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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태일 Feb 20. 2023

'사경'을 헤매는 아이

단아랑 아빠랑 ep.12



나의 딸은 조금은 특별한 경험을 했다. 아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더라도 경험을 떠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많은 신도시나 대형 복합 쇼핑몰 등에서는 한 번쯤 봤을 법하다. 그만큼 눈에 띄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우리 딸은 '사경'을 가지고 있다. 제목과는 조금 다른 얘기다. 죽음(death)이 아니라 사경(toricollis)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주 긴 기간 동안 사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이, 오늘 졸업을 하기로 했다.



"여보, 단아는 너무 순한 것 같아

잘 때도 저렇게 얌전하게...?!"


유난히 순진했다. 아이 그리고 엄마, 아빠까지 모두가 말이다.

딸 단아는 생각만큼 울음도 많지 않았고, 잘 때는 더욱더 조용히 얌전히 잤다. 그때는 몰랐다. 항상 한쪽만을 바라보고 잤다는 것을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대편으로 살짝 돌려놔도 언제 그랬냐는 듯 왼쪽 방향을 바라보고 얼굴만 돌린 채 자는 모습이 보였다. 


의심은 했다. 뭔가 이상하다. 그러다 수많은 사진을 보던 중 유난히 유모차를 탈 때 몸이 비틀어진 모습을 발견했다. 혹시나 해서 50일 촬영, 100일 촬영 사진을 봤다. 역시나 고개가 조금 기울어진 모습이었다. '귀여움'만 보았다. 부모이기 때문에 '관찰'보다는 '매력'에 빠져 지낸 게 사실이다. 우리는 부랴부랴 소아과를 갔다. 소아과마다 의견이 달랐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와 '더 지켜보면 좋을 것 같다' 등이다. 하지만 유난히 걱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아이의 머리(두상)가 점점 비대칭이 되어 갔기 때문이다.


사경이란?
기울어진 '목'이라는 고개의 자세 이상을 일컫는 말이다. 진단명이 아닌 '증상'에 대한 용어이다.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빠른 발견과 재활'이다.
백일 전 아기가 많다. 목을 가누기 전 늘 한 방향으로 하고 있다. 통증을 유발하지 않지만 자세 및 신체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그랬다. 결국 '사경'판단을 받았다. 처음부터 '사경'이란 걸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아무것도 몰랐다. 무지했다. 어린이 보험을 들었을 때 '사경'이라는 단어가 존재했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물론 진단 후 바로 200만 원이라는 보험금을 받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병원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아이에게 펼쳐질 수만 가지 고통이 펼쳐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사경'으로 인해 딸 단아는 두 가지의 두상 질환을 얻게 되었다. 단두증(뒤통수가 평평한 것)과 사두증(두상 한쪽이 납작한 것)을 동시에 얻은 것이다. 최악이었다. 어쩐지 100일 전부터 아이의 얼굴이 유난히 커 보였다. 한쪽이 유난히 함몰되어 비대칭이 된 것이다. 고민하고, 의심하고, 걱정하고, 소아과를 전전하다 이지경에 이르렀다.

딸 100일 촬영


특히, 여자아이라서 더 걱정이 되었다. 얼굴 골격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운명의 치료는 의외인 곳에서 시작되었다. 장모님, 우리 장모님(https://brunch.co.kr/@theking/32) 편의 주인공이신 k-장모님께서 이 소식을 접하시고 밤을 새우셨다고 한다. 너무 놀라시고 걱정이 많으셨다. 검색하고 또 알아보신 결과 유명한 '재활 소아과'를 발견하시고는 아침에 연락을 주셨다. 다시 생각해 봐도 참.. 감사한 일이었다.



 


치료의 시작,

사경을 헤매는 아이

힘내자!


사경을 치료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일이었다. 단순히 자세 교정의 문제가 아니었다. '목' 근육 강화 및 밸런스 훈련을 통해 아주 천천히 그리고 스스로 목을 가눌 때까지의 힘을 기르는 게 중요했다. 매주 눈물바다가 시작되었다. 단아는 선생님만 봐도 눈을 부릅뜨고 매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직감했다. 웃으며 다가오는 재활 치료 선생님의 단호함을 말이다. 


매일 순간순간 집에서도 재활 치료는 계속되었다.

선생님은 단아의 손, 머리, 목, 등, 다리 등 이완과 수축 훈련(스트레칭)을 위해 애쓰셨다. 말이 스트레칭이지  아이에겐 엄청난 고통이었을 거다.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몸을 타인의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발달을 시켜야 하는 거다. 근육을 풀고, 이완하고, 압박하고, 늘리면서 단아의 몸은 조금씩 변하는 과정을 겪었다. 그럴수록 단아는 유난히 힘겨워했다. 수많은 눈물로 젖은 사진들과 기억으로 도배가 되었을 텐데 아픈 기억이, 고통의 감정이 남아있진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치료의 과정은 어른과 비슷했다. 바른 자세를 위해 스트레칭과 운동을 한다. 주변 근육을 단련시켜 튼튼하고 곧은 자세를 만드는 거였다. 수개월 동안 아이는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물론 매번 눈물바다였다. 1시간 동안 적응도 될 법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금까지 본 단아의 가장 진하고 짠한 눈물로 기억된다. 그런 시간이 계속될수록 엄마와 아빠의 노력도 계속되었다. 자세 교정을 위해 배운 대로 집에서 반복 연습과 치료를 해야 했다. 물론 엄마는 너무나 어려워했다. 아이가 힘들어하며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의 고통을 보는 엄마는 힘들었고, 다신 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을 거다. 그래도 나는 힘이 셌기 때문에 조금씩 훈련을 도왔던 것 같다. 고마웠다. 지금의 평범한 아이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사경 재활 치료는 '도수치료'이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다. 보험을 들지 않았더라면 큰 리스크가 있을 뻔했지만 다행히 보험의 도움을 받았다. 살면서 보험 덕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런데 왠지 씁쓸한 건 왜일까.





사경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두증과 단두증'이 빌런이었다.


사경으로 인해 딸의 두상은 엄청난 비대칭이 시작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늦지 않게 발견했다는 거다. 어른들의 머리를 한 번 만져보길 바란다. 과연 완벽한 동글동글한 두상이 있을까. 대부분 울퉁불퉁할 테지만 머리숱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비대칭의 정도만 다를 뿐이다. 공부하고, 물어보고, 우리는 직접 경험했다. 어른들은 간혹 그랬다. 유난히 노인 분들이 그러신다.


'그냥 놔둬도 될 것을.. 엄마의 욕심이다. 애가 얼마나 힘들까'


과연 그럴까? 되묻고 싶다. 그냥 놔뒀다면 미래의 우리 딸은 괜찮았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라는 우리의 판단이다. 절대적으로 부모의 적극적인 보호와 관찰, 육아를 통해 아이는 잘,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했다. 최선의 결과를 위해 의료 기술의 힘을 빌려보기로 말이다.


두상 교정 헬멧을 착용하기로 했다.

힘든 결정이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교정 기구였다. 수백만 원이 들고, 보험도 되지 않았다. '성형'등의 미용으로 분류가 되기 때문이다. 부모의 선택인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혜택 받지 못한 환경이었다. 국내에 기술이 도입된 건 16년 전이라고 들었다. 소수의 사람들만 치료를 받았지만(의료기기이기 때문에 '치료'개념) 최근 몇 년 사이 수많은 '엄마들의 입소문' 덕분에 나름대로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 것 같다.


두상 교정 헬맷은 대형 병원의 진단서가 있어야 교정이 가능한 기술이다. 국내에 몇 곳 없는 '두상교정모' 관련 센터에서 진행이 가능했다. 아이의 두상을 스캔하고, 사두와 단두를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정상', '권장', '치료' 등 여러 단계로 구분하여 부모에게 결과를 보여주게 된다. 물론 여기서도 선택이지만, 나의 딸 단아는 가장 부정의 결과치를 얻게 되었다. 철렁.. 그리고 큰 아쉬움이 들었다.


아주 간혹 '헬멧'을 착용하는 아이를 본 적이 있었다. '얼마나 힘들까, 뇌가 다친 걸까?' 등의 무지에서 오는 걱정과 관심을 보였던 나였는데, 증상은 다르지만 나의 딸이 헬멧을 써야 한다는 상황이 무척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통'과는 별개의 '교정치료'라는 게 위안이면 위안이었다.


한 여름의 치료가 시작,

그리고 우리는 가을을 맞이했다.


2월에 태어난 단아는 약 100일이 지나서야 최종 판단을 받았다. 그리고 7월, 여름이 한창 시작되던 날에 아주 하얗고 작은 헬멧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단아야 괜찮아? 이렇게 헬멧이 잘 어울릴 수가!''


아기는 원래 성인보다 열이 좀 높은 편인데 여름이 되었고, 헬멧까지 착용하다 보니 땀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루 24시간 중 23시간 가까이 헬멧을 착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대한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 별도의 쉬는 시간 없이 종일 착용하기로 했다.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순둥이 딸 덕분에 모든 게 가능했다. 다른 아이들은 첫날부터 울고 난리라는데 단아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헬멧을 쓸 때도 얌전했고,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외출할 때도 대부분 원래 쓰던 아이처럼 조용했고, 차분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지금도 단아는 책을 좋아한다.
헬멧의 원리는 이랬다. 아이의 두상은 12개월 전후까지 커지게 된다. 앞뒤/좌우 모두 균형 있게 자라게 되는데 계속해서 자라는 아이의 두상을 고려해서 튀어나와야 할 곳은 공간을 주고, 반대인 경우엔 공간을 없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최대한의 비대칭을 대칭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말 그대로 '모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매월 1~2회 정도 두상을 스캔하여 눈이 아닌, 데이터를 통해 사두와 단두 정도를 체크하고, 헬멧 안쪽의 두께 등을 깎아내어 머리 모양을 예측, 수정하게 된다.




아이는 인싸가 되기 시작했다.

아주 하얗고, 작은 헬멧을 쓴 아이는 어디를 가더라도 눈에 띄었다. 마트를 가도, 동네 산책을 가도, 카페를 가도, 가끔 만나는 친척들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귀여움'이 넘쳤던 거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안전모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말 그랬다. 헬멧을 쓰면 왠지 더 귀엽고, 앙증맞아 보이기도 했다. 얼굴은 점점 커가는데 헬멧은 그대로니 뭐랄까.. 음.. 아무튼 귀엽다!!


덕분에 휴대폰 사진첩에는 몇 개월 동안 헬멧을 쓴 사진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또한 추억이고, 기억이기에 우리는 상황을 이해하고, 모든 걸 내려놓은 채 단아에만 집중했다. 오히려 더 즐거운 일들이 많았고, 평소의 단아에게 더 관심을 갖고, 애정을 담아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았다. 아픈 만큼, 단아 덕분에 우리 가족은 더욱 끈끈한 '팀'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딸 단아가 인싸였기 때문에 유치하지만 아빠인 나는 뭔가 기분이 좋기도 했다.

물론 단아는 엄청난 고통을 견디고 있는 게 뻔했다. 샤워를 할 때마다 단아 머리에서는 온갖 쉰내가 진동했고, 땀으로 인해 빨갛게 달아오른 두피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잘 견뎌줘서 너무 고마워. 단아야


사경 그리고 두상 교정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긴 여름이 끝날 것 같지 않았는데 어느새 가을이 되어 선선해진 바람도 느낄 수가 있었다. 여름 내내 빵빵한 에어컨 덕분에 떨면서 지냈는데 이제는 제법 기분 좋은 기운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그동안 단아의 사경과 두상은 엄청난 속도로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조금 더 부모의 욕심과 걱정 그리고 보다 완벽한 결과를 위해 치료를 더 이어갔던 게 사실이다. 나중에 딸아이가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지 걱정이 들지만 부디 부모의 선택이 옳았고, 웃으면서 얘기하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병원을 갈 필요가 없어졌다.

4개월의 긴 재활과 치료, 그리고 최종 2개월 뒤 재확인한 결과 평범한 아이의 모습으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약간의 두상 비대칭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아내는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 단아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었을 거다.

감동의 눈물이었을까? 

결혼 후 아이를 가졌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즐거움만이 계속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멘털이 흔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부모보다 아이의 성장 속도는 빠르고, 힘은 강력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육아 초보 수준이지만 지금의 느낌은 분명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엄마와 아빠는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사진과 영상을 순간순간 담아 기록하고, 기억하길 바란다. 언제나 '관찰육아'를 통해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부모의 냄새를 맡게 해 주고, 엄마와 아빠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말이다. 


아내와 나는 마흔에 아이를 낳고 늦은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잘 먹고, 잘 크는 단아를 보면서 힘을 내기도 한다. 그런 단아가 모든 치료를 졸업했다. 그리고 다음 주엔 첫 돌, 생일을 맞이한다.


..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왕조시대

왕조시대 Jr. 단아를 응원합니다.

instagram, @baby.wangjo.jr


+


https://brunch.co.kr/magazine/imfather2 ep.01~e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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