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랑 아빠랑 ep.04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2019년 9월 결혼을 했다.
그리고 2년 뒤, 2021년 꽤 더웠던 6월 15일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개월 꽉 차고 2일이 지나서야 세상에 단아가 나왔다. 결혼 3년이 참 쏜살같다.
단아는 아빠를 알아보지 못했다. 너무 갓난아기 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9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은 상황이 정말 달라졌다. 언제부터라고 정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언젠가부터였으니까'
내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순간 '현관' 문소리를 듣자마자 소리를 지른다. 얼마나 좋은 건지 웃는 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운다. 아빠의 상상이었나 싶지만:) 네발기기를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내게로 기어 오기 시작했다. 조금은 느리지만 아빠를 향해 오는 나의 딸이었다. 이거야 말로 '행복'이라는 감정 아닐까
어느 영상에서 봤다. 아빠가 집에 오는 순간, 네발기기로 엄청 빠르게 긴 거실을 가로질러가는 모습의 아기를 말이다. 난 언제 그런 순간이 올까 싶었는데 시간이 그만큼 흘렀나 보다. 나의 딸, 단아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아내는 임신하고 지금까지 아이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하고 있다. 말 그대로다. 개인의 삶의 100%를 전부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그만두고, 사회생활을 뒤로하고, 어쩌면 모든 관계에서의 '단절'을 통해 말도 통하지 않은 아기와 새로운 사회생활과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답답하고, 외롭고, 힘들 것이다. 사업 핑계로 더 많은 시간을 내서 적극적인 육아에 참여하고 있지만 아내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절대. 게다가 코로나 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니 아이와 엄마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했던 삶이었다.
그런 아내가 '외출'을 했다. 직장으로 치면 워킹데이 7시간 정도 집을 나선 것이다.
아침부터 샤워를 하고, 머리를 손질하고, 오랜만에 메이크업을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비싼 호텔에서 맛있는 양갈비가 나오는 뷔페를 먹기로 했다고 한다. 단아를 아빠한테 오롯이 맡기는 게 걱정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절대적으로 그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딸 단아를 잘 돌봐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아내가 외출 준비를 다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옷을 서둘러 입고, 단아를 데리고 20분 정도 운전해서 에스코트를 해줬다. 그리고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딸과 집에 왔다. 기분 좋은 service. good. 좋았어!
집에 오니 조금 '멍'했다. 지금부터 뭘 해야 하지?
잘 시간인데 딸은 잠이 오질 않는 건지 정신없이 돌아다니거나, 가만히 있질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배고픈데 나도 밥을 먹고 힘을 내보자. 1분만 돌리면 되는 '스파게티'를 먹으며, 딸에겐 '배'를 잘라서 과즙망에 넣고 간식을 만들어 줬다. 잘 먹는다. 평소 저녁 육아 때 그리고 아내가 해왔던 것들을 상기시켜 봤다. 그대로만 하자.
첫째, 무조건 놀아준다.
돌아다니고 싶으면 같이 돌아다닌다.
옹알이를 하면, 같이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주고, 소리를 받아준다.
둘째, 책을 읽어준다.
다행인가. 딸은 '그림'이 많은 책을 읽어줄 때 반응이 좋은 편이다.
'뽀오오오옹...' '나는 절대로 방귀 안 뀔거에요!' '뽀오오오오오..' '나는 절대로..절대...아아..뽀오오오오' 버튼을 누를 때마다 다양한 방귀 소리가 나는 책을 가장 좋아한다. 노래로 불러주고, 목소리를 변조해서 읽어주고, 목이 쉴 때까지 읽어준다.
셋째, 오줌과 변..좋아 다 받아줄게
개인적으로는 '기저귀' 전문가 수준이다. 기가 막히게 소변과 대변 신호를 잘 캐치한다.
대변은 반드시 물티슈로 닦아 주고, 물로 씻겨주는데..좋아.. 몇 번이고 싸라.. 다 받아준다.
넷째, 재워주기
조금 어려운 코스다. 최근 좀 컸다고 애착 관계가 엄마한테 심하게 들렸는데, 예전과 다르게 아빠 품에서는 잘 자려고 하질 않았다. 그런데 웬일일까. 몇 시간을 놀았더니.. 잘 잔다. 아싸. 운이 엄청 좋았다. 옆에 살짝 누워서 40분을 같이 잤다. 그리고 단아는 1시간을 더 잔 것이다.
7시간은 이렇게 지났다
엄마가 외출한 건 '딸'에겐 '비상'이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엄마'에겐 기분 좋은 '비상'일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나에겐 '비상' 보다는 '딸과 아빠만의 기분 좋은 7시간'이라는 작은 그림이 만들어진 걸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엄마에겐 이런 시간이 꼭 필요했는데 연말이 되면서 모임이 성사된 게 너무 다행이었다. 엄마도 휴가가 필요하다는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본 적이 있다.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인데, 엄마의 마음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딸을 위해, 일하는 남편을 위해서겠지. 어떤 핑계를 대야 할진 모르겠지만, 딸과 아빠의 시간을 더 만들어 가야겠다는 다짐.
결국 '비상'은 아니었다. 고작 매일 반복되는 아내와 딸의 시간에 비교하면 겨우 '하루'였으니까 말이다.
아내와 나는 딸 단아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를 원한다. 얼마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부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떤 '아빠'여야 할까? 가족이 완성된 만큼 앞으로 펼쳐질 인생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다만 '나도 아빠가 처음'이기 때문에 조급함보다는 '천천히 든든한 아빠'가 되고 싶긴 했다.
아내에겐 ''비상(非常)' 아닌 같이 '비상(飛上):날아오르다'할 수 있는 남편이자,
딸에겐 '7시간 같이 있어도 충분히 즐거운' 아빠가 되면 좋겠다.
지금 딱, 아빠의 역할이 정의가 되었다.
우리는 왕조시대
왕조시대 Jr. 단아를 응원합니다.
instagram, @baby.wangjo.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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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1 그동안 육아 좀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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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2 나는 퇴근을 두 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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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3 장모님, 우리 장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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