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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Jul 01. 2024

낭만이 있는 동리

인구소멸위험지역살이 6개월 차. 읍내에 나가서 과일을 사왔다..고 해야 할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거긴 읍내라고 하기엔 너무 작다. '읍내'가 읍의 구역 안을 뜻하는 말이긴 해도 뭔가 읍내라고 하면 조금 더 복작복작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사는 곳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읍내'에 나가려면 차로 30분 이상 더 나가야 하는데 그렇다면 내가 장을 보는 그곳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고민이 생겼다. 읍보다 더 작은 지방 행정 구역을 일컫는 말이 없을까 하던 차에 읽고 있는 책에서 '동리'라는 표현을 보게 되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자. 


동리3(洞里)

「명사」

「1」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 =마을.

얼어붙은 개울물에서 동리 꼬마들이 썰매를 타고 있었다.

「2」 지방 행정 구역의 최소 구획인 동(洞)과 이(里)를 아울러 이르는 말.


내가 장을 보러 나가는 곳은 읍내보다는 동리에 나간다고 해야 더 와닿겠다. 우리 동리에 자랑할 거리라 함은 20년 차 작가답게 얼마든지 화려하게 지껄여줄 수 있겠지만 그러면 내가 어디 사는지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두려움에 아직 용기를 내지는 못하겠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서 시작한 시골살이에 잔잔하게 뿌려지는 사람들의 알은척은 아직 힘들 것 같다. 


사회적 트라우마라는 것이 있다. 나는 사회적으로 알려진 여러 굵직한 사건, 사고들의 피해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성수대교로 출퇴근을 하셨던 분이고 삼풍백화점이 있는 동네에 살았으며 세월호 침몰로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던  해에 아이를 임신하고 낳았다. 이 사건 사고들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분들의 트라우마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난 직간접적으로 이 사건 사고들과 관계가 없었음에도 분명 이것들이 나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아이들 중에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그때 해외살이를 하고 있어서 가까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는데도 임신한 배를 부여잡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시골집으로 이사하기 전 서점 신간코너에서 괜스레 들춰보았던 부동산책에서는 이 동네를 '치유가 필요한 분들이 가는 곳'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 지난 6개월 동안 많은 치유를 경험했다. 차가 다니질 않으니 매연도 없고 사람이 살지 않는 산속이니 담배 연기로 컴플레인을 할 일도 없다. (가끔 주말마다 저 멀리 캠핑족이 풍겨주는 고기 냄새는 환영이다) 외부인이라서 현지인의 텃세가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도 글쎄. 외국에서도 이민자, 외국인으로 10년을 살아남았는데 같은 나라에서 텃세를 부려봤자 내가 뭘 느낄 수 있겠는가. 오히려 반겨주는 사람들만 가득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하며 어깨를 들썩일 수는 있겠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은 점은 지난 6월을 기점으로 해외에서 산 시간보다 한국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진 아이가 이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거고 나로서는 계절마다 다르게 올라오는 식물 이름을 찾아보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먹어보며 살고 있다는 게 큰 이득이다. 


어제는 괭이밥을 먹어보았다. 잡초 관련 책에서 읽었는데 괭이밥은 삶아서 무치는 것보다 생으로 먹는 것이 더 낫고 또 시큼한 맛이 난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정말 신 과일을 먹는 것 같은 맛이 나서 샐러드 소스를 먹는 것 같은 입맛이 느껴졌다. 자기가 매일 밟고 다니는 마당풀을 아내가 뜯어서 먹고 있는 걸 보고 남편은 아무거나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지만 저기요(자기야 아님) 이거 먹는 거 맞거든요? 저도 아무 거나 먹고 죽고 싶진 않거든요. 


지난 주에는 털별꽃아재비도 먹었다. 너무 흔한 잡초라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5도2촌 생활을 하던 때엔 쇠비름이 지천이던 마당에 0도7촌 생활을 하고 있으니 털별꽃아재비가 올라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린잎을 뜯어서 삶아 무쳐보았는데 시금치 같은 식감에 맛이 좋아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70대 친정 엄마가 최근에 전정신경염 증상으로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셨다. 70대 시어머니도 암이 재발하여 입퇴원을 반복하는 와중에 40대인 우리가 반드시 건강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이것 때문에 마당에 깔린 괭이밥을 뜯어먹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많은 도시에서 살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냐, 기회가 많은 만큼 스트레스를 받을 기회도 많은 도시 생활을 접어두고 힐링을 할 것이냐는 오롯이 각자의 선택이겠다. 여기서 오롯이는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의 뜻 보다는 '고요하고 쓸쓸하게'의 뜻으로 쓰였다. 

 

전정신경염 같은 어지러운 증상이 있는데도 자꾸 운전을 고집하는 엄마 때문에 차를 압수하러 도시에 다녀왔다. 놀랐던 건 아파트 단지도 우리집 마당에서 자라는 똑같은 잡초와 똑같은 나물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사람들에게 밟히고 농약을 쳐서 먹을 없겠지만 분명 같은 생명의, 같은 맛의 야생풀이 도시에도 있었다. 거기에선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인구소멸지역에서는 보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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