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너를 품고 검사하던 날

by 일상채색가 다림

* 이 이야기는 내가 율뽕이를 임신했던 시절 블로그에 적었던 육아일기를 옮긴 것이다.




2019년 1월 중순, 평소처럼 샤워를 하고 뱃속의 아기와 대화를 하며 튼살 오일을 이곳저곳 바르고 있는데 오른쪽 가슴에서 뭔가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멍울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촉감. 좀 큰 구슬 같은 게 가슴 안에 박혀있는 기분이었다. 본능적으로 등골이 서늘했다. 가슴이나 겨드랑이에서 멍울이 잡힌다는 건.. 여자라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두려움 중 하나 아닌가. 급히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엄마는 임신 중에 젖이 돌면서 생기는 염증 같은 게 아니겠냐- 어차피 다음 주에 병원 가니까 병원 가서 물어보라 하셨고, 나도 괜한 걱정 해봐야 아이에게 좋을 게 없으니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정해진 산부인과 진료를 마치고 담당 원장님께 말씀을 드리니 역시 임신 중 일어날 수 있는 변화일 확률이 높지만 딱딱하게 뭐가 만져진다 하니 촉진을 해보자 하셨다. 그리고 촉진 후 약간 어두워진 원장님의 표정. 너무 걱정은 하지 말되, 혹시 모르니 유방외과에 가서 초음파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는 유방외과가 없어서 그날(토요일 오전) 당장 가볼 곳이 있나 찾아봤지만 없었고, 다음 주 월요일로 근처 유방외과에 예약을 잡고 방문했다.


병원에서는 임산부이고 왼쪽 가슴엔 전혀 잡히는 게 없다니 멍울이 잡히는 오른쪽만 초음파를 해보자고 하셨고, 초음파 상으로 보이는 내 가슴의(오른쪽 가슴 아래쪽) 멍울은 생각보다 크기가 거대했다. 의사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너무 커 보일 정도로.. 유방 전체적인 부위와 겨드랑이를 모두 꼼꼼히 봐주었고, 결절이 몇 군데 있지만 나머진 모두 임신 중 자연스럽게 생겼다가 없어지는 정도로 보이는데 문제는 오른쪽 가슴 유륜 밑부분에 있는 거대한 저놈.


무려 5센티가 넘었다. 크기가 너무 커서 아무래도 조직검사를 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 선생님 말에 정말 대차게 싸대기 한 대 맞은 기분. 얼떨결에 진행해달라고 대답은 했는데 그 이후에 선생님이 검사 절차며 이것저것 설명을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숨 막히는 공포가 밀려왔다.


나 어떡하지..? 우리 몰랑이 어떡하지..?



바로 조직검사를 시행했는데 가슴 부위를 국소마취를 하고 엄청 두꺼운 바늘로 총 네 번 거대한 멍울 곳곳의 조직을 채취했다. 마취를 했지만 두꺼운 바늘이 몸을 찌르니 욱신거리는 아픔이 느껴졌는데, 이미 멘탈 와르르 상태라 아픈 줄도 느끼지 못했다. 바늘이 들어갈 때와 조직을 채취할 때마다 선생님이 중계방송을 계속해줘서 검사 자체가 무섭거나 아프진 않았다. (유방 조직검사 & 유방 초음파는 아기에게 해가 가지 않아서 임신 중에도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다고 함)


검사 진행 중 선생님께서 결과가 양성이더라도 크기가 크기 때문에 제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현재 내가 임산부이므로 여기선 수술 불가, 산부인과가 같이 있는 대학 병원으로 전원 해야 하니 어디로 가면 좋을지 미리 생각해 오라고 하셨다. 정말 그 말을 듣는데 너무 심난했다. 조직검사를 마치고 검사 부위에 방수밴드와 붕대를 감고 20분 정도 지혈을 하며 혹시 출혈이 있는지 보고 귀가하라고 해서 엄마와 병원 로비에 앉아있는데 이미 내 정신은 가출 상태.


때마침 병원 간지 한참 됐는데 내가 카톡 답이 없으니 로비에서 기다리던 엄마한테 전화까지 한 신랑한테 이 비보를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했는데 남편 목소리 듣자마자 눈물이 미친 듯이 흘러내렸다. 눈물 콧물 흘리며 다음 검진 예약을 잡는데 명절이 껴서 2월 7일에나 검사 결과가 나온다는 소식. 지금 이 심란한 마음으로 나보고 명절을 보내라는 소리? 내 멘탈이 우주로 날아가는 사이 엄마가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다. 의사 선생님과 면담하게 해 달라'해서 응급으로 빨리 처리하겠다는 의사의 답변을 들은 뒤 집으로 왔다.


학회 참여 중이던 남편도 놀라서 학회 중간에 뛰쳐나와 집으로 왔고, 다 같이 우리 놀란 마음 소고기로 달래자며 집 근처 고오오급 한우 고깃집에 가서 불고기 정식을 시켰는데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눈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도대체 남편 얼굴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는지 사람 많은 식당 한복판에서 나 혼자 사연 많은 여자처럼 우느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날 이후 일분일초가 피를 말리는 시간의 연속.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고 이런 엄마 마음을 알아서 더 그런 건지 몰라서 그런 건지 우리 몰랑이는 평소보다 더 강렬한 태동을 쉴 새 없이 선사. 태동만 느껴져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우리 아기 건강하게 5월에 만나자고 매일매일 말해줬는데.. 건강하게 만날 수 있는 건가.. 나도 아기도 괜찮을까.. 조직검사 결과가 최악 오브 최악이면 난 정말 어쩌지.. 우리 아기는 또 어쩌며 남편은 또 어쩌지.. 오만 생각이 다 들고 이미 마음은 난 유방암 확진 환자.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대학병원 외래 진료를 미리 예약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친척들을 통해 수소문을 했고,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에 진료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좋지 않은 결과를 들었을 때, 내가 잘 견뎌낼 수 있을까..? 나 한 명이 아닌 내 남편, 아이, 그리고 부모님들과 가족들.. 모두 잘 이겨낼 수 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저 기도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까지 기도에만 매달렸다.


피가 마르는 지옥 같은 이틀이 지나고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암 확진은 아니었다.



즉 최악 오브 최악의 케이스는 피했고, 다만 100% 양성인 섬유선종인지 엽상종양(얘는 악성/양성 두 가지 케이스가 있음)인지는 조직검사론 확진이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 얘가 섬유선종인지 엽상종양인지는 절개를 해서 떼어내 봐야 확진을 할 수 있다는 소견. 섬유선종일 경우 특별히 걱정할 부분은 없고, 엽상종양인 경우는 양성이라면 재발 가능성이 섬유선종 보다 높으니 추적관찰을 좀 더 자주 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 정도. 이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감사한 결과.


가장 골치 아픈 케이스는 악성 엽상종양인데, 이 경우엔 혹시 다른 부위로 전이되었는지 확인을 해야 하나 이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소견이었다. 담당 의사는 솔직히 월요일에 초음파 상으로 봤을 때는 암일 확률이 높아 보여서 임신 6개월 임산부인 내가 암 확진이 되면 어쩌나 싶어서 본인도 갑갑스러웠는데 그야말로 천만다행인 아주 좋은 결과가 나온 거라고 하셨다. 대학병원 진료 의뢰서와 초음파 촬영 자료 등 전원 시 필요한 자료들은 모두 챙겨 왔고, 이제 수술 진행 여부와 시기는 아산병원 검진을 통해 결정되어야 할 부분이다.


홀몸으로 이런 진단을 받았어도 기절초풍일 판에, 임신 중에 이런 큰 이벤트를 겪으니 자동적으로 하루 종일 온갖 부정적인 생각은 계속 떠오르는데 '내가 이러면 우리 몰랑이가 스트레스받을 거야'라며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하려고 애쓰는 그게 또 스트레스였다. 아기도 많이 놀랬는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태동이 좀 줄었는데, 병원 다녀온 이후 밥 먹고 푹 쉬었더니 태동이 다시 활발해졌다.


여태껏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살아왔고, 남들은 힘들고 어렵게 되는 임신도 몇 달 만에 바로 되었고, 임신 직후부터 다음 주면 7개월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흔한 출혈이나 통증 한번 없이 너무나도 잘 커주는 우리 아가 덕분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너무 나의 건강에 자만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무작정 걱정하고 겁낼 필요는 없지만, 늘 조심하고 내 몸을 아끼고 더 사랑해주라는 계시인 듯하다. 앞으로 있을 진료에서 더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길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겠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자매님들,

회사에서든 내 돈 주고 하든 정기검진 꼭 받으시고- 꼭 비용 추가해서 유방 초음파, 자궁 초음파 6개월에 한 번(못해도 1년에 한 번)은 꼭 받으시고- 자궁경부암 검사도 꼭꼭 빼먹지 말고 받으소서.


하루를 살더라도 건강하게... 즐겁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삽시다.


- 2019. 01. 31





이후 나는 서울아산병원으로 전원 하여 유방초음파 및 조직검사를 재시행했고, '악성 종양이 아니므로 임신 중 제거할 필요는 없고 다만 크기가 큰 편이기에 출산 이후 적절한 시기에 제거 수술을 진행하자'라는 진단을 받았다. 2019년 5월 무사히 아이를 출산했고, 한 달 정도 모유 수유를 한 뒤 단유를 하며 수술 준비를 했다. 그리고 2019년 8월, 오른쪽 가슴에 있던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종양 제거 후 이뤄진 마지막 조직검사에서 '양성 엽상종'이니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없고 매년 유방 초음파와 촬영으로 추적검사만 꾸준히 받으라는 소견을 받았다. 올해 초에도 유방외과에 가서 초음파와 촬영을 했고, 다행히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나처럼 임신 중에 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원래 있던 혹이 갑자기 커지거나 임신성 유방암이 생기는 경우가 꽤 있었다. 다행히 나는 악성 종양이 아니었지만, 임신성 유방암인 경우 아이를 품은 채로 암 치료를 해야 한다. 아이를 품어본 사람이라면 그 고충을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해가 될까 모든 것을 조심하는 시기에 항암을 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란...


그 시절 내가 자주 묵상하며 버텼던 성경 구절이 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시험을 받는 것이다

- 히브리서 12장 8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내가 너를 사랑하므로, 네가 나의 딸이고 아들이므로 시험을 받는 것이라고. 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겠는가? 하나님의 계획이 지금은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늘 주무시지도 않고 한눈팔지도 않고 우리가 눈물 흘리며 간절히 드리는 기도와 간구를 모두 듣고 응답하실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이었다.


또한 하나님은 애초에 그 사람이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치도 않으시며, 우리가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떻게든 통과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견뎌낸다면 결국 피할 길(통과할 길)을 내주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던 말씀이었다.


내 삶의 모든 좋은 것과 복된 것은 하늘에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늘 잊지 않는 것.

믿고,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 인내해야 하는 것.


엄마라는 인생의 변화를 겪으며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신께 감사드린다. 엄마가 된다는 것, 나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럽고 행복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도 사랑하시는구나'를 느낄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아픈 곳 없이 아찔한 사고 없이 평온하게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이 이렇게나 행복한 것임을 느끼게 해 주심에 감사. 교만하거나 무신경하지 말고 늘 조심하고 기도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주심에 감사. 또한 같이 기도해주고 걱정해주고 신경 써 주었던 나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감사드린다.


사진 by 딩크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