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랑 아빠랑 ep.13
유난히 추운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겨울'은 가까이하기엔 다소 거리감이 있는 계절이다. 특히 나의 딸 단아처럼 11개월 된 아이들에게는 하얗게 예쁜 눈이 쌓여도 그저 그런 눈에 비치는 자연의 풍경일 뿐이었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면 매일 하던 산책도 나갈 수가 없다. 카페나 특별한 목적지가 없다면 더욱 그렇다. 육아하는 엄마 그리고 아빠도 고민이다. 세상의 다양하고 즐거운 바깥세상을 구경시켜 주고 싶은데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아의 놀거리에 대한 고민이 한 창이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지인(형과 형수님) 부부와 최근 연락할 일이 많아졌다. 오래전부터 모임에서 알고 지냈지만 '일' 핑계로 이야기 나눌 시간이 많아졌고, 동시에 형은 둘째가, 우리 부부에겐 첫째를 임신하게 되어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주제가 확장되면서 교류가 많아졌다. 서로의 일상을 사진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감하고, 나누면서 우리는 가족 모임을 갖기로 약속했다. 결혼을 하면 오랜 친구들하고 만나기보다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가족 모임이 그렇다. '아이'라는 큰 화두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겨울이 되었고, 외부에서 만나기보다 비교적 편안하고 안정적인 '집'을 택했다.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어른보다 '아이'들이 조금 더 가깝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게 되었다. 겨우 뒤집기 할 때쯤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자신들의 몸을 겨우 가눌 정도였고, '인지'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서로에게 관심을 갖진 않았던 것 같다. 불과 몇 개월 차이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인식'도 충분히 하고 있고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런저런 이유로, 핑계로 '어른들의 모임'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것 같다. 단, 아이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서 일방적인 모임 참여는 위험하다고 한다. 낯을 가리는 아이들에게는 자칫 큰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양쪽의 호랑이 띠 딸들은 부모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부담도 적고, 사회성은 나름 잘 발달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오늘, 단아의 친구를 만나러 간다.
만나기 전 형의 말에 의심을 했다. ''우리 딸은 이미 걷고 있다..'' ''뭐라고요?'' 직접 눈으로 봐야 했다. 정말 그랬다. 우리가 집에 들어가는 순간 형의 딸 '사랑'이는 느리지만 스스로 일어서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놀라운 건 잠시 뿐이었다. 신기했다. 그리고 너무 귀여웠다. 단아와 똑같은 2월생을 만나는 일도 흔치 않았지만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의 모습은 그저 흥미로울 뿐이었다. 아주 작은 인간이 직립 보행을 하기 시작하는 걸 관찰할 수 있는 흔하지 않은 광경이니까.
아이는 보통 10개월 ~ 15개월 사이에 걷는다고 한다. 돌이 훌쩍 지나도 걷지 못할 경우엔 '병원'에서 발달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도 하지만 아이마다 다르니 걱정보다는 관찰과 상담이 우선이다. 사랑이는 빠른 편이었다. 그렇다면 단아는 느린 걸까? 따져보면 그렇진 않다. 육아백과사전 같은 발달 시기에 따라 교과서처럼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막상 걷는 친구를 만나니 새삼 부러웠던 마음인 건지, 아니면 부모의 걱정인 건지 말이다. 5시간 동안 우리는 아이를 핑계 삼아 어른들의 수다는 이어졌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맥주 한 잔 그리고 육아에 대한 수많은 주제로 시간을 이어갔다.
아이들은 언제 그렇게 가까워졌을까.
서로 만져보기도 하고, 장난감도 공유해 보고, 단아도 짚고 일어서기도 하고 열심히 네발기기를 번갈아가며 친구네 집을 휘젓고 다녔다. 행복해 보였다. 매일 지내는 집이 아니라 처음으로 친구네 집에서 두리번 두리번 거리더니 이내 적응하고, 잘 놀고 있는 표정에서 드러났다. 부모가 되어 아이들에게 갖는 기대와 욕심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땐 부모님의 바람이 참 많았던 시기다. 공부도, 일도, 직장도, 연애도, 결혼도 간섭과 조언이 많았던 세대이다. 그런 부모들의 아래에서 자란 우리 40대들은 어떨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부모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가치관을 갖는 세대인 것 같다. Z세대는 아니지만, X세대도 아닌 부모가 된 우리들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감성과 경험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세대이다. 개인주의적인 모습도 있고, 독립 적인 모습도 많다 보니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보다, 스스로의 인생을 잘 설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과 응원을 해주는 부모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 듯하다. 대체적으로 부모들을 만나거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그렇다.
걷는 친구와 아직은 네발기기 하는 나의 딸을 봤다. 먼저 걷는 아이가 부러웠던 건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의 도움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엄마의 손이 덜 간다고 해야 할까? 나의 딸은 네발 기기와 짚고 일어서고 넘어지고를 반복하다 보니 조금 더 위험요소에 노출이 잘 되어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걱정과 조심스러움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뭔가 '묘한'감정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모르겠다:)
11개월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사실 단아는 누구보다 발육이 빠르고 남다른 편이다. 10억 건의 데이터 통계를 비교했을 때 상위 10% 안에 드는 키와 몸무게, 이빨도 8개째가 드러나기 시작했으니 발육이 빠른 편이기도 하다. 다만 아직 걷지는 못했다. 친구네 집을 다녀온 뒤, 얼마 후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소파를 짚고 옆으로 다니더니 갑자기 손을 놓았다. 그리고 직각으로 이어져있는 주방놀이 쪽으로 이동했다. 허공에 두 손을 자유롭게 놓은 채, 세 걸음을 움직여 이동한 것이다. 대박...
시작에 불과했다. 식탁 주변에서, 화장실 앞에서, 소파에서, 방에서도, 매일 한 걸음, 두 걸음씩 늘더니 이제는 쉽게 넘어지긴 하지만 스스로도 걷기에 꽤나 재미가 들린 듯했다.
''와.. 이제 잘 걷네?'', ''왜 이렇게 오래 서 있어? 괜찮아? 재밌어~?"
이번에도 단아는 부모의 보이지 않는 걱정을 뒤로하고 교과서대로 천천히, 그리고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했다.
아이들은 꽤나 신기하다. 한 인간이 직립보행 하는 과정을 보면 돌봄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겠지만 신체가 발달함에 따라, 학습과 의지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하지 않은가.
아이를 보면서 많은 걸 느낀다고 한다. '인생'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는데 바로 이런 거다. 한 없이 작고 힘이 없는 우리 인간이지만 결국 학습하고 성장하면서 일어선다는 것이다. 힘든 일이 있어도 단아의 하루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힘을 얻는다. 우리 가족에게 단아의 존재는 자동차의 엔진과 같았다.
우리는 왕조시대
왕조시대 Jr. 단아를 응원합니다.
instagram, @baby.wangjo.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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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magazine/imfather2ep.01~ep.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