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랑 아빠랑 ep.10
누군가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침대에 누운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불길했다. 살짝 실눈을 뜨고 창문 사이즈로 잘 내려진 블라인드를 바라보았다. 창밖은 여전히 어둠이 짙게 깔린 듯했다. 미세한 불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그런 밤이었다. 나를 깨운 건 딸 단아였다. 하지만 단아는 깨어있지 않았다. 날 깨운 건 딸의 발이었다.
딸은 10개월이 되었지만 여전히 잠꼬대가 심한 편이다. 팔과 다리가 더 길어지면서 양 옆에 자고 있는 엄마와 아빠를 꽤 여러 번 노크를 하는 편이다. 자는 상태로 뒤집거나, 상체를 거의 들기도 하고, 양발을 높게 쳐들고 바닥에 낙법 하듯이 내리치는 건 일상다반사다. 그래서 오늘도 새벽에 눈을 뜨고 말았다. 여러 번.
아이들은 잠꼬대가 원래 심한가?
아침에 알람을 맞추지 않는다. 대부분 딸이 먼저 일어나기 때문이다. 배꼽시계인 건지 모르겠다. 9시간에서 10시간 정도 통잠을 자면 대부분 7시 30분 또는 8시 30분 내외에 일어나는 편이다. 덕분에 아침형 인간이 되어 누구보다 하루를 길게 사용하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건 당연하니까:)
"단아야, 단아야!"
아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단아'라는 이름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여보, 태일 씨' [나]를 부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 왜, 이름을 많이 부를 수밖에 없을까?
네발기기를 하는 아이가 다칠까 봐 긴급하게 부르거나, 아이가 이유식을 먹어야 하는데 집중을 못하거나, 옷 입을 때, 재울 때, 울 때, 놀 때, 심지어 자고 있을 때도 '단아야'하며 속삭인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단아'를 불러도 엄마 아빠를 잘 쳐다보지 않는 편이다. 소리에는 굉장히 민감하지만 이름을 불러도 대답은 못해도 얼굴이라도 쳐다봐주면 고마울테다. 섭섭할 때도 많은 건 사실이었다. 아직 아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카페 등을 살펴봐도 이름에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가 있는 걸까?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나의 딸, 단아는 신체 발달 속도가 우수한 편이다. 출생 후 312일 동안 6.16kg 증가했다. 다른 아기들과 비교했을 때 비슷하게 먹고, 자고, 놀지만 키와 몸무게, 발사이즈, 머리 둘레 등은 상당히 빠르다. 그런데 최근엔 여섯 번째 '치아'가 자리를 잡고, 잇몸밖으로 튀어 올라왔다. 윗니 2개, 아랫니 4개가 되었다. 힘이 세지다 보니 한 번 물면 이빨자국이 선명할 정도로 남고, 이갈이를 많이 하는 편이라서 식탁, 각종 장난감, 옷, 하다못해 슬리퍼까지 물어뜯고 있다.
눈에 보이는 건 손만큼 빠른 게 입이 되었다. 모두 입으로 가져가기 때문에 언제나 불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상이다. 이빨이 빨리 자란 만큼 치아 관리도 더 신경 써야 하고, 빨리 빠지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건 아니라고 들었다. 더구나 비슷한 또래를 만나면 이빨이 한 개, 많으면 두 개 정도였다. 근데 단아는 왜 이빨이 벌써 여섯 개인가? 일곱 번째 이빨이 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었다.
요즘엔 '이유식'양이 엄청 늘었다. 인지를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는 '양치질'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큰일이다. 이빨이 여섯 개인데 양치질을 안 하면 치과를 가야 하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다. 한숨이 부쩍 늘기 시작했다.
요즘 아기 인생 중 가장 예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뷰티 앱을 사용해도 보정할 일이 별로 없다. 보정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하얗고, 피부결도 좋은 편이기 때문이다. 아빠인 나랑 있으면 더욱 뽀얗게 보인다. 엄마가 하얀 피부인 편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예뻐서 좋다.
만나는 사람마다 칭찬을 받는 경우가 늘었다. 여전히 머리에 숱이 적어서 '아들'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예쁜 딸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괜히 '으쓱'해진다. 그러다 최근에 의외의 말을 들었다.
''누굴 닮아서 피부가 이렇게 하얀 걸까?''
''혈관도 거의 안 보이는 편이네''
''엄마가 빈혈이 조금 있으시구나?''
''피부가 하얗기도 하고, 조금 창백해 보이기도 하네?''
최근 잘 크고 있는 딸 단아에 대한 궁금증이 굉장히 많아졌다. 성장하면서 안 하던 행동도 보이고, 쉽게 알 수가 없는 정보, 궁금한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잠꼬대가 심한 편인데 괜찮은 걸까?
이름을 불러도 별로 반응이 없는데 괜찮은 걸까?
이빨이 벌써 여섯 개째.. 관리는 어떡하지?
아기 식탁에 방해를 하는 게 있으면 두 손으로 다 쳐내는 행동, 낮에 잠을 잘 못 자는 편, 귀 청소는 10개월째 안 해서 더러운데 괜찮은가? 요즘 자꾸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다, 양치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데...
약 10개가 넘는 질문지를 손으로 작성해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진료실 안에 마련된 '아이 놀이 공간'에 단아를 내려놓고 헝클어진 장난감 사이로 단아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1분, 2분, 3분... 시간은 계속 흐르면서 단아의 행동을 계속 관찰하고, 가끔 말도 걸어보고, 주의를 환기시켜보기도 하셨다.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아파서 온 게 아니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20분 남짓 한 참을 바라보고, 행동 관찰을 마친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여셨다.
소리도 잘 듣고, 시선처리도 괜찮고, 치아도, 반응도
모두 다 정상입니다.
사실 딱 한 마디를 듣고 싶었다. '괜찮습니다'라는 말.
최근 아이의 성장을 보면서 기쁨으로 가득 찬 만큼 모든 게 낯설고 모르는 게 투성인 초보 엄마 아빠였기 때문에 약간의 불안과 긴장은 숨긴 채 내색 없이 지낸 게 사실이다. 엄마는 엄마대로 '엄마들의 오픈채팅, 카페, 책'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공유했다. 아빠인 나는 인스타그램이나 포털 검색을 통해서 선배들의 후기나 전문가들의 칼럼 등을 확인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정보는 비슷하지만 공감이 잘 안 되거나, 약간의 차이만 있어도 신뢰도가 조금 저하되는 이야기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육아를 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카더라' 통신에 일방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흔히 '육아'에서는 '유목민'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누군가의 경험이나 잘못된 정보에 의존하게 되면서 휩쓸리는 현상이 많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아이를 위해 시간과 노력으로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이야기가 되고, 경험이 되어, 추종자가 생기는 아주 간단한 구조에서 '카더라' 통신은 주인 없는 플랫폼이 되어 오랫동안 늘 곁에 있던 게 아닐까 싶다.
아이는 스스로도 잘 큰다. 하지만 엄마 아빠의 관찰, 보호, 돌봄을 통해 더 건강하게, 사회성을 기르고, 발달과 성장을 잘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건 '카더라' 통신에 의지하는 시간과 노력이 많아진다고 판단이 될 경우 그 순간 멈추길 바란다. 전문가, 병원을 찾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아과도 다니다 보면 의사 선생님마다 조금은 다른 의견을 주기도 한다. 때로는 명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전문가의 의견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누굴 믿어야 할까 싶다. 딸은 어려서인지 보통 900원에서 2000원 정도의 진료비가 나오는 편이다.
궁금한 게 있으면 '병원'을 찾아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보자.
'카더라'는 따뜻한 마음이 모인 건 분명 하지만 결코 숨어 있는 불안을 해소할 순 없으니까.
오늘도 나의 딸, 단아는 건강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어제보다 더 예뻐졌다.
그리고 더 예뻐지기 위해 '딸기 맛 철분'을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왕조시대
왕조시대 Jr. 단아를 응원합니다.
instagram, @baby.wangjo.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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