴를 고민하면서도 어딜가나 대충 하는 것을 못하는 성격에다 안그래도 느려서 튀는 내 아이가 혹시라도 미운 털 박혀서 겉돌까봐 시키는 것은 최대한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참여하고 싶지 않을 때도, 하기 싫은 활동도 기꺼이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이제 3년 차.
하늘이 도왔는지 아이는 이 곳에서 너무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고, 아이의 느림을 다정하게 볼 줄 아는 이 시대에 귀한 부모들을 만나 쑥쑥 자랐다. 언어치료를 시작하면서 아이가 단순히 언어 지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 화용적인 상황에서의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이 곳에서 느끼는 아이를 향한 다정한 시선과 끈기 있게 기다릴 줄 알았던 선생님들의 인내심이 신의 한 수 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전히 내 아이는 느리다.
물론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어마어마한 수준과 속도로 성장하는 다른 아이들을 볼때마다 여전히 심난하다. 심지어 올해는 7세와 통합방으로 운영되기에 모든게 더딘 이 아이가 과연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거리가 가득인데 그 와중에 운영위원장이 되었다.
가끔 생각해본다.
신이 나에게 이 아이를 보내준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텐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든 것을 빠르고 완벽하게 해내느라 몸도 마음도 고장났던 내가 일을 멈췄고, 멈춤과 동시에 이 아이가 나에게 찾아왔다는 건 아마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금까지 내가 삶을 대해 온 방식과는 다른 방향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수없이 탈퇴를 고민했지만 결국 이 곳에 남기로 선택한 이 선택에도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나를 이끈 것 같다. 2년 뒤 이 곳을 떠날 때 나는 어떤 것을 깨닫고 어떻게 변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