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사진가의 옆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사진들을 '많이' 가져간 지인
한 번의 큰 홍염이 아닌 꺼지지 않는 마지막 잉걸불 같았던 조력자
사진을 오래 했지만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터라, 이따금 누군가 극찬에 버금가는 칭찬을 해줄 때 상당수 부담스러운 감정을 숨길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생각이 지속되다가 나온 나름의 대답은 "사실 난 사진을 전혀 못하는데, 내 또 다른 자아인 대숲사진가가 사진을 잘하는 거야."라는 지극히 마블 영화들을 많이 본 사람이 할 법한 엉뚱한 대답으로 둘러대곤 했다. <헐크>나 <문나이트> 등을 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자아라고 규정해버린 이 대숲사진가는 일상 속에서 내 '본캐'의 삶 도중에서도 중간중간 튀어나오곤 한다. 꼭 모델님들과 함께 하는 대숲사진가 촬영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사진 그 자체를 즐길 일이 너무나도 많은 탓이다. 그 덕분에 나름 내 옆에 자주 있게 됨으로써 내가 찍는 사진들을 고스란히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내가 그럴싸하게 찍어낸 음식 사진, 장소의 기록, 그리고 "야 지금 여기 좋다. 너 여기 있어봐." 라며 찍어주는 소소한 사진들이 그랬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한 두장은 아니고 짧은 시간 동안 꽤 여러 장을 열심히 지인들을 찍어주는 불시의 순간들을 나만의 별칭으로 '3분 대숲 사진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위와 같은 이야기들을 짚고 다시 돌아봤을 때, 갤럭시는 그런 대숲사진가의 옆에서 자연스럽게 얻어가게 되는 사진들을 지금까지 가장 많이 누려온 '주변인'중 한 명이다. 문득 알고 지낸 세월을 되돌아보니 이 친구와 내가 알고 지낸 시간이 어느덧 6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도, 이 친구만을 위한 촬영을 그것도 많이 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찍어본 인물 사진 중에 기억에 남는 컷들을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분명 그중에 갤럭시의 사진이 들어가 있다. 대숲사진가 촬영본을 보관하는 아이클라우드 내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한데 모으는 게 일이 되겠지만 그것은 반대로 뒤집어 생각했을 때 크게 일을 벌이지 않았더라도 지금껏 길게 대숲사진가와 함께 해주었다는 사실과도 같다. 감사한 일이다.
당사자 시점 기준으로 '다소 정 없게' 표현해보자면 갤럭시는 대숲사진가 세계관의 레전드는 아니지만 레전더리 한 순간들을 꽤 많이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레전드가 아니면 어떤가. 내가 동아리를 은퇴할 쯤에 처음 신입으로 들어왔던 갤럭시를 뒤풀이 술자리에서 처음 만나서 사진을 찍어줬던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난 이 친구가 내 프레임으로 들어오던 일을 반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첫 술자리에서 봤던 막내 동생의 느낌처럼 마냥 밝음보다는 맑다는 느낌에 가깝다고 느꼈던 갤럭시의 사진들을 난 좋아했고, 귀하다고 늘 생각했다. 한 명의 큰 규모와 놀라운 결과물을 얻어가는 촬영이 있지만, 누군가와 긴 시간 동행을 하면서 그 사람의 성장을 옆에서 관찰하는 과정 또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행운이 결코 아니기에 지금도 감사하다.
루미큐브라는 보드게임에는 소위 말하는 '조커' 칩이 존재한다. 이 조커의 역할은 모두가 알다시피 루미큐브 게임 플레이 중 특정 숫자들의 조합을 만들어 내 손에 남은 숫자 칩들을 털어내기 위해 내가 원하는 그 어떤 숫자로도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만능 칩이다. 갤럭시는 그런 대숲사진가의 조커 같은 조력자였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세계관의 레전드가 아닐지라도 적어도 대숲사진가의 세계관에 갤럭시의 이름이 빠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주제를 정하고, 소재와 테마를 정하고 그다음에 모델을 선정하여 연락하는 일반적인 과정이 아닌, 그냥 이 친구 자체가 하나의 제목이고 테마였다.
나와 교류가 잦았던 만큼, 내가 언제 어디서 펼칠지 모르던 사진들을 옆에서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가져갔으며, 그것들을 단순히 대숲사진가로부터 받아 들은 사진들이 아닌 그 위의 자신의 투명하고도 맑은 빛깔을 덧대어 챙겨갔다. 다만 "언제든 촬영할 사람이 없으면 대신 자신을 부르라"라는 이 친구 시점에서의 선의의 인사가 나름은 감사하고도 한편으로는 대단히 미안했다. 또한 그 이야기 자체에 대해 '중요도가 낮은 언제든 쉽게 불러낼 수 있는 친구'라는 이미지로 왜곡되지 않도록 인식을 다스리기 위해 꽤나 꾸준한 스스로의 노력도 어느 순간부터의 나에게는 과제로 옆에 따라다녔다.
복잡하게 많은 것을 고려하는 내 성격과는 정반대였어서 내가 사진 생활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거나 같이 촬영을 할 때의 고민 등도 의외의 지점에서 쉽게 풀어내어주곤 했으며, 대숲사진가가 촬영을 사실상 중단하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시점에도 많은 걱정들을 앞서 하는 나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곤 했다. 그렇게 대숲사진가의 취약하거나 디테일한 빈 공간들을 보다 튼튼하게 조각조각 채워낼 수 있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한 번의 크게 타오르는 홍염 같은 삶이나 순간을 원한다. 하지만 순우리말로 잉걸불이라고 부르는 강하게 타고 있는 꺼지지 않는 숯불과도 같이 지속적으로 붙잡아줄 수 있는 동력원도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힘과 마주할 수 있는 계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사실 아무에게나 쉽게 찾아오는 기회는 아닐 것임을 안다.
갤럭시는 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였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 친구의 여름, 가을, 겨울을 달려 나가는 과정까지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와 응원, 그리고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