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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 Aug 07. 2020

사랑의 표현

달콤한 말과 챙겨주는 말보다 어쩌면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을까요?”

“역시 연락이 잘 되고 대화가 풍성한 사람이지.”


 20대 후반 30대 미혼 직장인의 심오한 토론 중에는 늘 연애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는 당장의 과업만큼이나 중요한 인생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감성파 동료 4명이 앉아서 떠드니 결국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최고라는 결론이 나왔다.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며 표현하는 말을 하고 연락을 자주 하는 연인이 좋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동의하는 바였기에 스타벅스에서 오랜 시간 동안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풍성한 이야기를 나눈 후, 그 날은 회식 날이었기 때문에 병원 가는 시간이 애매해서 바로 집으로 왔다. 누군가 한 명은 밀린 집안일을 처리해야 때문에 일이 끝나면 병원에 가서 애매한 시간이 될 바에야 집으로 오는 것이 낫다. 재빨리 결론을 내리고 집으로 왔다. 아직 엄마가 오지 않은 빈 집에는 나, 동생, 엄마가 먹고 남은 그릇 설거지와 청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시포스의 바위는 집안일 아니었을까


 집안일이란 ‘시시포스의 바위’ 같다. 낑낑대면서 열심히 산에 바위를 굴려서 정상에 올려놓아도 집에서 하루를 지낸 다음 날이면 다시 산 아래 바위가 있는 느낌이다. 그저 집에서 하루를 살아내는 삶이라는 업보가 그렇게 고단할 줄은 몰랐다.


 엄마는 본래 집안 청소와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 분이셔서 집안일이 보이는 족족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셨었다. 발꿈치라도 따라가기 위해 퇴근 후 하나 둘 하다 보면 벌써 내일을 위한 취침시간이 된다.


설거지가 가져다준 생기


 가방을 내려놓고 불 꺼진 부엌에 탁! 전등을 켠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을 지키고 있던 빨래집게에 가지런히 걸린 고무장갑 두 개를 손에 끼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쏴아아 하고 내려오는 물소리와 싱크대와 그릇이 부딪히는 묵직한 소리에 적막을 지키던 집은 활기와 생기가 돋는다. 설거지를 마치고 대충 바닥청소를 한 후 내친김에 쌀도 씻어서 안쳐두었다.


 달그락달그락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반추해본다. 엄마에게 병원에 있는 아빠의 안부를 물어봤던 나의 전화, 오늘은 내가 병원에 가지 않는 대신 동생이 가서 있겠지 라는 생각, 그리고 오늘 회식 때 나눈 이야기들이 뒤죽박죽 떠오른다. 저녁시간에 사랑을 할 때 중요한 것은 달콤한 말과 애정표현이라는 대화가 떠오른다.


적막 속의 묵직한 사랑


 나는 지금 적막 속에서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지만 어쩌면 회식 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밥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있다. 오늘 나는 가족들에게 달콤한 말은 커녕 집안일을 크게 신경 쓰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별것도 아닌 걸”이라고 시크하게만 말했지만 가족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저 내 자리에서 우리 가족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대신하는 걸로 애정표현을 대신했다.


 적막 속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릇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퐁퐁 향기에 가슴 깊숙이 뜨끈하고 묵직한 사랑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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