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resum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튼 May 23. 2023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한 이유

20230523



 고1 겨울방학이었다. 오랜 시간 부모님을 졸라 드디어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검정색 원통형의 화구통. 그 속에 뭘 넣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한쪽 어깨에 걸친 내 모습이 뿌듯했다.


 미술학원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만뒀다.


 선긋기는 지루했고 아그립파는 어려웠다. 미술학원의 또래들은 이미 자기들끼리 친해 보였다. 늦게 온 나는 그들의 수다를 뒤통수로 들으며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이젤을 향해 팔을 후적대고 있었다. 팔에 힘을 빼라는데 힘을 빼면 선이 그어지지가 않았다.


 부모님이 미대입시를 완강히 반대하니까 어쩔 수 없이 포기한다는 게 내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위의 사실들 때문에 도망친 것이다. 나는 학교 성적이 괜찮았다. 이대로 공부하면 서울에 있는 이름 있는 대학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미련이 없었다. 독서실의 삼면이 가로막힌 책상 앞으로 돌아와 수학의 정석을 펼쳤다. 마음이 편안했다.


 수능이 끝나고 부산을 떠났다. 미대를 가지 않아도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 나는 전공책 귀퉁이에 아주 작게 사람의 얼굴을 그렸다. 딱히 뭘 그리고 싶었던 건 아니다. 누구랑 통화할 때 연습장에 끼적이는 무정형의 기하학 무늬처럼, 지루한 강의 시간에 대한 조건반사였을 뿐이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부산에 돌아왔다. 부산에 돌아온 나는 왠지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고 그림도 그렸다.


 인터넷 어느 커뮤니티에 만화를 올렸는데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추천을 눌렀다.


인스타그램에 당시 유행하던 글스타그램 느낌으로 포스팅을 했는데 그걸 본 어느 스타트업 업체와 연이 닿아, 행사장 부스에서 사람들에게 즉석으로 짧은 소설을 써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중 이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작가'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스스로에게 만족해 버렸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사회에서 낙오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럴싸한 새 이름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작가'였다.


 그렇게 서른이 넘은 나이에 부모님 집에 얹혀살게 된다. 과외를 하기도 하고 사무직 알바를 한 적도 있으나 일을 한 날보다 안 한 날이 더 많다. 버는 돈은 대학생들 방학 때 잠깐 호프집에서 일하는 수준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 중 40을 아버지 20 어머니 20 따로 드렸다. 그런 게 효도가 아닌데 효도라고 나 자신을 속였다.


 가 보자 하면 좋다고 또 서울로 올라갔다. 꼴에 남자라고 먹는 거 자는 거 내 카드를 긁었다.


 매일 밤 죽고 나면 같은 날 아침으로 되돌아와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영화 해피데스데이의 주인공 같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보는 끝까지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바보에게도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이 맞는 줄 안다.


그런 바보가 사람 구실이라 해서 제대로 할 리 없고 멀쩡한 인연이 남아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여기서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https://instagram.com/otwks




매거진의 이전글 마로니에 공원, 철학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