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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공대생 Oct 28. 2020

공대생도 소설 읽습니다

나는 공대생이다. 엄밀히 말하면 과학고, 공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공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이지만 현재는 공대생이라는 단어 자체가 공대를 다니는 대학생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특정한 이미지와 뉘앙스를 지닌 고유어 같은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공대생이라 지칭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공대생이지만 소설을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약간은 의아하게 보곤 한다. 게다가 나처럼 고등학교 때부터 이과 테크트리를 탄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마 대부분의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공대생, 특히 공대를 다니는 대학원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논문을 읽거나 실험을 하는 모습, 주위의 모든 것을 과학에 기반해 판단하며 인문학적 농담 따위는 먹히지 않는 종족의 모습일 테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곳에서 꽤나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겠다. (슬픈 건 실제로 그런 친구들이 주변에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한 편견에 거리낌 없이 반박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책을 끼고 살았다. 처음에는 해리포터, 델토라 왕국, 룬의 아이들과 같은 소설로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있던 커다란 책장 2개에 있는 책을 거의 다 읽어버렸고 심지어는 읽을 책이 부족해 대부분의 책을 한 번씩 더 읽기까지 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나에게는 어려운 책들도 많았다. 톨스토이의 부활이라던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같은 고전도 있었고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내가 읽기에 조금은 선정적이고 부적절한 책들도 있었다. 당시의 나는 책이라는 매체에 반쯤 중독되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책에 중독된 학창 시절을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보내던 나는 머지않아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영어를 제외하고 국어와 수학, 과학을 모두 좋아했던 나는 외고와 과학고 중 과학고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지금도 가끔 이야기하곤 하지만 한국어고? 같은 것이 있었다면 거길 지원하지 않았을까) 과학고를 졸업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공대에 안착해 있었다. 


그리고 책 중독 증상은 말끔히 사라졌다. 대학에는 책이 아니어도 재밌는 게 너무 많았다. 술도 마셔야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해야 했으며 알바, 여행, MT(그놈의 온갖 MT들은 왜 이리도 많은지), 게임, (최저 학점이라도 유지하기 위한 필사의)공부까지. 집에서 훌쩍 떨어진 공대 기숙사 생활은 그 모든 재밌고 즐거운 것들을 부모님의 감시 없이 자유롭게 행할 수 있도록 돕는 최고의 조건이었다. 그렇게 도서관이나 책은 기억도 나지 않던 대학 생활을 즐기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도 비슷한 생활을 하다 어느 순간, 문득 회의감을 느꼈다. 열심히 올린 게임 랭크나 기를 써가며 식도 너머로 들이부은 알코올들은 현실의 나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았다.(오히려 해가 된다는 걸 깨닫기까지 대략 4~5년 정도가 걸렸다.) 그때부터 다른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피아노 독학이라던가, 운동이라던가, 독서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독서에 관한 것이다. 그것도 (편식이 심한)소설에 집중된 독서에 관한 얘기다.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재미있고 삶에 즉각적으로 유용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내 가치관을 바꾸기 때문이다. 쉽게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바로 노하우를 알려주는 건 재미없지 않은가. 예를 들면 자기 계발서나 인문 교양서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들은 물고기를 바로 건네주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소설은 물고기를 잡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돕거나 낚싯대만 불쑥 내밀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소설은 물고기를 잡는 법은커녕 뜬금없이 휘파람 부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소설에는 그런 즐거움이 있다. 제목만 보고는 전혀 연상할 수 없는, 마치 포장만 보고는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랜덤박스를 여는 듯한 즐거움. '부자가 되는 11가지 방법' 같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훤히 알려주는 책들과는 다른 소설만의 재미다.


그리고 소설은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바꾼다. 나는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언어란, 언어의 실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고,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읽고 과학과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내가 과학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고민했으며, 쿤데라의 '농담'을 읽고 2020년 한국의 집단과 이념, 그리고 그 속에 파묻힌 개인에 대해 생각했다. 소설은 우리가 그것을 읽지 않았다면 생각하지 않았을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또 나 자신의 생각을 바꾸며, 인간을, 주위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내가 소설을 읽고 그 전의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해 볼 수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가치 있는 행위가 된다.


나는 공대생이지만 소설을 읽고, 또 그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소설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기록으로 남겼다. 소설에 대한 생각, 읽고 난 후에 든 고민, 여러 가지 잡념들까지 한 데 버무린 서평인지 리뷰인지 일기인지 모를 짧은 글들이다. 공대생이라는 존재는 소설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문학이나 글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소설을 어떻게 읽는지, 읽을 만한 재밌는 소설은 어떤 게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소설 읽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식사 자리에서 새로 나온 소설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꺼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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