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랑 아빠랑 ep.03
추운 겨울, 이 세상에 딸 '단아'가 태어났다. 노산의 산모였지만 자연 분만에 도전해보고 싶은 아내였다.
하지만 10개월 꽉 채운 딸은 무려 2일이나 지나서 새벽에 양수를 터트리며 세상에 나올 준비를 시작했다.
덤덤하게, 태연한 태도로 천천히 짐을 싸서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정된 계획대로 '제왕절개'
나이 때문일까, 제왕절개 때문일까
아침 9시에 수술을 시작해서 16분 만에 태어난 단아와 다르게 아내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다. 4박 5일 동안 내내 통증과 싸워야 했고, 인류의 진화과정처럼 점점 직립 보행을 할 때가 되자 자연스럽게 퇴원을 했다.
약 2주간의 조리원, 누가 편하게 쉬어가는 기간이라고 했을까
24시간 틈틈이 자는 시간 빼고는 아이 모유 수유하기, 마사지받기, 유축하기 등 모든 게 처음인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은 아내는 매일매일이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솔직히 조금 어색했지만, 흥미로웠다.
2시간마다 깨는 딸, 뭐부터 해야 할지 정신없는 나와 아내
하지만 우리에겐 '장모님'이 계셨다. 하나부터 열까지 당황하지 않고 갓난아이를 케어하셨다. 노장의 힘과 지혜는 감히 말로 설명하기엔 어려운 그런 존재로 보인 게 사실이다. 사실 얼마나 걱정이 많았는지 모른다. 매일 영상 통화로만 보던 딸이 집에 온 첫날,
''울면 어떡하지?'', ''똥은 싸나?'', ''난 뭘 해야 하지?'', ''안다가 떨어지면?''
걱정이 태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딸과 함께 또 한 명의 식구, 할머니가 생기게 되었다.
장모님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 2일 동안, 우리 집으로 출근을 하신다.
오전 11시에 출근하시고, 오후 5시가 넘으면 퇴근을 하신다. 6시간 근무라고 하면 오해다. 서울 마포에서 5호선 전철을 타고 25개 역사를 거쳐 집에 오신다. 왕복 2시간을 포함하면 거의 8시간을 넘게 출/퇴근 근무를 하시는 거다. 68세의 나이, 노장이다. 주 3일 오셨지만 지금은 주 2일 화요일과 금요일에 출근을 하시고 있다.
장모님의 주 역할은 '육아 그리고 아내의 정신적 케어'서비스다.
출근과 퇴근하는 동안 카톡으로 '가는 중, 도착' 알림을 시작하고 종료를 하신다.
현관을 열고 들어오시자마자 손을 씻으시고 ''아이고 우리 단아~ 단아야! 우루루루루루~'' 콧노래와 애교 섞인 하이 톤의 말투로 자다 깬 딸과의 조우를 이어가신다. 양손엔 빈손일까 절대 아니다. 육아에 지친 아내와 사위를 위해 '각종 반찬' 그리고 '국'까지 요리해서 가져오신다. (장모님.. 아니 어머니..)
그리고 시작된 육아.
장모님은 손녀딸을 무척 사랑하신다. 9개월 차에 진입한 손녀는 상위 10%의 성장을 보이고 있는데 결코 가볍지가 않다. 하지만 첫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 안으면 쭉 안아주신다. 먹이고, 재우고, 놀 때도 힘드실 텐데 말이다. 결국, 병원에 다니시면서 물리치료까지 받고 계시지만 안쓰러우면서도 감사하다.
마지막.
아내의 정신적 케어 서비스,
참 신기했다. 아내는 유독 장모님이 오신 날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다. 그리고 퇴근하시면 조금 다운되어 있는 모습을 종종 봤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장모님이 곁에 있는 것 자체로 위로와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엄마에게 위로받고, 엄마는 엄마에게 사랑받고, 엄마는 엄마에게 보살핌을 받는 시스템:)
아, 이건 빼먹을 수 없다. 우리 장모님은 매주 월요일 PCR 코로나19 검사를 받으신다. 혹시나 모를 감염에 대한 예방 차원에서 말이다. 9개월 동안 변함없이 우리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장모님, 완벽한 노장 투혼이다.
그렇다. 9개월 동안 장모님께서 많이 힘드셨다. 말씀은 잘 안 하셨지만 우스갯소리로 병원에서 한 말이 있었다. ''뭐 무거운 거 들고 다니세요?''라고 말이다. 그 무거운 건 '손녀'였다.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가신 거다. 그리고 마포에서 이곳까지 출근과 퇴근을 하려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다.
가끔, 처가에 갔다가 아내가 굉장히 편안해하는 걸 보고 즉흥적으로 의견을 냈다.
격주로 금요일에는 저희가 올게요!
그렇게 우리는 얼마 전부터 금요일에 아침 일찍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마포로 출동한다. 물론 나는 모셔다 놓고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를 자처하며 바깥 사무를 보고 있다.
처가는 그래도 훨씬 넓은 거실이 있다 보니 네발기기하는 딸 단아가 돌아다니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게다가 아동 자동차가 두 대가 있다 보니 일어서고 싶어 하는 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플레이그라운드가 되기도 했다. 아내 또한 처음엔 부담스러워했지만 지금은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참, 다행이다
아이를 키운 다는 건 보통일이 아닌 게 확실하다. 엄마와 아빠만 있어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더 큰 울타리가 필요했었던 게 아니었을까. 부모가 된 다는 건 실로 상상 이상의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내일이 기대가 되지만, 전혀 예상할 수가 없다. 다만 이미 부모가 된 어른의, 어쩌면 여전히 부모의 삶을 이어가는 어른의 지혜가 큰 힘이 되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오늘의 [기록]은 '장모님'이었다.
장모님, 우리 장모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글을 마치며, UV의 장모님(FEAT.카더가든)의 가사를 남겨본다.
보내주신 김치는 언제나 맛있군요
보내드린 용돈은 아버님은 몰라요
지난 추석에 못 가서 나 죄송해요
일이 너무 많아서 언제나 핑계뿐이네요
미안해요 예쁜 따님 고생만 시켜서
나 때문에 주름살이 계속 늘어만 가네요
처갓집에 가게 되면 오래오래 보내주지 마세요
집에 오면 고생뿐이니까 장미꽃 한 송이 못했네요
당신도 여자인데...
우리는 왕조시대
왕조시대 Jr. 단아를 응원합니다.
+
ep.01 그동안 육아 좀 해봤다.
https://brunch.co.kr/@theking/30
ep.02 나는 퇴근을 두 번 한다.
https://brunch.co.kr/@theking/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