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이 아닌 그냥 인간인 우리들에겐 너무 어려운 두 가지 과제
스위스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국제기구에 일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제네바에 위치한 유엔 유럽본부를 견학하고, 모델 유엔회의에 참가하면서 막연히 와 국제기구에 일하는 것은 멋지다!!라는 환상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 무렵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라 한국에서도 국제기구 커리어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여자의 인생과 커리어가 어떨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처음 유엔에 문을 두드렸던 건 마침 제네바 모델 유엔회의를 막 마쳤을 때였는데, 제네바에 있는 한국 대표부의 메일로 지원서를 넣었는데, 몇 주가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난 약속도 안 잡고 씩씩하게 한국 대표부를 찾아가서 철통보안(무슨 미사일 폭격에 대비한 것 같은) 대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로 찾아왔냐고 묻는 리셉션에 "인사담당자를 불러주세요!" 요청했다. 리셉션에서 쫓겨날 만도 한데, 의외로 한국인 인사담당자가 나왔다. 그는 내 이력서를 받았지만 지금은 인턴을 고용할 계획도 없고 나는 영어 점수도 없다고, 진작에 거절 메시지를 보냈는데 왜 받지 못했느냐고 되려 되물었다.
차가운 그의 반응에, "i don't have the score, but I have no problem working in English!"라고 영어로 대답했다.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똑같았다. 앵무새처럼 안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날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대표부의 마당을 걸어 나왔다. 여기선 안 받아주지만 언젠가 유엔에서 일하고 말 거야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인사담당자분이 굳이 자기를 만나러 찾아온 학생에게 "이런 거 이런 거 준비하면서 다음 기회를 노려보는 건 어떻겠니", 조언이라도 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미션을 찾아가서 인턴을 하겠다고 떼를 썼던 그 꼬꼬마는 외교부 인턴도 하고 유엔기구에서 인턴을 하면서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느낀 것은 국제협력, 개발협력 분야의 공여기관의 정규직 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거였다. 채용인원이 워낙 적기도 하고, 요새는 스펙이 화려한 분들이 워낙 많아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서러운 것은 아무래도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분야라 여성이 받는 차별이다.
무시무시한 필기시험을 거쳐 국내 모 공여기관의 채용면접의 최종면접에 갔다. 면접 대상자는 20명 정도이고 그 중 약 4명 이 채용될 예정이었다. (바로 다음 날 다른 그룹의 최종면접 대상자가 20명 정도 더 있어 총 채용 인원은 7~8명 정도였다.) 재미있게도, 면접자 20명 중 18명이 여자이고 2명이 남자였데, 나중에 합격자 단체사진을 보니 나와 같은 날 면접을 본 남자 두명 다 최종합격한 것을 알게되었다.
듣자하니 현직자들 사이에서도 "남자는 주어 목적어 서술어만 순서대로 제대로 말해도 합격시켜준다"와 같은 말들이 돌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다대다 면접에 남성 지원자와 함께 들어갔었는데, 면접관들이 남성지원자에게만 질문을 집중적으로 하고 심지어 잡담까지 걸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었다. 여성으로써 살아남기 위한 좋은 방법은 하나다. 그 모든 지원자들 보다도 너무나 비교가 안될 정도로 특출나게 뛰어나 뽑을 수 밖에 없는 인재가 되는 것 말이다.
물론 나는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뿐 아직도 꼬꼬마다. 정직원도 아니고, 아주 오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커리어를 지속하려는 30대 여성으로서 큰 골칫거리가 생겼는데, "도대체 국제기구의 여성들은 어떻게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가" 하는 문제다. 유엔 직원들은 적어도 4-5년에 한 번씩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 남자 직원들은 물론 아내, 아이들과 함께 생활터전을 옮긴다. 하지만 여자들은? 남편도 함께 커리어를 계속하려면 부부는 떨어져 지내기 일쑤다. 지구 반대편에 가족이 있으니 일 년에 몇 번 만나면 다행이다.
Impactpool이란 곳에서 전현직 유엔 P레벨(international staff) 직원 1,7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률은 약 10% 정도로 낮아 충분히 대표성을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꽤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40대 이상의 직원 중, 자녀가 있는 여성은 45.7% 였던데 반해, 남성은 84.3%에 달했다. 이혼율, 미혼율, 비혼율은 남성 직원보다 여성 직원에게서 훨씬 높게 나타났다. 또한 가족을 이유로 퇴사하는 여성 직원의 비율이 높았다. 커리어를 지속하기 위해 여성이 남성보다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였다.
이 설문조사의 수치는 유엔에서 보낸 내 지난날을 뒤돌아 보아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독일의 유엔기구에서 보낸 6개월, 아비장 유엔환경계획에서 보낸 1년, 그렇게 총 1년 6개월을 되돌아보아도 기혼여성이 가정과 일을 조화롭게 양립하는 좋은 모델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독일에서 만났던 여성 동료들은 모두 미혼이었고(20대부터 30대 후반까지 다양했다), 아비장 여성 동료들도 미혼이거나/ 결혼 후 (어떤 이유로든 간에) 오래지 않아 일을 그만뒀다. 물론 일과 가정을 모두 챙긴 그녀가 전 세계 국제기구의 어디엔가는 있을 거다. 아직 내가 만나지 못했을 뿐. 그만큼 확률이 낮다.
잦은 근무지 이동 외에도, 여성 직원들이 일을 계속하기 힘든 다른 원인에 (매우!!!) 잦은 출장이 있다. 물론 직종마다 차이가 있어 자주 출장길에 오르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여느 P레벨 직원들은 출장이 빈번하다. 옆 사무실에는 한 달 동안 4개국으로 해외출장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매주 다른 나라로 말이다. 웬만한 체력과 정신력으로는 소화해내기 힘든 스케줄이다. 사무실에서 업무는 쌓여가는데 출장으로 인한 추가적인 일은 알아서 잘 해내야 한다. 그야말로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
같은 사무실에 친하게 지내는 프랑스인 친구가 있다. 그녀는 두바이에서 일하는 벨기에인 남자 친구와 3년째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은 1~2년 안에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모두 일을 할 수 있는 제3의 도시를 찾지 못해 결혼에 진척이 없다. 일 년에 두세 번씩 서로를 방문하며 귀여운 연애를 계속하는 두 사람은 어떻게든 잘 되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걱정 - "결국 결혼을 하더라도 둘 중 한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없어 행복하지 않다면 어쩌지" 은 우리의 주된 안주거리다.
나는 올해 결혼을 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비장으로 떠나기 전 결혼을 위한 준비는 어느 정도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근무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3주 간의 휴가를 받아서 한국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우리는 코트디부아르와 한국이라는 9시간의 시차와 19시간의 비행기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장거리 신혼생활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고민을 너무 하기보다는 어떻게 잘 되겠지라는 상태로 남으려고 노력 중이다.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행복한 가정도 이루고 싶다. 내가 국제기구에서 일을 계속할 수 있을는지를 모르겠다. 다만 일단 계속 이 길을 가볼 뿐이다. 프랑스 친구와 나의 공통적인 결론은 그거다.
아무래도 유엔에서 오랜 기간 일할 수는 없겠다.(해선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