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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숲사진가 Dec 03. 2022

더 깊고 먼 곳으로

모든 것과 단절된 채 우리만 있던 곳에서 한 해를 회고했다

훈이의 고향은 경상북도이다. 그의 친지분들 역시 인근 지역에서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었다고 했다. 그 친지분들께서 잡아 놓고 일궈오신 터가 몇 곳이 있던지라 일전에 몇 년 전 감사하게도 의성에 한번 초대받아 다녀온 경험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꽤나 아기자기했던 고립무원의 집에서 하룻밤을 조용히 보냈던 퍽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조용한 곳에서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개운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던 생각이 아직도 선명하다.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깊은 시골 마을 골목에 들어서면 그 집이 있다.


그즈음부터 훈이가 해줬던 이야기가 있는데, 이 집 말고도 근처의 영양군에는 할머님께서 사셨던 집이 있으며 그 집은 그야말로 시골 그 자체의 정취가 있는 집이라는 것이었다. 아궁이로 군불 때어서 난방하는 집이라고 하였으니 그 한 가지로 대부분의 설명이 필요충분조건으로 떨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와 꼭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그 생각을 내내 버리지는 않았지만 농도가 희미해져 갈 즈음이었던 올 가을에 갑자기 그 영양군의 성훈이 할머님 댁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 어느 해 보다도 많은 일들을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가며 겪었던 탓일까, 한 해 동안 끝없이 흩날리며 나에게 들러붙어 있던 잡생각들을 그곳에 모두 한데 모아 던져놓고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군불 때고 있는 아궁이 속에 모두 던져 넣고 가만히 앉아 별생각 없이 머물다 오고 싶었다. 큰 고민 없이 필름도 담아보고 말이다.




나이와 시간을 집어 먹음으로써 필연적으로, 더 많은 일과 책임감을 부여받게 되며 일상에서의 우리는 포르테와 메조 포르테를 거쳐 포르티시모까지 이르고 있는 시기였다. 포르티시모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아주 강하게' 연주되고 있는 우리의 일상 속에 다른 이야기들을 쉽게 놓쳐버리거나 본연의 진짜 자신 그 자체를 잊고 지내기도 한다. 그 포르티시모 속에서도 이번 떠나고 싶다는 욕구는 선명하게 울리고 있었다. 노는 것만큼은 기가 막히게 빠릿빠릿해서, 곧바로 군 전역 이후에 고향에 낙향해 있던 훈이에게 연락해서 조르기 시작했다. 영양군에 가고 싶다고. 이내 흔쾌히 오라는 고마운 대답을 건네 오는데, 오랜 시간 놔두었던 빈집이니 자신이 한번 점검하러 다녀와야겠단다. 그렇게 군불이 방바닥의 열기를 서서히 올려가는 듯한 기분의 설렘이 다시 마음속을 지피기 시작한다. 


겨울 속 금요일 저녁의 성수는 차가운 공기만이 감돌고 있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따뜻한 불빛들만이 가득하다. 한주의 고단함을 그 불빛 속에서 모두 털어버리겠다는 비장하기까지 한 활기가 감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금요일 밤으로부터 여정을 시작하며, 동시에 그 서사를 담으며 퇴근하고 온 탁을 함께 차에 태워 여정길에 오른다. 장장 3시간 반에 걸친 심야 운전길이었다. 아무 걱정도, 부러울 것도 없는 금요일 밤이었으며 이 길의 끝만 도달해내면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다른 광경을 볼 것이라는 설렘과 함께 떠났다.

 

서울밤을 뒤로 한 채 떠난다. 이 길의 종점에 다다라 눈을 감으면 다음 눈을 뜰 때에는 다른 광경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었다.
새벽을 달려 맞이한 영양 시골집에서의 아침


새벽까지 달려 도착한 영양 시골집에서 처음 맞은 아침은 날카로운 추위가 느껴지는 차가움이었지만 그를 그대로 들이마셨을 때 폐부까지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다. 시계를 저 멀리 발치에 놔두었지만 시간을 굳이 확인 안 해도 좋을 것만 같았다. 물론 그날 오후에는 안동역으로 기차를 타고 내려와 합류할 익스타를 픽업하기 위해 읍내로 다 같이 다시 나가야 했지만 말이다. 


이런 장소에 오게 되면 많이들 꺼내는 서두는 "... 했지만 부족함은 전혀 없었다."라는 수식어를 많이 구경한 기억이 있지만, 솔직하게 이 동네와 집에는 부족한 게 매우 많았다. 그런데 사실 사진도, 여행도, 우리의 삶도 언제나 완벽하기만 해야 한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피곤하고 불행할 테다. 그래서 무언가 많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거나 없었던 이 집이 사실 마음에 들었다. 그런 것들을 기대하고 이 깊고도 더 먼 곳으로 온 것이니 오히려 큰 만족감을 느끼며 장소를 만끽했다.


아 시골마다 꼭 저런 시계와 라디오 하나씩은 있었다.

집구석구석을 구경하고 있자니 참 오묘하고도 재밌는 집과 동네였다. 분명 매일매일 돌보지 않던 빈집이라고 했는데, 집 곳곳에는 마치 며칠 전에라도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 것만 같은 온기가 있는 것만 같았다. 물론 훈이가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부터 청소해준 덕일 것이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무언가 멈춰 있을 것 같은 집의 느낌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했다. 집 마당에 걸려 있는 시래기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먹게 된 것도 있었다. 


물론 세월의 흔적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기에 불 피우는 드럼통이 녹슬어 한쪽이 뚫려 있는 모습이라거나, 지금은 더 이상 키우지 않는 닭을 위한 둥우리가 한쪽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볼 때, 그리고 잡초들이 시들어 죽어 있는 텃밭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장독들을 보았을 때는 역시 오래된 집은 맞다는 것을 실감했다. 물론, 아무래도 좋았다. 이 집구석구석에 생기와 활력이 부족해 보이는 부분들은 우리 넷이 가진 것들로 채워 넣으면 될 것이었다.


이 사진들을 보고 '숙소 정보를 알려달라'는 질문을 주변으로부터 몇번 받았다. 그만큼 정취가 훌륭한 곳이다.

내가 당초 생각했던 '고요하고 잔잔한 시간'보다는 우리 넷은 왁자지껄 하고 꽤나 흥을 올리며 깊은 시골 마을의 겨울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넷 모두가 다른 처지의 다른 이야기들을 서로 한 장씩 넘겨가며 추운 시골 밤이 익어가고 있는 시간 속에 있자니, 그리고 말없이 잘 타고 있는 불을 보고 있으려니 꽤 괜찮은 방식으로 11월을 보내주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때 마침 집에서 모아두었던 폐지들을 모두 들고 와 아궁이에 한 장 한 장 던져 넣고 있자니, 올 한 해 스쳐간 좋은 것들과, 나빴던 것들, 얻은 것들과 잃은 것들 모두가 함께 조각조각 딸려 나온다. 모두 미련 없이 아궁이 속에 던져 넣기로 한다. 올 해의 기점들을 돌아보는 글을 쓸 때마다 '올해의 날씨 같은 2022년'이라고 말버릇처럼 굳어가고 있는데 내년에는 굳세고 당차게 갈 수 있길 바랄 것이며, 올 해의 곡선이 어떤 모양으로 펼쳐져 왔음과 관계없이 며칠 전 과감하게 비행기표를 끊어버린 연말의 아이슬란드 여정을 잘 다녀오고 한 해의 마무리만큼은 잘하게 해 달라고. 그렇게 빌며 이 여정의 서사 속 기승전결을 담아낸 필름을 채워나갔다.


가장 깊고 먼 곳에서의 밤은 그렇게 추움 속에서의 열기를 발했고,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별들이 반짝이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2022년 11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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