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부대찌개 식당 실내
부대찌개가 보글보글 끓는다.
남자는 앞접시에 찌개를 골고루 퍼 담아 맞은편 여자 앞에 놓고, 다음으로 자기 앞접시를 챙긴다.
여자는 휴대폰을 보다 내려놓고 플라스틱 물통을 기울여 남자의 물잔과 자기 물잔을 채운다.
20대 후반의 둘은 각자 말없이 찌개와 공기밥을 먹는다.
잠시 후 여자가 정적을 깬다.
여자 근데 홍쌤은 무슨 책 읽어요?
남자 저 책 안보는데요.
여자 아까 도서관 간다 했잖아요.
남자 아... 제가 공부하는 게 있어서요.
여자 무슨 공부?
남자는 입 속의 음식을 한참 씹어 삼킨다.
남자 한국어 교원 자격증 시험요.
여자 한국어요?
남자는 대답없이 젓가락으로 밑반찬을 집어먹는다. 여자는 혼자 빵 터져 깔깔 웃는다.
여자 아니, 왜에? 한국말 하는데도 자격증이 필요해요?
남자는 음식을 씹는다.
여자 아~ 한글 선생님 하시게요?
남자는 자기 앞접시에 라면사리를 건져 담는다.
남자 얼른 드세요. 라면은 뿔어요.
여자 여기 일은 어쩌구요? 그만 두려구요?
남자 그건 아닌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여자 생활비는 있어야 할 거 아녜요, 그쵸?
남자는 후룩 라면을 흡입한다.
여자 제가 어릴적에 남자친구랑 스파게티 집에서 알바를 같이 한 적 있어요. 근데 이틀째 되는 날, 걔가 조리장 오빠랑 싸우고 그날 바로 그만 둔 거에요.
남자는 열무김치를 집는다.
여자 일 해보셨으니까 아시잖아요. 일 배운지 일주일도 안 된 사람이 기분 나쁠 일이 뭐가 있어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데.
열무김치를 씹는 남자의 입에서 아삭아삭 소리가 난다.
여자 홍쌤은 이해가 되세요?
남자 글쎄요... 막상 해보니까 일이 자기가 생각했던 거랑 달랐던 거 아닐까요?
여자 네, 걔가 딱 그렇게 얘기했어요. 원랜 첨에 저랑 같이 홀에서 근무하기로 돼 있었거든요. 근데 사장이 걔한테 주방으로 바꾸면 어떻겠냐 부탁해서, 그래서 걔만 주방으로 가게 된 거에요.
남자가 가볍게 웃는다.
남자 저였어도 기분이 좀 그랬을 거 같애요.
여자 (버럭하며) 지가 기분이 왜 나빠요. 남의 돈 벌면서 지 기분 생각하면 안 되지. 백종원 골목식당 못 봤어요? 자기 내키는 대로 고집 피우는 사람들 보면 보기 좋아요?
남자 아니요.
여자 전 지금도 화가 나요.
남자 미안해요. 제가 잘못한 거 같애요.
여자 지가 지 입으로 그랬다니까요. 자긴 스파게티를 엄청 좋아한다고. 근데 홀이면 어떻고 주방이면 어때요.
낮. 버스정류장
남자와 여자는 사람들이 붐비는 정류장에 서 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린다.
둘은 정류장 천장 아래에 있어서 비를 맞지 않지만 아닌 사람들도 많다.
여자 날씨가 궂어서 어떡해요. 이래서 도서관 가겠어요?
남자 그러니까요.
여자 집은 어떻게 가시게요?
남자 여기서 타면 얼마 안돼요.
여자 다행이다, 괜히 나가면 비 맞잖아요.
정류장에 버스가 들어온다.
남자 (버스를 가리키며) 저거 타야 되는 거 아니에요?
여자 오, 왔다.
버스가 정차하자 앞문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여자도 행렬에 섞인다. 그러다 도로 빠져나와 정류장의 남자에게 돌아간다.
여자의 얼굴이 빗물에 젖는다.
여자 홍쌤, 지금도 너무 고생하고 계신 거, 저도 알고 원장님도 알아요. 그니까... 힘들어도 더 같이 화이팅해봐요.
남자 네 고마워요. 쌤도 화이팅해요. 오늘 너무 잘 먹었어요.
여자는 손을 흔들며 종종걸음으로 버스 앞문으로 들어간다.
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한다.
멀어지는 버스를 지켜보는 남자.
여자가 탄 버스가 골목을 꺾어 사라지자, 남자는 정류장 밖으로 나간다.
남자는 비를 맞으며 반대편으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빗물이 길바닥을 적신다.
반대편 정류장 역시 사람들로 붐빈다.
정류장 천장 아래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남자는 근처에서 비를 맞으며 서있다.
도로의 차들은 빗물을 튀기며 달린다.
잠시 후 도착한 버스는 남자를 싣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